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정신을 차린 박태성은 자기 허리에 올라타서 한 손으로 멱살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방금 잠에서 깨어난 탓에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
“이거 놔.”
온채원은 드디어 입을 연 박태성을 내려다보았고, 그녀의 목을 조이는 힘도 살짝 약해지자 마치 잔뜩 약이 오른 다람쥐처럼 양 볼을 잔뜩 부풀렸다.
“태성 씨부터 먼저 놔요.”
박태성은 그녀의 목을 놓아주었고, 시퍼렇게 멍이 든 손자국을 발견하자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누가 함부로 들어오라고 했지?”
온채원은 괜히 찔려서 발끈했다.
“이 시간까지 감감무소식이라 쓰러진 줄 알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싶어서 확인하러 왔을 뿐이에요.”
말을 마치고 나니 더더욱 제 발이 저렸다.
그녀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박태성은 정말 잘 자고 있었고,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불청객이 찾아오고 나서 잘생긴 얼굴에 멍이 들고 입가에 피까지 났다.
온채원은 상황을 수습하려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옷을 사이에 두고도 후끈한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자 박태성은 허리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한동안 성주시 명문가 따님들이 열띤 토론을 펼친 주제가 있었다. 바로 누가 어떤 이유로 대마왕 박태성의 가장 진실된 리액션을 끄집어낼 건지였다.
만약 온채원도 그 토론에 참여했다면 아마 한 대 때려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제야 남자의 몸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온채원은 후다닥 옆으로 굴러서 내려왔다.
비록 잘못한 게 없지만 왠지 모르게 불리한 위치에 처한 느낌이 들었다.
남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올라가 손찌검까지 하다니...
물론 위험에 직면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반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박태성이 먼저 목을 졸랐기에 단지 정당방위에 속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속으로 자기합리화해도 왠지 모르게 억지를 부리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순순히 잘못을 시인했다.
“미안해요. 태성 씨 허락 없이 방에 들어오는 게 아닌데...”
말을 마치고 나서 재빨리 박태성의 방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단숨에 1층으로 내려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이 결혼한 다음 날에 대뜸 손찌검부터 했으니 앞으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
방에 있는 박태성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윽한 눈동자는 마치 작은 돌멩이를 호수에 떨어뜨린 것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잠을 잘 때 그는 타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본가에서 누구나 아는 철칙이라 섣불리 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고, 오아시스는 아무도 머물지 못하게 했기에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가업을 물려받은 다음 줄곧 습관을 유지해왔다.
오늘 또다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박태성은 여자의 목에 난 손자국을 똑똑히 보았고, 대체 얼마나 힘껏 움켜쥐었는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사과까지 했다.
갑자기 찾아온 혼란스러움에 불면증으로 인한 짜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방을 뛰쳐나간 온채원은 박태성이 무슨 생각하는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아침밥을 데우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제야 박태성이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온채원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척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성 씨, 아침 드세요.”
박태성은 여자를 흘긋 쳐다보았다. 어떻게 뒤끝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볼 때마다 헤실거리며 다닐 수 있지? 이내 시퍼렇게 멍이 든 목덜미를 발견하자 괜스레 눈에 거슬렸다.
온채원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연락이 왔는데 주말에 식사하러 오신대요.”
그나마 공통된 대화 주제가 있으면 분위기가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고, 그녀에게 얻어맞아 화가 난 남자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박태성은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감히 할아버지를 빌미로 날 협박하는 건가?’
이내 식탁 위에 놓인 아침밥을 흘겨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서 사 온 음식은 안 먹어. 오늘은 정원의 잡초를 몽땅 뽑아.”
그리고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별장을 나섰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남자 때문에 온채원은 미안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물론 잡초를 뽑으라고 해서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나 무려 2만 원 가까이 주고 산 아침밥을 헌신짝 취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아까워서 차마 입에 대지도 못한 음식을 안 먹겠다고 하면 그만인가? 이렇게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다.
어쨌거나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갔으니 그녀의 목을 졸라도 이해는 가지만 음식을 낭비하고 돈을 버리는 건 용납이 불가했다.
‘이런 재수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