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병실안. 시들시들해 있던 심준호는 유민서를 보자 활기가 넘쳤고 눈에서는 빛이 났다. “아연아!어서와!할아버지한테 와!” 유민서는 태도가 확 바뀌더니 고분고분하게 심준호의 옆에 앉는다. “할아버님 괜찮으세요?어디 불편하신데는 없으세요?” “아무리 안좋아도 너만 보면 이 할아버지는 있던 병도 싹다 낫는거 같단다!” 심준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아연아,이놈이 그러는데 너희둘 이혼했다는데 사실이야?” “네,할아버지.저희 이혼했어요.”유민서는 눈초리가 떨리더니 가슴도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녀석!이렇게 좋은 와이프 놔두고 바랄걸 바래야지?!”심준호는 겨우 몸을 일으키면서 째려보았다. 심경준은 할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어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할아버님 경준이한테 회내시지 마세요.제가 끝내고 싶어서 끝내는거예요.저랑 경준이는 그냥......어쩌다 마음이 맞은거예요.”유민서는 나긋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할아버님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심경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여자는 할아버지 앞에서 서러움을 호소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할아버지를 이용해 남자한테 화를 표출하면서 복수하는게 틀림없다. 설마 이미 끝난 사이를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남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는것일가? 백아연,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내가 너한테 넘어갈거 같아? “아연아,너 혹시 우리집에 있으면서 힘들었어?진미숙이 너한테 못되게 한거 아니야?”심준호가 마음 아파하면서 물었다. “아니예요 할아버지.저랑 경준이 여러모로 안맞아서 서로 마음이 안가서 헤여지는게 서로한테 다 좋은거라고 생각해요.” 유민서는 눈에 슬픔이 스쳐갔다. “경준이 너무 탓하지 마세요.삼년동안 서로 좋은 기억 남겼으니까 그걸로 됐어요.저희 둘다 후회는 없어요.” 이말을 들은 심경준은 눈썹이 찌푸려졌고 말로 설명할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백아연이랑 좋았던 추억이 없었고 심지어 그녀한테 형식적인 결혼식도 해준적이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의 핍박하에 혼인신고 하였고 그녀는 짐만 간단히 싸서 심가네에 들어가 명분만 있는 와이프가 되었다. 이여자 진짜 좋았다고 느끼는걸가?그 반대겠지. “아연아......그럼 설마......내가 잘못한거야?” 심준호는 눈가가 촉촉해져서는 자책감이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같이 있게 한건데......이 녀석이 이렇게 제구실을 못할줄은 몰랐어.휴!어찌됐든 내가 미안하게 됐다.” “그런말 하지 마세요.사람 인연이라는게 억지로 붙잡아서 되는거 아니잖아요.저 진짜 다 내려놨어요.진짜예요.” 13년간의 미련은 그제야 온전히 내려놓을수 있었고 그녀는 살가죽이 찢겨나갈듯이 아팠다. 하지만 심경준은 저렇게도 단호한데 계속 매달리다가는 자존심마다 사라질거 같았고 그녀는 남자의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 보기만 해도 역겨운 여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서비서,우리 손주며느리한테 준비한 생일선물 가져와!” 서비서가 흰장갑을 끼고는 고급진 레드벨벳 악세사리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를 여니 안에는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소장급 에메랄드빛 팔찌였다! 유민서는 보물감정을 할줄 아는 사람으로서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물건이 틀림 없었고 적어도 백년의 역사가 깃든것으로 보였다! “할아버지,이거 할머니.......”심경준은 그 팔찌를 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맞아,이게 내가 그 당시에 할머니한테 준 약혼선물이야.이거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인데 네 증조할아버지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거야.” 심준호는 팔찌를 들면서 해빛에 비추어 보더니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네 할머니가 죽기전에 나한테 할머니 악세사리중에서 가장 좋아했던게 이 팔찌라고 이제 이걸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손주며느리한테 주라고 했었어.” “지금 할머니가 없으니 이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연이한테 주려고 해.아연이만 이걸 가질 자격이 있어.” “안돼요 할아버님.이,이거 너무 과분해요.그리고 저는 더이상......”유민서는 당황해서 거절했다. “네가 경준이랑 헤여져도 넌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내 손주며느리야!” 어르신은 그녀가 받지 않자 억지 부렸다. “네가 안받으면 이거 깨부실거야!” “그러지 마세요!”유민서가 다급히 어르신의 손을 잡아 막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저 받을게요.감사해요 할아버님!” “그래!착해!”심준호는 뿌듯해하면서 친히 그녀한테 끼워주었다. 유민서는 워낙 피부가 하얀데 비치는 그린셔츠 밑바침하에 여자의 손은 더 백옥같이 하얗고 눈처럼 하얘보였다. 심경준은 한번도 이렇게 그녀의 손을 자세히 쳐다본적 없었는데 지금보니 하얗고 보드라운 손은 전혀 팔찌영향을 받지 않았고 예뻐보였다. “너 이 녀석,넌 아연이 생일선물 뭐해줬어?”심준호는 화가 나서 물었다. “할아버님,경준이......저한테 생일선물 줬어요.그것도 아주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요.” 심경준은 주먹을 꽉 쥐었고 깨문 입술은 하얗게 번졌다. 그녀의 생일날,그는 확실히 그녀한테 “큰선물”을 주었다——이혼합의서 백아연,아주 사람 가지고 노는 재주가 대단해! “아연아,너랑 경준이.......진짜 잘될 가능성은 없는거야?”심준호는 끝이 없다. “할아버님......”유민서가 심준호의 거친 손을 살며시 잡았다. “진짜 저 아끼시는거면 제가 원하는 삶을 살수 있게 응원해 주셔야죠.안그래요?” “어휴!그래.이렇게 된 판에 할아버지도 뭐라고 말 못하겠다.할아버지가 부탁하는데 제발 내 팔순잔치 끝날때까지만 같이 있다가 둘이 갈라서면 안될가?어차피 며칠차이 안나잖아.”심준호는 미련이 가득해서 애써 붙잡으려 한다. “할아버지,그건 아닌거 같아요.”심경준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아닌거 같은데?안그럼 네가 김은주 데리고 나한테 팔순축하하고 내가 손주며느리로 억지로 인정하면 그때는 괜찮은거야?사촌끼리 심가네 남자들을 손에 쥐고 휘두르게 가만히 두라고?꿈깨라고 그래!” “심준호는 화가 나서 침대를 내리쳤다. “너 이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로 생각하는거면 제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게 김은주 멀리래!난 절대 그애 못받아들여!” ...... 문밖,김은주는 조바심이 나서 갔다왔다 서성이는데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만 움직여.머리 아프려고 해.” 진미숙은 관자놀이를 만지면서 머리를 저었다. “진정 좀 해.노인네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것도 아니고.오늘내일 하는 사람인데 경준이를 얼마나 좌지우지 할수 있다고 생각해?넌 그냥 경준이 마음만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말는 말이긴 한데 어르신이 살아있는한 나 인정도 안해줄게 뻔한데 그러면 나도 경준오빠한테 당당하게 시집 못가잖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은주는 서둘러 입을 막으면서 사방팔방 두리번 거렸다. “처음에 노인네가 끝까지 나 인정 안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어떻게 됐어?그래도 당당하게 네 이모부한테 시집왔잖아.” 진미숙은 손가락을 쳐들고는 새로한 네일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은 못이겨.경준이가 너 아님 안된다고 하면 노인네 흔들리는건 시간문제 아니겠어?” 김은주가 생각해봐도 틀린말은 아닌것 같았고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이때 병실문이 드디어 열린다. 서비서가 두사람을 배웅한다. 김은주는 속마음을 감추고 반갑게 맞는척 했다. 갑자기 그녀는 눈이 커졌다! 유민서 손목에 있는 에메랄드빛 옥팔찌가 너무 예뻐서 시선을 뗄수가 없었다.자신의 손에 있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그여자가 들어갈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나올때는 있었다.보나마나 노인네가 준게 뻔하지 않을가?! 김은주는 질투가 나서 얼굴이 말도 아니였다.나쁜 생각이 떠올랐고 두사람앞에 다가가서는 유민서한테 갑자기 덮쳐들었다. “아!” 김은주는 원래 발을 다친것처럼 죄를 뒤집어 씌워 잡아당기면서 그여자의 팔찌를 깨드릴 계획이였다. 하지만 누가 생각이나 했을가.유민서가 웃으면서 몸을 비켰다. 김은주는 그자리로 바로 그여자앞에서 넘어지면서 꽈당 했다! 그리고는 바로 땡그랑 소리가 났다—— 김으주 손목에 있던 팔찌가 떨어져 깨지면서 두동강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