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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진찰과 처방이 끝난 후 강하나는 의사들에게 이만 가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박지헌은 걱정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 다 나을 때까지 여기 있으라고 할 거야.” “사모님은 정말 배우자 복을 타고나셨습니다. 요즘 대표님처럼 지극정성인 분은 아마 눈을 씻고 찾아와봐도 없을걸요?” “그러니까요. 정말 너무 부러워요.” 의사들의 아부에 강하나는 그저 옅게 웃었다. “네, 인정해요. 이런 남자는 좀처럼 없다는 거.”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정말 괜찮다며 의사들을 이만 돌려보내라고 했다. 박지헌은 그녀의 고집에 결국 알겠다고 하며 의사들을 현관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때 그녀 홀로 남은 침실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다은이었다. “사모님, 감기는 좀 어때요? 사모님도 아팠을 텐데 미안해요. 괜히 내가 의사분들을 잡고 있는 꼴이 됐네요. 대표님도 참, 난 괜찮다니까 굳이 새벽까지 곁에 있어주겠...” 강하나는 서다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누구랑 통화 했어?” 그때 박지헌이 죽을 들고 오며 물었다. “이거 내가 특별히 아주머니한테 만들라고 한 죽이야. 자, 아 해봐.” 강하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입을 벌리려다가 감기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박지헌의 뻔뻔한 행동에 신물이 난 것인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얼른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박지헌은 그녀의 행동에 빠르게 쓰레기통을 가지고 오며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대체 무슨 약을 처방했길래, 쯧! 자기야, 다음에는 다른 의사들로 불러줄게.” 박지헌은 짧게 혀를 차더니 이번에는 그녀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었다. “자기야, 아 해봐. 물 좀 마시자.” 그런데 그때 박지헌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울려댔다. 그는 누군지 보지도 않고 그대로 끊어버렸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어디도 안 가고 자기 옆에 딱 붙어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휴대폰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울려댔고 이에 강하나는 침대에 다시 누우며 피곤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받아. 급한 전화 같은데.” 그러자 박지헌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가기 전에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도 있지 않고 말이다. 약 3분 후, 박지헌은 조금 화난 듯한 얼굴로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어떻게 매번 이렇게 실수를 하지? 회의에서 한소리 해야겠어.” 강하나는 그 말에 속으로 피식 웃더니 이내 그가 이다음으로 하려는 말을 먼저 입 밖으로 꺼냈다. “얼른 회사로 가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거 아니야?” 그러자 박지헌이 침대 쪽으로 다가와 강하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안 가. 회사가 자기보다 더 중요할 리가 없잖아. 나는...” 그런데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다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가봐. 나도 이만 쉬고 싶어.” “음... 알겠어.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 박지헌은 못 이기는 척 다시 그녀를 풀어주더니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강하나는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게 세수라도 하려는데 휴대폰에 최신 기사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또다시 그녀와 박지헌에 관한 기사였다. [이정 그룹의 박지헌 대표, 감기에 걸린 아내를 위해 아침부터 의료진을 집으로 불러들이다.] 그리고 기사 아래는 어김없이 박지헌을 찬양하고 또 그녀를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적혀있었다. [역시 백 년에 한 번밖에 안 나오는 스윗남, 오늘도 또 스윗 스택을 쌓으셨네요. 남자들아, 제발 박지헌 대표 좀 보고 배워!] [남편을 바꿀 수 있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아. 딱 하루만이라도 박지헌의 아내로 살아 보고 싶다.] [나도 박지헌의 와이프가 되고 싶어! 눈을 뜨자마자 박지헌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강하나는 오늘도 성공적으로 다정한 남편을 연출한 박지헌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1분 정도 기사를 보다 이내 휴대폰을 치워버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에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한바탕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싼 액세서리에 비싼 가방, 그리고 계절별로 있는 브랜드 옷에 한정판 곰 인형까지, 박지헌은 그간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그녀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그는 기념일이나 생일만 챙기는 다른 남자와는 달리 그녀가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선물을 주었다. 그 덕에 3년 동안 선물은 산처럼 쌓였고 이제는 옷장이나 팬트리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강하나는 그 선물들을 하나하나 사진 찍어 중고 사이트에 올렸다. 그때 그녀의 눈에 박지헌이 피멍이 된 대가로 받아온 복싱 글러브가 들어왔다. 강하나는 고민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그것 역시 사이트에 올렸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박지헌은 그녀 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거의 30분 간격으로 30통이나 넘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 내용은 대부분이 다 배고프지는 않는지, 밥은 먹었는지, 몸은 좀 괜찮은지 같은 평소에도 줄곧 받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내용이 조금 달랐는데 오늘 저녁에 드라마 종영 파티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박지헌은 회사 일 때문에 집으로는 들리지 못할 것 같으니 이따 시간이 되면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에 강하나는 가볍게 알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저녁. 파티는 8시부터였지만 강하나는 한 시간이나 일찍 파티장에 도착했다. 오늘 그녀는 박지헌이 그녀를 위해 특별히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다이아몬드가 예쁘게 수 놓인 드레스를 입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우아하게 걷는 그녀의 모습은 공주님 그 자체였다. 강하나가 막 파티장 안에 들어간 그때 안쪽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지헌아, 드라마 종영 기념으로 여자주인공과 뜨거운 입맞춤이라도 나누는 게 어때?”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맞장구를 쳤다. “키스해! 키스해!” 사람들의 손에 억지로 떠밀린 두 남녀의 몸이 금방이라도 찰싹 밀착되려던 순간 박지헌은 입구 쪽에 서 있는 강하나를 발견하고 얼른 표정을 굳히며 한 발짝 물러섰다. “장난도 정도껏 해. 나 유부남인 거 몰라?” 그러고는 마치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빠르게 강하나에게로 달려갔다. 박지헌은 가까이에서 본 아름다운 그녀의 드레스 모습에 진심으로 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 “자기 오늘 너무 예쁘다. 나 또 반했어.” 그는 말을 마친 후 뭔가 떠오른 듯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가져다 댔다. “다행히 열은 다 내렸네. 회사에 있는 내내 자기 걱정돼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형수님, 오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이래서 지헌이가 다른 여자한테는 눈도 안 돌리나 봅니다. 하하하. 참, 아까는 그저 저희끼리 별 뜻 없이 농담한 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맞아요. 저희는 그저 사모님 대신 대표님을 좀 테스트한 것뿐이에요.” 강하나는 그들에게 옅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오해 안 해요.” 그때 서다은이 샴페인 두 잔을 들고 그녀 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그녀에게 샴페인 잔을 하나 건넸다. “사모님도 시원하게 한잔 마셔주세요.” 그 말에 강하나가 뭐라 대꾸하려는데 박지헌이 끼어들며 그녀 대신 샴페인 잔을 받았다. “우리 와이프 술 마시면 안 돼. 이건 내가 대신 마실게.” 그러고는 샴페인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강하나는 바로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같이 가.” 박지헌이 다급하게 말하며 따라붙자 뒤에 서 있던 그의 친구가 웃으며 그를 놀려댔다. “이제는 화장실까지 따라가냐? 정말 지긋지긋하다. 아직도 그렇게 좋아?” “응, 아주 좋아 미치겠으니까 그 입 좀 닥치고 술이나 마셔.” 박지헌은 가볍게 대꾸하고는 강하나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입구에 다다라서야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들어가. 여기서 기다릴게.” “그래.” 강하나는 안으로 들어간 후 세면대로 가 손을 씻었다. 그런데 그때, 어느샌가 다가온 서다은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사모님, 그 드레스 혹시 대표님께서 경매장에서 낙찰받으신 거 아닌가요?” 그 질문에 강하나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네, 맞아요. 근데 왜요?” “사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목걸이도 그날 대표님께서 낙찰받은 물건이거든요. 참, 그 얘기는 못 들으셨죠? 지금 사모님이 입고 있는 그 드레스는 그저 이 목걸이를 낙찰받으면서 받은 증정품에 불과하다는 거.” 서다은이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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