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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미간을 찌푸린 성시후는 서동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잔을 들고 남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 “리나야, 나 곧 결혼해.” “이렇게 갑자기?” 천천히 배서희와 건배하며 술을 마시던 강리나는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확 변했다. 배서희의 남자친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30살이 되었는데 4천만 예금도 없었다. 배씨 가문은 성씨 가문처럼 최고의 명문가는 아니지만 배성희의 부모님이 연간 수익이 백억을 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배서희와 양태호와의 결혼은 비슷한 수준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렇게 빨리 결혼하지 말고 더 지켜보라고 해. 양태호가 가난해서 싫어하지만 난 괜찮아. 나는 돈이 부족하지 않고 그저 나를 아껴주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너에게 잘 해주는 남자도 중요하지만 가정형편을 꼭 같이 봐야 해. 서희야, 결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해.” “괜찮아. 난 양태호가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고 인정했어. 앞으로 성격 차이로 헤어진다 해도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배서희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장사해서 많이 돌봐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배서희는 사랑이 부족했고 마침 양태호는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달래줄 수 있었다. 조용히 배서희를 지켜보던 강리나가 말했다. “혼전 협의서를 작성하는 게 좋을 거야.” “부모님도 그렇게 제안해서 태호 씨와 말했는데 두말없이 승낙했어.” “그럼 다행이야.” 두 사람은 계속 술을 마시며 얘기를 했다. 배서희는 강리나의 결혼 생활이 궁금해서 물었다. “신랑은 요즘 잘 해줘?” “그냥 그래.” “그럼 2년 동안 성생활이 없었는데 그 부분으로 욕망이 없어?” 강리나가 힐끗 쏘아보며 말을 하지 않자 배서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혼자 해결해도 좋지 않아. 아니면 돈을 쓰더라도 남자를 찾아 해결해 볼래?” 강리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럴 생각이 있다고 해도 배짱이 없어. 관둬.” “누나, 술 살래요?” 남자 바텐더의 목소리에 둘은 대화를 끊었다. 강리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양복을 입고 얼굴은 젊어 보였고 잘 생겼다고 할 수 있었는데 왠지 그 양복을 입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성시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양복 차림이고 또 구두를 신었지만 성시후와 남자 바텐더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나타냈다. ‘얼굴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분위기가 달라서일까?’ “리나야, 살래?” 배서희는 강리나를 쿡쿡 찔러보았다. 강리나는 예의를 갖추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아니, 고마워.” “서희야, 나 집에 가야 해. 내일 아침엔 일찍 로펌에 가서 고객과 계약을 체결해야 하거든.” 말하다가 일어섰는데 너무 빨라서인지, 아니면 알코올 때문인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남자 바텐더가 잽싸게 부축했다. “누나, 괜찮아요?” “괜찮아, 고마워.” 강리나는 허리에 놓인 바텐더의 손을 미쳐버리려 했으나 그전에 누군가 쏜살같이 나타나 바텐더의 손목을 힘껏 비틀었다. 남자 바텐더의 비명이 술집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강리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야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성시후임을 알아챘다. 성시후의 손을 남자 바텐더의 몸에서 떼며 강리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미친 짓이에요?” 술집 안은 한바탕 술렁거렸다. 강리나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 바텐더를 부추겨 일어 세웠다. “정말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남자 바텐더도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손목이 부러진 것 같아. 이분과 무슨 사이죠? 나 경찰에 신고할래요...” “원수요.” 강리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아니면... 제가 병원에 검사하러 데려가 드릴까요?” 남자 바텐더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는 강리나의 말을 들은 성시후의 안색은 급격히 나빠졌다. 그는 거칠게 강리나를 잡아당기며 술집 문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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