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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장

생각을 거둔 강리나가 침실 문을 열었다. 시간이 늦었는지라 성시후가 방에 있어 행여나 그와 눈이 마주칠까 걱정됐던 강리나는 방에 아무도 없는 걸 보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방에 들어간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잠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씻으며 강리나는 좀 전에 남교 별장을 나섰을 때의 장면을 돌이켰다. 별장을 나설 때 송지선이 마침 전화를 받고 있어 육민우더러 대신 배웅하라고 했었다. 그렇게 문 앞에 다다르자 육민우가 먼저 하은지에 관한 얘기를 꺼내며 적절한 시기에 송지선에게 직접 얘기할 테니 당분간은 비밀로 해달라며 부탁을 해왔었다. 강리나는 이에 동의했고 동시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 욕실을 나선 강리나는 마침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보지 않아도 성시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문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화장대 앞에 앉아 방금 드라이한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온 성시후가 주변을 한번 훑더니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강리나는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단 한 번뿐인 눈길이었고 이내 스쳐 지나갔다.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는 성시후를 더 이상 보기 싫었던 강리나가 빗을 내려두고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앉자 성시후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투정 부릴 건데?” 그 말을 들은 강리나는 순간 멈칫했다. ‘투정?’ 그러다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성시후를 바라봤다. 드디어 성시후에게 눈길을 돌린 강리나지만 그를 향한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대표님한테 투정을 부려요? 며칠간 그냥 전으로 돌아간 것뿐이죠. 전이랑 다른 게 있다면 같은 침대에 잔다는 점이랄까요? 그리고 전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냈으면 해요.” “어디가 좋은데?” “전부 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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