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하산하여 파혼을 요구하다
“당신이 바로 저희 할아버지가 점찍어둔 약혼자인가요?”
비암산, 청운관 앞.
하강우는 눈앞의 짧은 치마를 입은 몸매 좋고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조금 낯선 얼굴이었다.
“누구시죠?”
“전 당신의 약혼녀인 하늘 그룹의 대표 안소영이에요.”
약혼녀?
하강우는 생각해 보았다. 어르신이 하강우에게 그의 혼처를 찾아 주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저랑 결혼하려고 절 찾아온 건가요?”
“결혼이요? 얼굴도 못생기고 집안 형편도 변변찮은 당신 같은 촌놈이 무슨 자격으로 저랑 결혼한다는 거죠? 제가 신은 하이힐은 600만 원이고 원피스는 1,000만 원이에요. 매달 화장품 사고 관리받는 데만 1억 넘게 든다고요. 당신이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감당 못 하죠. 감당할 생각도 없고요.”
“감당할 생각이 없다고요? 당신은 감당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난 파혼하러 온 거예요. 얼른 혼인계약서 가져와서 돌려줘요!”
하강우는 어르신이 줬던 그 상자를 꺼내서 열어보았고 곧 깜짝 놀랐다.
어르신은 그의 혼처를 찾았다고만 했지, 이렇게 많은 혼처를 찾았다고 한 적은 없었다.
상자 안에는 총 9개의 혼인계약서가 있었다.
하강우는 그것들을 전부 꺼낸 뒤 하나하나 뒤져보았고 그중에서 안소영의 것을 찾아냈다.
하강우는 그것을 안소영에게 건넸다.
하강우의 손에 들린 계약서들을 본 안소영은 그를 욕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러고는 들고 있던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었고 종이 쪼가리들은 바람에 의해 날아갔다.
“계약서는 찢었으니까 파혼한 거예요. 이제 우리 둘은 이제 아무 사이 아니에요!”
말을 마친 뒤 안소영은 또각또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하강우는 목구멍이 뜨거워짐을 느꼈고 이내 피를 왈칵 토했다.
“욱...”
하강우는 파혼당했다는 이유로 화가 나서 피를 토한 게 아니라, 그의 체내에 있는 일곱 개의 용맥 중 하나를 더는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년 내로 일단초를 찾지 못한다면 그의 체내에 있는 드래곤 독이 몸으로 퍼져나가 죽게 된다.
그래서 하강우는 반드시 하산해야 했다.
하산하여 일단초를 찾고 내친김에 다른 결혼 약속도 취소해야 했다.
...
철용호가 궤도 위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을 통해 승무원의 단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역은 중해 남역, 중해 남역입니다. 승객들께서는 하차할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체내의 드래곤 독을 억누르기 위해 하강우는 가는 길 내내 운기조식하고 있었다.
열차가 곧 역에 도착할 때쯤, 자리에서 일어난 하강우는 기지개를 켠 뒤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에 걸고 있던 칠용옥패가 바닥에 떨어졌고, 데굴데굴 굴러 한 좌석 밑으로 들어갔다.
하강우는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옥패를 주우려고 했다.
“아!”
날카로운 비명에 하강우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곧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보았다.
하강우는 당황하던 그때 플래시가 끊임없이 터져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찰칵!
찰칵!
안소영은 휴대전화를 들고 밑에 있는 하강우의 사진을 미친 듯이 찍어대며 그의 범죄 과정을 전부 기록했다.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긴 뒤에야 안소영은 상대가 하강우임을 발견했다.
“당신 뭐 하는 거예요?”
“옥패가 떨어져서 줍고 있는데요.”
“옥패를 줍고 있었다고요? 지금 보니 변태였네요! 파혼당한 게 억울해서 날 미행하고 심지어 날 성추행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난 당신을 따라다니는 데 관심 없어요. 그리고 당신을 성추행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고요.”
“관심 없다고요? 일부러 옥패를 내 좌석 밑에 떨궜잖아요. 내가 당신 속셈을 모를 것 같아요? 참 뻔뻔한 변태네요!”
하강우는 대꾸하기 귀찮아서 옥패를 주머니 안에 넣은 뒤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거기 서요!”
“또 무슨 일이죠?”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우리가 결혼 약속을 한 적 있다는 사실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아요. 창피하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또 날 귀찮게 한다면 바로 신고할 거예요. 조금 전에 찍었던 사진들만으로도 당신 죄를 입증하기엔 충분하니까요!”
“싱겁네요.”
중해 남역 출구.
하강우는 뱀 가죽 가방을, 안소영은 루이뷔통 신상 백을 들고나왔다.
“왜 또 날 따라오는 거예요?”
하강우는 고개를 돌린 뒤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앞에 있고 안소영 씨가 뒤에 있어요. 날 따라오는 건 안소영 씨겠죠.”
이때 롤스로이스 한 대가 다가와서 천천히 멈춰 섰다. 곧 차 문이 열렸고 남다른 분위기를 띤 어르신이 차에서 내렸다.
안소영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유승철?’
번호판을 보니 송씨 가문의 롤스로이스였고, 그 어르신은 송씨 가문의 집사 유승철이었다.
하늘 그룹은 엄청난 공을 들인 끝에 겨우 한스 그룹의 고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다음 주에 발표된다.
유승철은 송씨 가문에 수십 년간 지냈고, 송씨 가문에서 가장 신뢰하는 심복이었기에 만약 그와 좋은 관계가 된다면 하늘 그룹은 틀림없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안소영은 또각또각하는 소리를 내면서 기대 가득한 얼굴로 유승철의 앞으로 달려갔다.
“유승철 집사님, 안녕하세요! 전 하늘 그룹의 안소영이라고 합니다...”
안소영은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아주 예의 바르게 자기소개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유승철은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고 그녀를 무시했다.
그래서 안소영은 허공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자기소개를 한 셈이 되었다.
송씨 가문의 집사가 사람을 무시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중해 최고 가문의 집사이니 말이다.
머쓱해진 안소영은 화풀이할 곳이 필요해서 하강우를 욕하려고 했다.
그녀는 하강우가 자신을 따라다녀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안소영은 유승철이 하강우 앞으로 걸어가서 그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는 걸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걸어가서 몰래 엿들으려고 했다.
“혹시 하강우 선비님이신가요?”
“선비라뇨, 과찬입니다. 전 하강우인데 누구시죠?”
“전 송씨 가문의 집사 유승철입니다. 아가씨께서 하강우 씨를 모셔 오라고 명하셨어요. 저희 아가씨 성함은 송아영이고 하강우 씨의 약혼녀입니다. 지금 집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강우는 그의 안내에 따라 차에 오른 뒤 롤스로이스를 타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