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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이성을 잃을 정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때, 만약 강지훈이 전화를 받거나 떠난다면, 난 아주 수치스러울 것이다. 강지훈의 목젖이 꿀렁거리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의 목을 따라 계속 키스를 했다. 하지만 핸드폰이 또 울렸다. 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나랑 강지훈은 이 밤을 제대로 보낼 수가 없을 것이다. 난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받아.” 강지훈의 표정이 순간 불안해졌다. 그는 한쪽에 놓인 이불로 내 몸을 덮어주며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의 문을 닫긴 했지만, 그의 낮은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귀에 전해졌다. “나 지금 못 가. 간병인한테 해달라고 해.” “널 버리겠단 뜻이 아니야. 나도 나 때문인 거 알아. 알았어, 울지 마. 갈게, 지금 갈게.” 그리고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강지훈이 담뱃불을 붙였다.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처음이었다. 강지훈은 거의 10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공기에는 담배 냄새가 살짝 맴돌았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나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주수연이 전화 왔어. 병원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모처럼 강지훈이 날 속이지 않았다. 이불 아래에 있는 내 몸이 순간 식어버렸다. “남자인 네가 가서 돌봐주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해?” “가서 간병인을 찾아주고 올게.” 강지훈은 이 말을 할 때, 이미 자기의 셔츠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가 결국 갈 거란 걸 알고 있다. 난감하고 속상한 감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올랐다. “강지훈.” “응?” 강지훈은 고개를 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못 가게 매달릴까 봐 두려운 거겠지. 강지훈은 강성의 유명한 사업자였다. 그가 겁먹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너무 긴장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조심히 가.” 말을 마친 나는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강지훈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기운이 가까워지면서 이마가 뜨거워졌다. 그는 입술을 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너그럽게 구니까, 상처를 몇 번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겠지. 강지훈은 가버렸다. 하지만 그가 내 몸에 집힌 불은 가져지지 않았다. 그래서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유세정이 전화 왔을 때, 내 욕망은 이미 식었고 욕조에 누운 채 멍때리고 있었다. “강지훈, 왜 우리 산부인과에 온 거야? 그리고 주수연이랑 여자, 누구야?” 유세정의 말에 난 전혀 의아하지 않았다. 나도 그녀를 숨길 생각이 없어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유세정이 화를 냈다. “남자 혼자서 무슨 과부를 돌본다는 거야? 머리에 고장이라도 났어? 과부랑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왜 굳이 나서는 거야?” 유세정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한 바지를 입고 지낸 친구라서 난 난감해할 것도 없었다. “만약 방금 내 침대에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해?” 유세정은 순간 말이 없었다. “잤어?” “아니. 옷만 반쯤 벗었어.” 이 말이 나오자, 나 자신도 내가 너무 웃겼다. “씨*!” 점잖고 우아한 명의 유세정도 욕을 하고 말았다. “강지훈이 바지를 벗다가 그만했다고? 거기가 안 되는 게 아니면…….” 유세정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녀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강지훈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단 말이겠지. 날 사랑한다면 날 두고 가지 않았을 거고, 날 사랑한다면 한밤중에 다른 여자를 찾아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죽은 친구의 아내가 불쌍해서 챙겨주는 건 잘못 없지만, 강지훈은 이미 선을 넘었다. “너 포기하겠다며? 얼른 안녕해. 그래야 더 좋은 남자를 찾지.” 유세정이 날 설득했다.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강지훈을 포기하는 건 쉽지만, 강씨 가문은 어떡하지? 지금의 강씨 가문은 나의 집이다. 강지훈의 부모님은 날 친딸처럼 대했다. 그들이 날 키워줬고, 특히 미연 이모는 마치 친엄마처럼, 내가 처음 생리 왔을 때도 미연 이모가 날 가르쳤고 내 더러워진 옷을 씻어주었다. 유세정은 내 침묵에서 뭔가 깨달았다. “나은아, 사실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어. 강지훈이 너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어딜 가도 네가 자기 와이프라고 하잖아. 그 과부의 상태가 심각해서 지금 나간 걸 수도 있어. 아무튼 난 강지훈이 그런 과부랑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해. 그것도 임신한 과부랑. 설마 그 아이의 아빠가 되려고 들이대겠어?” 주수연이 강지훈을 쳐다보는 눈빛이 생각났다. “만약 그 여자가 마음이 있다면?” “뭐?” 유세정은 잠시 경악하더니, 또 감탄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강지훈은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남편이잖아. 그 과부가 마음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 “그렇다면 강지훈이 더 멀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가 힘들 때 잘해주면, 마지막 희망을 잡은 줄 알고 절대 놓지 않을 거야.” 말을 마친 유세정이 잠시 멈추었다. “내가 봐줄게. 별일 없을 거야.” 난 그제야 유세정이 갑자기 야근하러 간 게 생각났다. “됐어. 일찍 들어가서 쉬어. 영원히 감시할 순 없잖아.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뭔가 있다면, 아마…….” 난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동안 강지훈의 이상 행동을 떠올리며 계속 말했다. “아마 벌써 시작했겠지.” 유세정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긴. 하지만 나은아, 너도 너무 고민하지 마. 만약 강지훈이 널 배신했다면, 빨리 잘라버려. 각자의 길을 가자고. 아무튼 넌 아직 젊고 예쁘잖아. 네가 원한다면 미남 얼마든지 있어.” “하.” 난 피식 웃고 말았다. 만약 정말 그런 날이 오면 난 강지훈과 결혼 안 한 걸 감사해야 하나? 일부러 하품하면서 유세정과 전화를 끊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날이 거의 밝았지만, 강지훈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외근을 해야 해서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미연 이모랑 석진 삼촌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때, 집에서 나왔다. 사실은 두 사람이 물을까 봐, 겁이 났다. 신혼 방은 그저 핑계이고, 미연 이모는 그저 나랑 강지훈한테 기회를 마련해 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도 난감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남편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여자를 찾으러 갔으니. 8시가 조금 넘을 때,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강지훈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난 그 번호를 보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결국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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