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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장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박현우가 또 말을 끊어버렸다. “말 들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유언이고 뭐고 난 듣기 싫어. 넌 아무 일 없어. 내가 있는 한 넌 죽지 않아.”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에 그는 목소리를 가늘게 떨었다. 이다빈의 관자놀이가 두 번 툭툭 뛰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요. 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얇은 입술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다빈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남자는 오히려 몸에 힘을 더 주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내 이다빈은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다행히 ‘시체 메이크업’ 때문에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발라 티가 나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가을날 붉게 익은 감과도 같았을 것이다. 잠시 후 박현우는 동작을 멈추고 이다빈의 두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는데 이 순간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런 말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계속 말하면 나도 계속할 거야.” 이다빈은 할 말을 잃었다. 남자의 말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칼을 만졌다. “움직이지 마. 의사 선생님이 곧 오실 거니까 가만히 있어. 이렇게 막 만지고 그러면 진짜 대출혈--” 하지만 박현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다빈은 이미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았다. 공기는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침묵이 맴돌았다. “가짜예요.” 이다빈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더니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이것도 가짜예요.” 최현우는 잠시 멈칫하며 놀랐지만 그래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지금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지금 이 모습이 얼마나 사람을 놀래게 하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아냐고?” 박현우는 다시 이다빈을 품으로 끌어당겨 그녀의 심장을 느꼈다. 이다빈도 박현우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는데 미세한 떨림까지 느껴졌다. 심지어 울먹이는 목소리에서도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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