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나간다며. 왜 아직도 안 가?”
진수혁은 피하지 않고 서지수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냈다.
“네가 말 안 해도 갈 거야.”
서지수는 트렁크를 집어 들었다.
“쓰레기 같은 냄새가 가득한 집에서 1초도 더 못 있겠거든.”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지체 없이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까지 단호한 모습에 진수혁은 잠시 눈빛이 어두워졌다.
“잠깐.”
서지수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말을 하기 전에, 진수혁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트렁크로 옮겨갔다.
그리고 문밖에 대기 중인 보디가드에게 지시했다.
“서지수 가방을 밖으로 가져가서 안에 남의 물건이 들어 있지 않은지 확인해 봐요.”
“무슨 뜻이야?”
서지수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끌어안았다.
“조금 전 보석을 훔치려고 했잖아. 네 가방에 다른 물건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은 해야지.”
진수혁은 사람을 궁지로 모는 데 익숙하다는 듯 냉정했다.
“확인해 보면 모두에게 좋잖아.”
“네 눈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서지수의 두 눈에는 실망과 분노가 깃들었다.
잠깐 진수혁의 마음 한구석이 흔들렸다. 하지만 아까 그녀가 주저 없이 떠나겠다고 했던 걸 떠올리며 다시 무표정하게 답했다.
“응.”
서지수의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팠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멀어지고 차가워진 것도 어느 정도 감수하려 했다. 하지만 소유리 앞에서 이렇게까지 모욕할 줄은 몰랐다.
이건 인격에 대한 모독이자, 자존심에 못을 박는 짓이었다.
“사생활을 함부로 들여다보는 거, 난 용납 못 해.”
서지수는 트렁크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굳이 확인하고 싶으면 경찰을 불러. 아니면 내 손을 잘라서 트렁크를 가져가 보던가.”
그녀는 고집스레 그를 마주 보았다. 예전과 똑같이 절대 지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진수혁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결연한 시선을 받으며 그녀의 손가락을 가방 손잡이에서 떼어냈다.
그녀가 아무리 온 힘을 주고 버텨도 그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가방을 보디가드에게 건네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지시했다.
“가져가서 구석구석 다 뒤져 봐요.”
보디가드는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진수혁!”
서지수는 벌게진 눈시울로 트렁크를 다시 빼앗으며 외쳤다. 태어나서 이런 치욕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진수혁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내 자존심을 바닥에 짓밟아야 속이 후련해?”
이 순간 서지수는 스스로 가졌던 모든 긍지와 자부심이 부서져 버린 기분이었다.
몰락한 재벌 딸에게 남은 건 없었다.
“내가 네 물건을 훔쳤을 리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물론 진수혁은 안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 그녀에게 대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봐주자.”
그때 소유리가 분위기를 살피고 나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수혁아, 그래도 너랑 지수... 부부였잖아. 지수가 뭘 가져간다 해도 그건 정당한 거 아닐까?”
“넌 좀 가만히 있어.”
서지수는 소유리가 예전부터 싫었다.
진수혁은 그녀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자극받아도 흥분해 버리는 성격으로는 밖에서 큰코다칠 게 뻔하다고 여겼다.
‘꼴 좋네.’
“그냥 가. 유리 봐서 이번엔 넘어가 줄게.”
그는 더는 서지수를 몰아세우지 않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그녀를 더 굴욕적으로 만들었다.
서지수는 겨우 트렁크를 되찾아 들었다.
잠시 후, 두 사람에게 뭔가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는데 마침 집사가 다가왔다.
“두 분, 도련님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뜸이 흐르더니, 집사를 따라 들어오는 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여운 얼굴에 멜빵바지를 입은 진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