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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멍청하면 됐지,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긴 거야?

내가 잠시 얼떨떨해하는 사이, 차도준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약과 반창고를 모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네가 가지고 있어. 급하게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다 사용하면 또 가져다줄게.” “이거면 충분할 거 같아. 고마워.” 나는 약간 어색한 듯 시선을 돌려 서둘러 대화 주제를 돌렸다. “고마워. 짐도 옮겨주고 약도 발라줘서. 나중에 밥 사줄게.” 말하자면, 사실 이 밥은 내가 진작에 샀어야 했다. 그때 차도준이 필사적으로 나를 그 화재에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게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차도준이란 생명의 은인을 줄곧 마음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베푼 은혜를 어찌 밥 몇 끼로 갚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말에, 차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 하지만, 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이틀 전에 예약해야 하는 거 잊지 마. 그렇지 않으면 비서가 내 일정을 조율하는 데 애를 먹을 수 있거든.” “네. 알겠습니다. 차 대표님.” 차도준은 그저 말하는 것이 꽤 직설적인 편일 뿐, 심성은 착한 사람이기에 그와 사소한 걸로 꼬치꼬치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농담 속에서 많이 누그러졌다. 차도준은 담담하게 바닥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챙겨 내가 지정한 자리에 놓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진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냥 끊으려다가 이혼하려고 전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연결되자 휴대폰 너머로 서진혁의 따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은하. 하윤이가 장미 향기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장미향수를 뿌린 목걸이를 선물한 거야? 도대체 하윤이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 거야? 장난을 쳐도 정도가 있지, 알레르기가 심하면 죽는다는 거 몰라? 어디야? 빨리 병원로 와서 하윤이한테 사과해.” 목걸이를 손에 넣자마자 이런 수작을 부리다니, 연하윤은 정말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나보다. 하지만 알레르기를 이용해 나를 모함하려고 하다니, 연하윤은 그저 너무 어리석었다. 서진혁이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쉽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 “서진혁, 멍청하면 됐지 설마 기억력도 안 좋아진 거야? 혹시 치매 걸렸어?” 전에 한 번도 이렇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서진혁에게 말한 적이 없었던지라, 서진혁은 갑자기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연은하,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인정하지 않겠단 말이야?” 나는 무릎 위의 반창고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장미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거 잊었어? 그 목걸이는 계속 내 목에 걸려 있었어. 내가 만약 그 목걸이에 장미향의 향수를 뿌렸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너랑 멀쩡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내가 장미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나랑 친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같이 자란 서진혁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장미나 장미 향기가 나는 물건을 만지면 온몸에 포진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결혼식에서도 장미가 아니라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백합을 사용했기도 했었다. 이런 일조차 잊을 정도로 연하윤을 위해 화를 내고 있는 걸 보면, 그는 연하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는 거 같았다. 서진혁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자,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하윤이한테 목걸이를 줬을 때만 해도 하윤이 몸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하윤이가 정말 알레르기가 있다면, 여기서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알레르기 검사를 다시 한번 진행해 보는 걸 추천해.” 말이 끝났는데도 휴대폰 너머에서는 적막만이 흘렀다.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잔뜩 민망해하는 서진혁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미안, 잠시 잊어버렸어. 하윤이는 지금 너무 괴로워해. 빨리 와서 한번 봐봐. 네가 곁에 있어 주면 빨리 나을 수 있을 거야.” 불과 조금 전까지 나한테 버럭 화를 내더니 이젠 공손한 태도로 나더러 연하윤의 곁을 지켜달라고 하고 있다. 말을 바꾸는 서진혁의 능력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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