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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콜록! 콜록!” 기침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육진우는 급히 다가가 어르신을 부축하며 얼굴에 우려가 서려 있었다. “할머니, 의사 모셔 올게요.” 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숨을 돌리고 난 어르신이 육진우를 잡아당겼다. “나 괜찮아. 고질병이라 기침 몇 번 하면 괜찮아져.” 어르신은 약간 헐떡이며 말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기침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육진우는 전에 의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어르신이 일 년을 못 넘긴다고... 그리하여 몇 년 동안 그는 어르신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를 모시러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나 얻은 결과는 똑같았다. 그러다 남서우에 관련된 소식을 얻게 되었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서우가 해성시에 있다고 했었다. 그 말에 해성시에 일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찾아왔던 거였었다. 다만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마냥 소식 하나 얻지 못했었다. 임지연은 어르신이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맥을 짚어보았다. 몸에 숨겨진 질병으로 맥이 평온스럽지가 못한 걸로 보아 제대로 완치를 하려면 시간이 꽤 허비할 듯하다. “심화가 왕성해서 기침을 하는 거에요. 게다가 장기적으로 보양식을 챙겨 먹다 보니 화를 돋군 이유도 있고요. 요즘 음식을 최대한 싱겁게 드셔보세요. 기침이 적어질 거예요.” 임지연은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할머니, 이건 시골에 있을 때 연구한 토속 처방이라 열을 내리고 해독할 수 있을 거예요. 한번 먹어 보실래요?” 어르신은 약간 의아한 듯 임지연을 바라보았다. “지연이 네가 의술도 능한 거야?” 임지연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어릴 때 시골에서 한 스승님을 따라 배운 거예요. 자격증도 땄으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어르신은 의심하지 않고 병에 있는 사탕을 꺼내 들었다. 육진우는 걱정스레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괜찮아.” 어르신은 손을 내저으며 그 약을 입안에 넣었고 쓴맛과 단맛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젤리 같았다. 육진우가 물을 떠 오자 어르신은 약을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안의 피비린내가 가라앉았고 방금 가슴으로 조여오던 압박감마저도 많이 사라졌다. 어르신은 오랫동안 약을 먹어왔지만 이토록 빠른 효과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임지연이 진정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르신의 안색이 점차 회복되고 나자 임지연이 답했다. “비록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약이긴 하지만 고질병을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어요. 완치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고요. 일단 침을 놓아 몸의 열을 매출한 다음 수술을 하셔야 해요.” 임지연의 가벼운 말투에 육진우는 얼굴색이 살짝 변해갔다. “할머니 병이 완치될 수 있다는 거야?”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지만 한번 시도해 볼 수는 있어요. 초반에는 침으로 건강 상태를 회복한 다음에 수술하는 거죠. 다시 말해 초반 회복 상태에 달렸다는 거예요.” 임지연은 진지하게 답했다. 직업병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앞에 있는 환자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육진우는 임지연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해져 갔다. 수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기도 하고 그 의사들은 전부 업계 최고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마저도 할머니의 병을 보며 속수무책이었는데 임지연은 이 병이 마치 큰 병이 아닌 것처럼 가벼운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육씨네 가문에서 생활했었던 세월이 길었던 지라 육진우는 그 누구를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깊은 눈빛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할머니한테 침을 놓아줄 수 있어?” 임지연은 고개를 돌렸고 육진우의 준수한 얼굴에 걱정이 가득 서려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육진우는 어르신의 병세에 심히 걱정을 하고 있나 보다. 아무튼 그녀한테 있어서 쉬운 일이기도 하고 전에 육진우가 도와줬던 적도 있으니 그녀는 별생각 없이 동의했다. “알았어요. 내일부터 할머니의 몸조리를 시작해요.” 육진우는 손가락을 살짝 굽혔으나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됐다는 걸 보고 입을 열었다. “그 얘긴 그만해. 뭐 하러 다들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거야. 지연아, 할머니가 미안해. 오래 이어온 고질병이라 전 세계 유명한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어.” 임지연은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할머니, 큰 병 아니에요. 천천히 몸조리를 하다 보면 나아질 수 있어요.” 어르신은 맑고도 순수한 그녀를 보며 만족감이 짙어졌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어르신은 육진우한테 물었다. “두 사람 결혼식은 아직이지?” “할머니, 저하고 지연이는...” 육진우가 뭐라 설명하려 했으나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가로챘다. “여자가 가장 기대하는 일이 바로 결혼식이야. 넌 지연이를 아내로 들였으면 당연히 아쉬움이 남게 해서는 안 될 거 아니야. 지연이가 해성시 사람이니까 일단 간단하게 결혼식을 치르도록 해. 그리고 내가 도성시로 돌아간 뒤에 다시 성대하게 준비해서 우리 지연이를 맞이할 거야.” 임지연은 어르신이 자신을 생각해 이런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육진우하고는 그저 거래로 맺어진 관계고 감정이 없는 터라 그녀는 크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 제 생각해서 이러는 거 알아요. 하지만 어차피 결혼은 두 사람의 일인데 굳이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요.” 임지연은 다정한 말투로 임했다. “안 돼. 우리 진우한테 시집을 왔는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되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면 간단하게 치르면 되지. 가족 친척들이나 친구들만 초청해서 간단하게 치르자. 결혼 장소나 디자인들은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어르신은 이 일에서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임지연은 육진우한테 도움의 눈짓을 보내고 있었고 육진우는 어르신의 강경한 태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할머니 말대로 해요. 그런데 지연이는 해성시에 친척들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진행하면 돼요. 도성시로 돌아가서 제대로 주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가 도성시로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아마도 임지연하고 진작에 헤어졌을 것이다. 어르신은 그 말에 안색이 좋아졌다. “알았어. 시간을 대략 계산해 보니 다음 주 화요일이 좋은 날이야. 시간이 촉박하긴 해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할 거야. 이따 시간 내서 드레스 보러 가.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몸이 편찮은 어르신의 가장 큰 소원이 그의 결혼이라는 걸 아는 육진우는 거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할머니가 임지연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으니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래요. 할머니 뜻에 따를게요.” 육진우는 흔쾌히 승낙했다. 임지연은 육진우가 승낙하는 걸 듣고 나자 뒤늦게 깨달았다. 다음 주 화요일! 임시월하고 고상준이 결혼하는 날짜잖아! 내가 임시월하고 같은 날에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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