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장
정라엘과 배소윤은 같은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자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소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엘아, 너 혹시 그런 남자 만나본 적 있어?”
“어떤 남자?”
배소윤의 머릿속에 짧은 머리의 잘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엄청 차갑고 되게 쿨한데 싸움을 너무 잘해. 좀 무섭기도 하고...”
정라엘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검은색 야구 점퍼를 힐끗 보았다. 원래 배소윤이 입고 있었지만 벗어서 걸어둔 상태였다. 분명 배소윤을 구해준 남자가 남기고 간 것이었다.
정라엘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진도준?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애?”
배소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자 정라엘이 의미심장하게 눈을 찡긋했다.
“설마 네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몸 바쳐서 갚으려는 건 아니지?”
“라엘아!”
배소윤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됐어! 너랑 얘기 안 해!”
정라엘은 깔깔 웃었다. 배소윤은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웃지 마!”
창밖에서는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작은 방 안에서는 두 소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웃고 있었다. 소박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따뜻함이 가득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강기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발 나 좀 놀리지 마. 이런 얘기 누구한테 할 수도 없고 그냥 새언니인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배소윤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녀에게 정라엘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언니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때 정라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만 새언니라니? 무슨 소리야?”
배소윤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아차, 라엘이는 아직 내 정체를 모르잖아.’
정라엘은 예전에 배소윤에게서 사촌 오빠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네 그 막장 사촌 오빠 말하는 거야?”
그 순간 침대에 누워 있던 강기준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배소윤을 쏘아보았다.
‘또 내 뒷담화를 까고 있었단 말이지?’
배소윤은 움찔하며 혀를 쏙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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