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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어르신이 중매를 서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었으니 순간 진형우의 그 차갑고 무욕스런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그러다 이내 방을 바꾸는 부탁을 거절하며 직설적으로 냉정한 모습을 보였던 그 광경이 떠오르자 괜히 오기가 생겨 나는 통쾌하게 답을 했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비록 승낙을 하긴 했어도 그 말들을 그닥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나는 어르신의 집에 있는 자전거를 빌려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 다 되어갔고 몸에는 그림판이 하나 들려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걸 아는 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무용반, 그림, 서예반 심지어 쟁을 배우라고 학원을 등록해 줬었다. 허나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배우던 재능들을 멈추게 되었고 유일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건 그림이었다. 펜 하나와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장소 불문하고 그릴 수 있는 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 밖에서 둘러보다 나는 자리를 잡고 새로운 청평시가 담긴 그림을 그렸다. 부모님의 가장 큰 소원이 여기에 돌아와 보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돌아올 수가 없으니 한도 풀어줄 겸 그 그림을 하늘나라로 태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은아, 왜 이제야 돌아왔어?”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냉큼 앞으로 마중을 나온 어르신은 나한테 눈짓을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르신...” “형우도 집으로 돌아왔어. 그리고 미리 얘기는 다 해놨어.” 어르신은 진형우의 방을 가리켰다. 그제야 아침에 했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어르신, 진짜 말했어요? 저 장난이었어요.” “얘도 참, 무슨 그런 걸로 장난을 쳐? 아무튼 난 얘기했어.” 어르신은 몹시나 진지했다. “그래서 뭐래요?” 나는 자전거를 세우며 물었다. “너하고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대.” 어르신은 나를 툭 치고 있었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내가 볼 땐 형우도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나도 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잘 되면 결혼 축하주로 대접할게요.” “그래. 약속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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