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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이다빈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서범준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감히 나를 때려?!” 화가 치밀어 오른 서범준은 손을 뻗어 이다빈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이다빈은 다시 손을 들어 뺨을 몇 대 더 때렸다. 찰싹! 찰싹! 찰싹! 묵직하게 내리친 그녀의 손에 서범준은 팽이처럼 제자리를 몇 바퀴 돌았다. 볼은 눈에 띄게 부어올랐다. “이.다.빈.” 서범준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 소리쳤다. “왜? 한 대 더 때려줄까?” 이다빈이 손을 들자 서범준은 움찔했다. “흥!” 이다빈은 코웃음을 치더니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서범준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다빈의 살가죽을 벗겨내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이년이! 너, 너 딱 기다려!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 테니까! 내 앞에 무릎을 꿇려서 싹싹 빌게 할 거야!” … 이십일. 28일까지 아직 며칠 남았다. 최근 주요 언론은 새로운 나노신소재의 연구 성공을 보도하고 있었다. 저녁, 이씨 집안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식사하며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CBC 채널] [이달 초, 대현 연구소의 이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1년간의 끝없는 실험 끝에 새로운 나노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연구는 대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큰 충격을 안겨줄 것입니다.] “정말 대단해. 1년 만에 나노신소재를 개발하다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연구자들의 핵심 인물인 이 교수가 아주 젊다며? 우리 은영이 나이와 비슷하다고 하던데.” 이경환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설마, 이렇게 어린데?” 이은영도 깜짝 놀라 물었다. 나효심은 이은영에게 고기를 집어주며 말했다. “부러워할 필요 없어. 너도 충분히 훌륭해. 이 교수 같은 인물은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야. 비교할 필요 없어.” “엄마의 말이 맞아.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해서 3학년 인턴 때 이 교수의 연구소에 들어가는 거야.” 이경환도 말하면서 이은영에게 반찬을 집어줬다. “아빠,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학교 과학 연구소에서 회장을 맡고 있어. 실력도 검증되었고. 교수님께서 내가 과학 연구에 매우 소질이 있다고 하셨어. 실습이 끝나면 이 교수님이 있는 연구소에 어떻게든 추천서를 넣어 달라고 할 거야.” 이은영은 고개를 돌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이다빈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언니도 잘하는데.” 이다빈 얘기가 나오자 이경환 내외의 안색이 금세 변했다. 2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나효심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뭘 잘하는데?” “언니는 진취심이 대단하잖아. 저번에 언니가 서주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대학 입시 수석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잖아. 이렇게 큰 포부에 어떻게 탄복하지 않을 수 있어! 나 좀 봐, 겨우 턱걸이로 들어갔잖아.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어.” 이은영은 자신의 허벅지를 쥐어뜯었다. 혹시라도 진짜로 웃음이 나올까 봐 걱정되었다. 나효심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경환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은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빠, 엄마, 우리에게 발표회 초대장이 있잖아. 언니에게도 이런 진취심이 있으니 같이 참석하는 게 어때? 언니도 발표회를 보고 시야를 넓히면 좋잖아.” “그게…” 이경환 부부는 망설였다. 자기 딸 이다빈이 평소에 얼마나 못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에 땡땡이는 물론이고 사고 치고 허풍 떠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거짓말쟁이였다. 예를 들어 갑자기 무슨 국제대회 트로피를 갖고 와 자기가 받았다고 한다. 또 어떤 바둑 대회 우승 메달도 갖고 왔었다... 이런저런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이다빈을 발표회에 데려간다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효심이 굳은 얼굴로 이다빈에게 엄하게 말했다. “이다빈, 너 지금 수능을 앞두고 있으니 발표회 날 어디 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나 열심히 해.” 이다빈은 나효심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치 정신병자라도 본 듯 대답하기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 25일, 오늘은 오시연의 생일이다. 서범준은 제호 노래방에서 가장 호화로운 크라운 룸을 예약했다. 우효라는 이다빈의 손을 잡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다빈아, 네가 꼭 와야 해. 우리 둘이 가장 친한데 네가 안 오면 내가 심심하잖아.” “괜찮아. 우리 친구잖아.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다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김민하가 빈정거리며 나타났다. “이다빈, 잘난 척하지 마. 얼굴만 반반하면 다야? 반장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반장의 남자친구 서범준을 따라 이런 고급스러운 곳으로 올 수 있었겠어?” 다른 학생들도 서범준에게 아부하기 위해 맞장구를 치며 조롱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날 이다빈을 마중 나온 사람은 마이바흐를 몰고 왔어.” “하하, 진짜로 그렇게 대단한 남자친구가 있다면 벌써 난리 쳤겠지. 정신이 온전히 박힌 사람이라면 다 알아. 그날 일은 이다빈이 체면치레를 위해 일부러 사람을 불러 연극을 한 것임을!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왜 요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을까.” “쳇! 서 도련님은 제호 노래방의 크라운 룸을 예약했어. 제호 노래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격이 많이 나갈 텐데 제일 비싼 룸까지 예약했으니 이게 얼마야! 이다빈이 이런 곳에 와보기나 했겠어?” 듣기 거북한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다빈은 복도 끝의 크라운 룸을 흘겨보았다. 크라운 룸? 사실 이다빈은 이곳에 여러 번 왔었다. 이다빈의 시선을 알아차린 서범준은 그녀가 크라운 룸에 마음이 쏠린 줄 알고 의기양양해 했다. 기다려! 오늘 이다빈에게 재력을 낱낱이 보여줄 테니까! 그러고 나면 분명 한달음에 자기 품으로 달려올 거라 생각했다. 서범준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서 도련님, 크라운 룸은 다른 사람이 이미 예약했어요.” 오시연은 서범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범준아, 어떡해? 이미 친구들과 다 약속했는데.” “걱정하지 마, 나에게 맡겨.” 서범준은 오시연의 허리를 한 번 움켜쥐더니 어두운 얼굴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예약했어요. 이 룸은 반드시 나에게 줘야 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안에 중요한 손님들이 계셔서요. 다른 고급 룸으로 바꿔드리면 안 될까요?” “흥! 중요한 손님이요? 그럼 나는 중요한 손님이 아니란 말이에요?” 서범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요, 우리 서 도련님이 거물이 아니라고요? 아버지가 반후 호텔의 사장이에요.” “어서 비켜요, 서 도련님의 체면을 깎으면 오늘 제호에서 쫓아낼 수밖에 없어요.” “서범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 서범준은 동창들을 둘러보다가 이다빈의 몸에 몇 초간 시선을 고정했다. 그다음 이를 악물더니 로비 매니저 옆을 돌아 힘껏 문을 열었다. “오늘 이 룸은 반드시 나에게 줘야 할 거예요! 어서…” 말을 하는 순간 서범준은 룸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게 되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남은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소파에 남자와 여자가 여러 명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도도하게 생긴 여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서범준? 감히 내 룸을 빼앗으려 하다니, 간이 부었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서범준은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자세였다. 그는 굽신거리며 여자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주, 주 아가씨, 제가 어떻게 감히... 감히 아가씨 룸을 빼앗겠어요. 저, 저는 몰라… 몰랐어요. 안에 계신 줄 몰랐어요.” 찰싹! 서범준은 거침없이 자기 뺨을 후려갈겼다. 오시연과 다른 학생들도 하나같이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범준 같은 재벌 2세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소녀가 얼마나 대단한 집의 자식인지!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문 채 숨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 소파에 앉아있던 아가씨는 사람들 무리를 보고 갑자기 놀라 아연실색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급히 여러 사람 뒤에 있는 여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공손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부님, 이 제자의 절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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