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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장 떠날 용기가 없을 것 같아

소성진의 검사 결과는 내 몸 상태가 확실히 좋지 않다는 걸 금방 증명해 주었다. 예전에 배진욱이 기억을 잃었을 때부터 나는 계속 억지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내 상태를 알게 된 이후로 컨디션이 계속 나빴고 종종 어지럼증까지 느꼈다. 소성진은 약물 치료 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이라며 가능한 빨리 해외에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배성훈이 저녁에 나를 찾아왔을 때 다시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할아버지께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고 판단하셔서 더 이상 조사는 안 하신대요. 그런데 누나의 출입 정보를 삭제하라고 하셔서 이제 회사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작업실도 옮겼으니 회사에 안 가도 상관없겠죠. 하지만 이번엔 작은할아버지께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신 것 같아요. 괜히 사람들이 누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배성훈은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배성후의 처리가 너무 경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배성후가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밤 회사에 남아 있었던 사람은 배진욱과 최지연뿐이었으니 배진욱이 회사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은 자명했다. 그렇다면 정보를 유출한 사람이 누구일까? 누가 됐든지 간에 배 속에 아이가 있는 최지연일 리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나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배성후에게는 증거가 없었고 그래서 은밀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주려는 거였다. 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고 굳이 무슨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일 아침 이혼 절차를 마치면 모든 것이 끝날 테니 무엇을 말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성훈 씨, 내일 이혼 절차가 끝나면 나 잠시 떠나 있을 생각이에요.” “어디로요? 휴가라도 가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스턴국에 가서 치료도 받고 잠깐 쉬려고요.” 배성훈의 얼굴에 더 깊은 실망감이 드리워졌다. “희주 누나, 다시 돌아올 거예요?” 좋은 질문이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소성진이 병실에만 세, 네 번이나 찾아와 하루빨리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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