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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장

얼마나 지났을까, 밖은 어느새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준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정장을 갈아입은 뒤 방을 나갔다. 조용한 방 안에 정은지만 침대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웅크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지만, 몸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정은지는 지금도 알지 못했다. 여준수가 대체 왜 그렇게나 화가 났는지, 왜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지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속으로 한번 또 한 번 말했다. 너는 울 자격이 없다고, 다 네가 자처한 일이라고. 지난 생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준수에게 상처를 준 일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오늘 그녀는 그저 아내로서 응당 해야 할 의무를 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같은 시각, 여준수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밤새 그녀를 괴롭히고 나서 그런지 여준수의 분노는 많이 사라졌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가자 점차 진정되었다. 고개를 돌려 위층을 보았다. 방에선 여전히 밝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여준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거칠게 대해버렸다. 방에서 나오기 전까지 정은지는 이불 속에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여준수는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뭘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지 않은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여준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 그날 아침이 지난 후, 정은지는 이틀 동안 여준수의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꼭 지난 생에서 결혼한 뒤 한동안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처럼 말이다. 지난 생이 떠오른 정은지는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번은 그녀의 잘못이라는 것을. 하지만 대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대체 왜 그토록 화가 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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