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화

섭정왕부(攝政王府). 동상방(東廂房) 내 꽃무늬가 새겨진 침상 주위에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낙청연(洛清淵)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침상 위의 난잡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햇빛이 빨간색의 흔적을 또렷이 비추고 있었다. 어젯밤 신방(新房)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쳐들어왔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수치심과 모욕감이 울컥 치밀어올라 돌연 그녀를 견딜 수 없었고 굴욕으로 인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우는 것이냐? 드디어 네 바람대로 섭정왕부에 시집왔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낙청연은 등골이 오싹했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자 위에 정좌로 앉은 남자가 보였다. 그는 위엄 있으면서도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의 차가우면서도 냉담한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낙청연은 그의 시선이 칼이 되어 살을 에이는 것 같았고 온몸이 피 칠갑이 된 것 같았다. 낙청연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이내 가슴 부근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왕야(王爺)… 줄곧 여기 계셨습니까?” 남자는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너와 내가 혼인을 올린 날인데 본왕이 여기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 그 순간, 낙청연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 신방에 쳐들어왔던 남자들과 도처에 남겨진 어지러운 흔적들에 그녀는 수치스러웠고 분했는데 그녀와 함께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남자는 그 방 안에서 밤사이 그 남자들이 어떻게 그녀의 옷을 찢어발겼는지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입니까? 제가 그렇게나 미우십니까?”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낙청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는 첫날밤 하인들더러 그녀의 순결을 빼앗게 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을 더럽혔다. 낙청연은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를 경모했었고 당시 태황태후(太皇太后)는 두 사람이 금동옥녀(金童玉女)이고 천생연분이라면서 그들의 혼인을 맺어주겠다고 말했었다. 장난삼아 한 말이었을지는 몰라도 낙청연은 그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열세 살 때 크게 앓아눕게 되면서 낙청연은 살이 오르고 용모가 추해졌다. 그 뒤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를 차가운 눈초리로 보거나 그녀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만큼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고 그래서 낙청연은 더더욱 그가 아니면 평생 혼인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그와 그녀의 서매(庶妹) 간의 혼약이었다. 낙청연은 그와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동생이 자신을 대신해 혼인을 치러달라는 제의를 해왔을 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그에게 시집올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첫날밤을 기다렸는데 돌아온 건 죽을 정도로 괴로운 치욕이었다. 낙청연의 말에 부진환(傅尘寰)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고고한 자태로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미워한다고? 넌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구나. 난 그냥 너를 혐오하고 역겨워하는 것뿐이다.” 첩자 따위가 공공연히 다른 사람을 대신해 그의 왕비가 되려 하다니? 게다가 그녀는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그의 말을 들은 낙청연은 목이 메어 말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저의 순결과 정절을 더럽히신 겁니까?” 낙청연은 체념하지 못하고 그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힘겹게 물었다. “만약… 제가 이렇게 못생기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절 조금이나마 좋아하셨을 것입니까?”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그녀의 모습에 부진환은 그녀가 더욱 역겨워졌고 그 기색이 그의 눈빛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진환의 깊은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감돌았고 뒤이어 그는 뼈를 부술 듯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 “설령 네 외양이 선녀처럼 아름다웠다고 할지라도 본왕은 네가 역겨울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턱을 잡고 있던 손을 힘차게 뿌리쳤고 그 바람에 낙청연은 침상 위로 내쳐져서 쓰러졌다.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가 그녀의 몸에 남은 파란색 멍자국들이 드러났지만 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덤덤히 쳐다봤고 낙청연은 더욱더 심한 치욕을 느꼈다. 부진환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떠났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낙청연은 절망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서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문 입구에 다다른 남자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지만 그건 단지 찰나에 불과했고 그는 곧장 옷소매를 휘날리며 방 안에서 나갔다. 낙월영(洛月盈)과 혼인하기 위해 황제에게 청을 올려 어렵게 얻어낸 혼인이었다. 그런데 저 역겨운 여자가 산통을 깬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부진환의 눈빛은 더욱더 어두워졌고 그는 남몰래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뒤, 두 계집종이 물을 받아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낙청연은 침상 구석 쪽으로 향하면서 이불을 손에 꼭 쥔 채로 몸을 가렸지만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안 곳곳을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이상한 걸 보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그녀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계집종들이 처마 밑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기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확인해보니까 진짜 돼지처럼 뚱뚱하던데? 어젯밤에는 어떻게 남을 대신해서 혼인을 치렀대? 둘째 아씨는 저보다 훨씬 날씬하던데 신부를 맞이하러 갔던 사람들이 왜 눈치를 못 챘을까?” 계집종은 불쾌하다는 듯이 설명했다. “어젯밤 어떻게 이 저택에 어떻게 섞여 들어왔는지 모르겠어. 둘째 아씨를 때려서 기절시키고는 자신이 신방 안에 들어왔잖아? 어제 왕야께서 술을 하도 많이 드셔서 하마터면 신방 안으로 들어갈 뻔했다니까. 저 여자 좋은 일을 할 뻔했어. 다행히도 왕야께서 술을 빨리 깨셨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저 돼지 때문에 더럽혀질 뻔했잖아.” “세상에나! 정말 낯짝 두꺼운 사람이네. 자기 분수도 알지 못하고 우리 왕야를 넘보다니!” 그 소리는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벽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그들의 경멸과 혐오가 선명히 느껴졌다. 저들도 그러한데 부진환은 아마도 자신을 죽도록 미워할 터였다. 아니, 밉다는 단어조차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낙청연은 얼굴이 희게 질려서는 이불을 손에 꼭 쥐었다. 굴욕적이면서도 슬프고 비통해서 낙청연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목이 메어 말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당신의 미움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 아직 정원을 채 나서지 못한 두 계집종은 방 안에서 궤가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서 곧바로 방 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방 안에서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왕비 마마께서 자결하셨습니다!”
Previous Chapter
1/3179Next Chapter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