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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고아람이 얼른 말했다. “안녕하세요, 전 신 교수님의 제자입니다.” 전화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요.” 고아람이 조심스럽게 다시 되물었다.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혹시 언제쯤 괜찮으실까요?” “6시쯤이요. 어디가 괜찮으신가요?” “말씀해 주시는 데로 가겠습니다. 전 어디든 다 됩니다.” “6시 이후, 골드 로펌으로 오세요.” “네.” 뚝…. 통화가 끊겼다. 고아람은 두 눈을 껌뻑거렸다. 참, 차가운 사람이었다. 이제 아침 시간인데 저녁 6시는 되어야 만날 수 있다니, 그 말인즉슨 오늘은 하루 종일 시간이 있다는 뜻이었다. 고아람은 신미연에게 돈을 줄 건데 만날 수 있겠냐고 전화를 했다. 신미연은 오늘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었기에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계속 호텔에 머무는 것도 방법은 아니었다. 인테리어까지 3개월이 필요해 고아람은 일단 지낼 수 있는 오피스텔에서 지내다 인테리어가 끝나면 다시 이사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인터넷으로 방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적당한 집이 없었다. 오후 5시 반, 그녀는 미리 골드 로펌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경시에서 가장 번화한 구역에 위치한 골드 로펌 본사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건물은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녀는 빌딩 아래에서 6시까지 기다린 뒤에야 안쪽으로 들어갔다. 역시 8대 로펌 중 으뜸답게 환하고 넓은 접견실 로비는 백 명도 거뜬히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프런트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박 변호사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직원이 물었다. “미리 약속을 하신 걸까요?” “네.” 고아람이 대답했다. “그럼 이리로 오세요.” 직원은 그녀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위층으로 올라가 사무 구역을 지나갔다. 사무실 문 앞으로 도착한 그녀는 작게 노크했다. 똑똑.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직원이 문을 열었다. “변호사님, 미리 약속을 하신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고아람은 안쪽을 바라봤다. 넓고 심플한 스타일의 사무실 안, 넓은 테이블 위에는 정리된 자료들이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는 고개를 푹 숙여 얼굴은 보이지 않고 검은 머리카락만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박해일이 고개를 들자, 고아람은 그제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윽하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단단한 멋이 있었고 두 눈빛에 서린 서늘함은 모든 감정을 집어삼킨 듯 금욕적인 기운을 물씬 풍겨 사람을 홀리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위압감을 자아냈다. 고아람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남자의 아우라는 지나치게 강했다. 서지훈도 눈빛 하나로 사람을 흠칫 떨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지만 눈앞의 남자가 보이는 위압감은 조용하게, 수많은 경험이 뼈에 새겨져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박해일은 담담한 눈으로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사무실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셔츠 차림의 그는 옷자락을 적당히 정장 방지에 찔러 넣어 길쭉하고 곧은 몸을 보여주었다. “장민우 씨, 마실 것 좀 내주세요.” “들어와 앉으시죠.” 바지를 정리하며 그는 접견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고아람은 다가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박해일의 시선이 무심하게 그녀에게로 향했다. 고아람은 얼굴이 아주 작았다. 단발로 자른 뒤에는 이목구비가 더욱더 선명해졌고,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기니 작고 귀여운 귀가 드러났다. 오똑한 작은 코 앵두같이 붉은 입술은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이건 제 이력서입니다.” 고아람이 건넨 이력서를 받아 든 박해일은 자세히 살펴봤다. 음료를 가지고 들어온 장민우가 고아람에게 건네주었다. 양손으로 받은 고아람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장민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별말씀을요.” 박해일의 앞에도 컵을 내려놓은 그녀는 이내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박해일은 담담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법대 석박사라, 학력은 높은데 실전 경험이 없으시네요?”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졸업 이후엔 왜 일을 하지 않은 거죠?” 고아람은 잠시 침묵했다. “결혼했습니다.” 이번에는 박해일이 더 묻지 않았다. “고용이야 할 수 있습니다만, 말단부터 시작해야 할 겁니다. 수습 기간은 1년이고요.” 그의 말투는 냉담하다 못해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고아람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용만 된다면 그것은 기회였다. “내일부터 출근하시죠.” 말을 마친 박해일은 곧바로 사무실 테이블로 향했고 고아람도 벌떡 일어났다. “네, 감사합니다.” 박해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전 신 교수님 체면을 봐 드린 겁니다.” 이력서를 챙기던 고아람의 손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네, 알아요.” 사무실에서 나온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무실 문이 닫힌 순간, 박해일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문을 흘깃 쳐다봤다. ‘후우….’ 문을 닫은 고아람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비록 앞으로 저런 상사와 마주하게 되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의지를 단련할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닐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올 때는 차를 타고 온 탓에 그녀는 주변 환경도 알아보고 적응도 할 겸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하이힐을 신은 고아람은 오래 안 신다가 오랜만에 다시 신으려니 발이 적응을 하지 못해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팠다. 옆에 있는 꽃밭 턱에 앉아 신발을 벗어보려는데 검은 그림자가 그녀에게 드리워졌다. “날 찾아온 거야?” 뼈에 박힐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에 고아람은 고개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역광으로 비치는 서지훈이 보였다. 이렇게 아래에서 바라보니 턱선이 유난히 날카로워 보였다. “우연히 여기에 앉아 있던 것뿐이야.” 그녀가 한 마디 해명을 했다. 서지훈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우연? 우연히 화장을 했고 우연히 예쁜 옷을 입고 또 우연이 내가 있는 사무소 옆에서 또 우연히 나를 만난 거지, 절대로 일부러 꾸미고 다시 만나자고 날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거지? 고아람, 핑계를 대도 좀 믿을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어? 무슨 우연이 그렇게나 많은데.” 고아람은 오늘 갈색의 허리끈이 있는 코트를 입고 있었다. 허리끈을 묶은 탓에 얇은 허리가 여과 없이 드러났고 베이지색의 하이힐은 가는 종아리를 드러내고 있어 훤칠하고도 섹시하게 느껴졌다. 특히 지금처럼 앉아 있으니 다리는 더 많이 드러나 있었다. 오늘 이런 차림을 한 것도 박해일을 만나는데 예의를 잃을 수는 없었던 거라 고아람은 코웃음을 쳤다. 예전의 고아람은 하루 종일 서지훈의 곁에서 맴돌면서 의식주를 챙겨주었었다. 어떤 정장에 어떤 넥타이가 어울리는지부터 어떤 브랜드의 바디워시를 좋아하는지까지, 세심하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이런 차림을 하고 있는 건 특별히 치장을 한 것 같기는 했다. 고아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보니 지금 있는 곳이 서지훈의 변호사사무실과 멀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재결합 얘기를 한다고 했더니, 확실히 공교롭기는 했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진짜 오해야. 이혼을 했으면 한 거지. 난 재결합하자고 찾아오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서지훈의 분노는 더욱더 커졌다. 벌써 며칠째인데, 도무지 끝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젯밤에는 습관적으로 그녀를 안으려는데 침대 반대쪽이 텅 비어 있었다. 깨어난 뒤에는 도무지 잠에 들 수가 없어 계속 그녀의 메시지만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문자 한 통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고아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보냈었다. 예를 들면, 뭐 먹냐부터 시작해서 몇 시에 돌아오는지, 오늘 바쁜지 같은 물음이었고 설령 싸워서 사이가 안 좋을 때에도 24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토록 서지훈을 사랑했다. 이번에는 투정이 너무 길었다. 서지훈은 집에 돌아와도 고아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요 며칠 아침도 제시간에 먹지 못한 탓에 속이 다 쓰리기까지 했다. 오랜 시간 길러낸 생활 습관을 이렇게 순식간에 바꾸려니 생활 리듬마저 다 깨졌다. “고아람, 적당히 하지?”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날 화나게 하겠다고 정말 뭐든 다 하는구나. 내가 당신 긴 머리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단발로 자르다니, 이러는 거 좀 과해.” 비록 단발로 자르니 전보다 더 예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긴 머리의 청순하 고아람이 더 좋았다. 고아람의 얼굴에 의아함만이 드러났다. 그녀는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터졌다. “근자감도 병이야. 정신과 가서 검사라도 받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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