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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학생들이 몇 마디 하는 사이 이다빈은 이미 칠판에 답을 적었다. 이 장면을 본 학생들은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와, 기가 막혀. 이다빈같이 공부 하나도 못 하는 애가 진짜로 정답을 맞히다니!” “이 문제는 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 이다빈은 거의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답을 써 내려갔어!” “그럼 이다빈이 겉으로는 공부 안 하는 척했지만 사실 영락없는 우등생이었단 말이야?” 선생님의 귓가에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이런 문제를 낸 이유는 이다빈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무단결석을 하지 말라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다니... 오늘 이다빈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수학 선생님으로서의 그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의 하나가 떠올랐다. NP-완전 문제, 이 문제는 계속 풀리지 않아 수많은 수학자를 괴롭혔었다. 그러다가 한 달 전에 베일에 쌓인 한 천재 수학자가 풀어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문제까지 풀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그래, 조금 전 문제는 쉬웠지? 그럼 이 문제를 한 번 풀어봐.” 문제를 칠판에 쓴 수학 선생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잠시 문제를 눈여겨보던 이다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수학 선생님을 쳐다봤다. “뭘 봐? 내 얼굴에 답이 있어?” 수학 선생님은 의기양양한 듯 보였다. 이제 자기의 체면을 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학생들은 칠판에 있는 문제를 보고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이게 무슨 문제야?” “몰라! 수학 문제이기는 한 거지? 선생님께서 일부러 이다빈을 곤란하게 하려고 문제를 함부로 막 낸 것은 아니겠지?” 이다빈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본 수학 선생님의 입꼬리는 다시 한번 양 끝으로 올라갔다. “할 줄 모르면 수업이나 잘 들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다빈은 분필을 들더니 일사불란하게 풀기 시작했다. 조목조목 논리적인 답들이 칠판 전체를 차지했고 수학 선생님의 입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칠판 전체를 다 쓴 뒤 다시 교실 뒤편에 있는 칠판에까지 가서 쓱쓱 쓰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지날수록 교실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따르릉.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다. “다 풀었습니다.” 이다빈은 분필을 내려놓고 교실을 나갔다. 다른 학생들은 우두커니 교실에 앉은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수학 선생님은 마음속에 이는 거센 파도를 오랫동안 진정시키지 못했다. 오후 수업을 마쳤을 때 갑자기 천둥과 폭우가 쏟아졌다. 이번 폭우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일기예보에도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이다빈도 대부분의 반 친구들과 같이 학교 앞에 서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몇 명의 여학생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시연, 남자친구가 데리러 안 와?” “곧 도착한대.” 오시연은 말을 하면서도 일부러 이다빈을 쳐다봤다. 도발하는 듯한 눈빛에는 왠지 득의양양한 모습도 있었다. 이다빈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이다빈이 있는 한 오시연은 영원히 반의 퀸카에만 만족해야 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다빈은 학교의 퀸카였다. “너무 부럽다. 듣자니 남자친구가 반후 호텔 사장님의 아들이라며?” “어머! 반후 호텔?! 우리 서주 4성급 호텔이잖아!” 오시연은 웃으며 말했다. “범준이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최근에 5성급 호텔로 신청서를 넣었대. 곧 승인될 거라고 했는데.” “너무 대단하다. 부러워! 시연아, 이렇게 대단한 남자친구를 두다니, 정말 복 받았어.” 오시연은 다시 한번 일부러 이다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대단해도 이다빈만큼은 아니지. 약혼자가 동승 부동산의 아들이잖아. 그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오시연의 뜻대로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이다빈에게 쏠렸다. “시연아, 이다빈이 강씨 집안 도련님에게 파혼당한 것을 몰랐어? 재 지금 아주 비참하게 됐잖아.” “아, 그래?” 오시연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깜짝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다빈을 쳐다봤다. “미안해. 이다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강씨 집안 도련님에게 파혼당한 줄 몰랐어. 강씨 집안 도련님에게 파혼당한 것을 알았다면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야.” 이다빈은 담담한 얼굴로 오시연을 쳐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반장, 우리 집에 있는 그 내연녀와 같이 친구로 지내도 되겠네.” 오시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다른 학생들도 분개하기 시작했다. “야! 어떻게 시연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사과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사람을 몰아붙여!” “그러니까! 다들 같은 반 친구인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반장에게 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해!” “사과해! 빨리 사과하라고!” 이다빈은 이런 상황이 너무 우스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우리가 시연이에게 사과하라고 한 게 뭐가 우스워?” “너희들 아이큐가 너무 낮아서 웃는 거야.” 이다빈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들은 아이큐가 300인 이다빈에 비하면 확실히 낮았다. “지금 우리를 욕하는 거야?!” 이다빈은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도도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아니야? 반장이 그렇게 내연녀 같이 행동하는데 너희들이 하나도 못 알아차리고. 나쁜 사람을 도와서 피해자나 공격하고. 그게 아이큐가 낮은 게 아니면 뭔데?” “오전 수업시간에 수학 문제 몇 개 푼 거 갖고 잘난 척하는 거야?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해서? 운이 좋아서 이틀 전 풀었던 같은 문제가 나왔던 거잖아. 그래서 답을 맞힌 거고.” “김민하의 말이 맞아. 너 같은 열등생이 우리에게 아이큐가 낮다고 비아냥거릴 자격이 있어?” 띵. 새 메시지의 도착 알림 소리를 들은 이다빈은 더 이상 이들과 논쟁을 벌이기 귀찮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박현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할아버지가 데리러 가래. 곧 도착.] 이다빈이 답장하자마자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줄무늬 정장을 입은 남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빨간 스포츠카에서 내리더니 대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서 도련님이야! 너무 잘생겼어! 차도 멋있어! 나에게도 저런 남자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 깨! 저 사람은 반장의 남자친구야.” “저 사람이 반장의 남자친구야? 운전하고 온 차가 적어도 몇억 원은 되지 않아?” 오시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고는 이다빈에게 다가가더니 나약한 척했다. “이다빈, 네가 믿든 안 믿든 조금 전에 한 말은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남자친구가 데리러 왔는데 너부터 데려다줄까? 조금 전에 한 말을 사과도 할 겸. 응?” 이다빈은 오시연을 힐끗 쳐다본 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시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다빈, 나 그렇게 미워하지 마. 진짜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우리 같은 반 친구잖아. 그런데 왜 굳이 너를 난처하게 하겠어? 참, 이번 주말이 내 생일이야. 반 친구들 모두 제호 노래방에 초대했는데 노래 부르러 오지 않을래? 꼭 와줘. 응?” 말을 마친 오시연은 손을 뻗어 이다빈을 잡으려 했다. 이다빈은 너무 징그러워 뒷걸음질 쳤다. “흑흑흑, 이다빈, 내가 그렇게 싫어?” 오시연의 초라하고 가련한 모습은 학생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하나둘씩 이다빈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 정말 너무해. 더 이상 못 참겠어!” “세상에 어떻게 이다빈같이 못된 사람이 있을 수 있어? 화가 나서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어.” “나도!” 이때 서범준이 다가와 오시연을 품에 안았다. “시연아, 울지 마, 화 풀어!” 서범준은 분노한 듯 말을 한 뒤 이다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몇 마디 호되게 욕설을 퍼부으려던 서범준은 이다빈의 천사 같은 얼굴을 본 순간 깜짝 놀라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여자는 그의 여자친구보다 백 배 더 예뻤다. 서범준의 이상함을 눈치챈 오시연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서범준이 상대방의 외모에 매료된 것을 알아챈 그녀는 마음이 급해졌다. “범준아... 흑흑... 내 반 친구야. 그만해, 괴롭히지 마. 사실 꽤 불쌍한 애야. 자주 결석해서 졸업이 2년이나 늦어졌어. 올해 대학 입시도 합격하기 어려울 거야. 가족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심지어 약혼자마저 여동생에게 빼앗겼어. 참, 약혼자는 너도 아는 사람이야. 강씨 집안 강진성 도련님.” 오시연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이다빈이 겉은 번지르르하니 보기 좋으나 사실 속은 아주 많이 썩었다는 것을 서범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바로 강씨 집안에 파혼당한 이다빈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서범준의 눈에는 조금 전의 놀라움 대신 비아냥거림과 경멸이 가득했다. 그제야 오시연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다빈은 서범준의 말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무시했다. “야! 내가 말하잖아. 너 귀먹었어? 아니면 벙어리야?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대답도 안 하고!” 서범준이 짜증 가득한 말투로 소리쳤다. 이다빈은 서범준을 흘겨보면서 한마디 했다. “멍청이와 한번도 말을 섞은 적이 없어서.” “누가 멍청이라고? 배짱이 있으면 다시 한번 말해 봐!” 이다빈은 서범준을 거들떠 보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은 그녀가 방금 한 말을 확인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멍청이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 서범준이 멍청이가 아니라고 해도 이 뜻은 알 수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기랄! 감히 나에게 이렇게 말하다니! 내가 오늘 기어코...” 서범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 길 막지 말고.” 누가 감히 이렇게 함부로 나대지? 이다빈을 혼 내고 있는 게 안 보이나? 화가 난 서범준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창피함이 온몸을 감쌌다. 신처럼 완벽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군주처럼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오시연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넋이 나간 듯 우산을 든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가벼운 여자여서가 아니라 이 남자가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멋지기 때문이다. “와… 너무 잘생겼어! 정말 멋져! 이 사람은 누구야? 설마 연예계 스타야?” “말도 안 돼. 이 얼굴이면 연기력이 없어도 바로 연예계 최상위일 텐데. 이 사람이 진짜 연예계 스타라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잖아? 절대 무명일 리 없어. 진작 전국 방방곡곡에 이름을 날렸을 거야! 우리가 어떻게 모를 수 있어?” “설마 누군가를 마중 나온 거 아닐까?” “도대체 어떤 럭키 걸이야? 이렇게 신 같은 남자가 다 마중 나오고?” 모두들 서로 두리번거리며 그 럭키 걸을 찾고 있었다. 서범준은 박현우를 찬찬히 쳐다봤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이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류층의 재벌 집과 재벌 2세들이라면 서범준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다시 한번 말할게. 비켜.” 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말투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서범준은 다시 한번 박현우의 기세에 눌려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두 발짝 물러섰다. 이 고귀한 남자가 대체 누구를 데리러 온 것인지 그도 궁금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서범준도 건드리지 못하는 귀티 나는 이 남자는 이다빈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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