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이시각 유민서는 헤어 스타일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비녀를 머리에 꽂았다.네이비컬러의 무대복을 입고는 팔소매를 나붓기면서 유진성에서 곤곡《모란정》을 불러준다. 눈망울은 울듯 말듯 하면서 춤을 추는데 자태는 요염했다. 한곡만 했을뿐인데 유진성은 홀린듯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고 눈에는 온통 총애하는 눈빛으로 가득했다. “아주 멋진 무대였어.역시 셋째 엄마가 잘 가르쳤단 말이지.옛날 시대 같았으면 너정도면 귀비는 문제 없었을거야.” “누가 첩 하겠대.난 할거면 왕비할거야.아주 자신있게 눈부실거야.”유민서는 두손을 마주잡고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왜?첩 들이는 제도가 없었으면 우리도 새엄마 셋이나 생길수 없었을거야.”유진성이 허탈해서 말했다. 유민서는 팔을 걷어 올리고는 머리를 아래로 떨구면서 큰오빠 옆에 앉아서 세명의 새엄마를 생각하더니 얼굴은 알수없는 표정이였다. “민서야,삼년동안 그분들 다 너 엄청 보고싶어 하고 너 걱정하고 계셔.다들 나한테 니 소식 알아보고 다녔었어.” “큰오빠,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민서야,네가 집 나가서 혼자 해외가서 국경없는 의사로 활동하고 싶다고 했던게 네가 아빠한테 화나서 그런 결정 했다는거 나도 잘 알아.” 유진성은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 “근데 뭐 어쩌겠어.우리 아빠가 그런 사람인데.우린 선택권 같은거 없어.더구나 세상에 결점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너도 네가 그렇게 오래동안 사랑했던 심경준도 결혼한지 삼년 되니까 안좋은 버릇 있다는거 알았잖아?” 유민서는 눈초리가 떨렸고 손에 하고 있던 옥팔찌를 만지작 댔다. “다른게 있다면 넌 심경준을 떠날수 있지만 영원히 아버지와의 혈연관계는 끊어내지 못하는거잖아.끊어내지 못하는거면 차라리 그냥 받아들일수 있게 노력해봐.그리고 아버지는 너 엄청 사랑해.다른 세 엄마들도 다들 착한 사람들이야.여태껏 다른 마음 먹지도 않고 집안일들 하나같이 다 마음 다해서 신경 써줬어.내가 그분들 담보 서줄수 있어.” 사실 유진성은 잘 모른다. 어떤 일떄문에 이미 2년전,유민서는 천천히 그분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한민수는 심경준에서 드레싱을 해주고 방에서 나갔다. 심경준은 김은주가 울며 억지부리면서 물건을 부셔대는 모습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났다.그가 기억한 바로는 그의 첫사랑은 더할나위없이 착하고 다정하고 여린 사람이였는데 이정도로 무례한 일을 할 사람은 아니였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면 사람이 변하는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김은주는 남자의 소꿉친구다.제일 힘든 시간들을 그녀가 함께 해주었고 남자는 여자한테 미련이 남는다. 하여 무슨일이 있더라도 남자는 무조건 여자랑 결혼할 생각이다. 고통을 참아가면서 서류들을 결재마친 심경준은 또 쏘파위에 놓인 양복으로 눈길이 갔다. 남자는 다가가서 옷을 들어 자세히 살펴본다. 비록 남자와 유진성의 키는 비슷했지만 남자의 어깨가 유진성보다는 조금 넓었고 몸도 더 튼실했다. 아무리 봐도 본인 사이즈 같았다. “안예뻐.”남자가 비웃었다. 몇분후. 심경준은 그 양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는 거울을 비춰보더니 팔도 들어 보았다.몸에 딱 맞는게 제작한 옷이지만 그 어떤 브랜드 못지 않았다! 시골여자가 보는눈은 있나보네? 이때 노크소리가 들리면서 미진아주머니가 뜨거운 우유를 가지고 들어왔다. “어?도련님,작은 사모님이 준비하신 옷 입으셨네요?작은 사모님이 아시면 엄청 좋아할거예요!”미진 아주머니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집안에서 누구나 다 백아연을 보잘것 없게 여기지만 유독 심경준을 어릴때부터 키웠던 미진아주머니만은 아니였다. “뭐라고요?”심경준은 깜짝 놀랐다. “지금 입으신게 작은 사모님이 준비하신거 아니예요?이거 맞는데......이거 한달전에 작은 사모님이 저한테 부탁해서 제가 가서 가져온거예요.그때 작은 사모님이 도련님한테 준비한 생일선물이라면서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거든요.” 생일선물?심경준은 자리에 얼어붙었다. 근데 그의 생일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아주머니,아주머니하고 백아연이 사이가 좋은건 저도 아는데요.그래도 이미 떠난 사람 편드는건 그만 하셔도 될거 같아요.”심경준이 쌀쌀하게 말했다. “도련님,제가 도련님 어릴때부터 봐왔잖아요.이 집안에서 도련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마음이 잘 안가요!” 미진 아주머니는 다가오면서 거울에 비친 잘생긴 남자의 모습을 보는데 눈빛이 의미심장해서 말했다. “작은 사모님이 그러시는데 한땀한땀 직접 하시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고 하더라고요.원단도 직접 고르고 단추도 본인이 직접 제작해서 만드신거라 했어요.평서 집안일 하느라 바빠서 매일 틈만 나면 재봉소 가서 만드셔서 한달전에 미리 완성 된거라 도련님이 발견할가봐 옷장에 숨겨두신다고 하셨어요.” 심경준은 가슴이 뭔가에 부딪힌듯 아팠고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괜히 눈을 더 부릅 뜨고 있었다. “못믿으시겠으면 태그 한번 보세요.거기 도련님 이름도 새겨져 있을걸요.” 심경준은 입고있던 옷이 불에 탄것마냥 재빨리 옷을 쏘파에 벗어 던졌다. “저희 이미 이혼했어요.그여자가 뭘 했든 나 관심없어요.그러니까 가서 쉬세요.” “도련님,왜 작은 사모님하고 이혼 하시려는거예요?사모님 얼마나 좋은 여자예요.사모님은 도련한테 일편단심인데......” “저한테 일편단심이라고요?” 심경준은 가슴을 미여쥐면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일편단심이라는 사람이 나 떠나자마자 다른 남자 찾아가요?” “작은 사모님이 어떻게......”미진아주머니가 경악했다. “삼년은 지나야 한사람을 제대로 안다더니 틀린말 하나 없어요.” 심경준은 백아연에 대한 감정을 모두 정리하였고 피가 거꾸로 솟는듯 했다. “진심도 아니면서 왜 내가 아니면 안되는거마냥 연기까지 해가는걸가요.그러면 내가 그여자랑 다시 잘해볼 마음 생길줄 아나 보죠?나 심경준 그렇게 그여자한테 쉽게 놀아날거 같아 보이나 보죠?” “도련님,둘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거 같아요.작은 사모님이 도련님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제 입장에서 보면 눈에 선하거든요.”미진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 하면서 다가가서 양복을 고이 접어놓는다. “됐어요 아주머니.그만해요.” “작은 사모님 놓치면 이제 후회 하실거예요.”유민서는 늦잠을 자려 했지만 평소 생활패턴으로 인해 다섯시가 돼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일어나서 심가네 식구들한테 아침을 차리고 있었을거다. 지금의 그녀는 다시는 기름냄새를 맡아가면서 대가족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심가네 식구들 눈치를 안봐도 된다. 얼마나 좋아!이혼하니까 날아갈거 같아! 유민서는 대충 씻은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별장 뒷쪽에 있는 호수가로 가서 노를 젔는다. 호수가에서는 핀 꽃들사이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그과중에 유민서는 두팔을 움직이며 힘있는 자세로 부드럽게 노를 저으면서 호수면을 스쳐 지나간 뒤로 잔잔하게 물결이 인다. 운동 끝나고 아침을 먹고 씻고 나오자 유민서는 정신이 맑은 상태로 아랫층으로 내려간다. 임주승은 아가씨를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유민서는 오늘 똥머리를 했고 메이크업은 여전히 화사했고 손바닥만함 얼굴은 맑고 눈빛은 초롱하며 어깨에는 검정색 쟈켓을 걸치고 안에는 빨간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가녀린 몸매와 기다린 다리는 사뭇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어이,침 좀 닦아.”유민서가 그의 앞에 다가와서는 손가락을 튕겼다. “스읍——”임주승은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아가씨,진짜 예뻐요.” “명색에 큰오빠랑 다니는 수석비서인데 예쁜 여자만 보면 뿅가는건 좀 아닌거 같은데.”유민서가 우스워서 머리를 저었다. 롤스로이스는 기성월드호텔로 향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대표가 쥐도 새도 모르게 식당에 나타나니 분명 미모가 탑인 여자인데 직원들은 전부 쥐가 고양이를 만난듯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고 황송해 했다. 어제의 교훈이 있은후로부터 그 누구도 다시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호텔바닥은 광이 날 정도로 깨끗해졌고 모든 식자재들도 신선했다. 유민서가 한바퀴 둘러보고 간단히 지적한후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기 딱히 별일 없으니까 주승이 너 큰오빠한테 먼저 가봐.” “저 다시 갈 필요없어요.”임주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대표님이 그러시는데 앞으로 아가씨만 모시면 된다고 하셨어요.이제부터 저 아가씨 비서예요.” “뭐?!” 유민서가 당황해 하면서 물었다. “큰오빠 오늘 나한테 선물 주기로 했는데 설마 그게......넌 아니지?!” 임주승이 눈을 깜빡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런! 큰오빠 선물 잘 골랐네!살아있는 사람을 선물로 주고 말이야! 유민서가 한동안 반응이 없자 임주승이 살짝 당황했다. “아가씨,설마 저 중고비서라고 싫어서 저 안받아주는거 아니죠?” 유민서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중고긴 개뿔......그거 커리어가 풍부하다고 하는거야!” “헤헤,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저 바라는거 없고 그냥 월급만 많이 올려주시면 돼요!”임주승이 농담을 해댔다. “돈이 문제야?네가 잘하기만 하면 돈이 흘러 넘칠정도로 줄게.단 못하면,너 중고로 팔아 넘길거야.”유민서가 손으로 턱을 받쳐들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임주승이 숨을 돌리고는 서둘러 지금까지의 업무상황을 보고했다. “어제 말씀하신 하이브가구는 전부 교체했고 전국지역 기성산하 호텔쪽에 일주일내로 하이브가구 교체하도록 지시했어요.” 이때,문밖에서 다급한 노크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