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남 보이기 부끄러운 존재
이때 강찬우가 대뜸 정색하며 그의 말을 잘랐다.
“제발 좀 닥쳐줄래?”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고 하수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시연을 힐긋 쳐다봤다. 그녀는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
이 상황에 여기 계속 남아있으면 그녀만 난감해질 테니 알아서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다만 하수현이 이하윤까지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하윤과 꽤 친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러니까 강찬우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 중 오직 그녀만 남 보이기 부끄러운 존재이고 아무에게도 알려질 자격이 없는 거였다.
하수현의 질문에 사실 그녀도 대답을 듣고 싶었다. 강찬우가 왜 이하윤을 데리고 굳이 그녀가 근무하는 화인 병원으로 가게 된 걸까? 일부러 보여주려고? 그래서 성시연이 알아서 물러날 수 있게?!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저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강찬우는 이렇게까지 용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녀는 이미 물러설 생각이었고 이번엔 여느 때보다 단호하게 결심했으니 강찬우가 딱히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성시연은 세면대 앞에 서서 멀뚱멀뚱 휴대폰을 만지며 일부러 오래 머물렀다. 이때 갑자기 발랄하고 앙증맞은 아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선생님!”
아이의 씩씩한 목소리에 성시연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녀는 진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시연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누구랑 왔어?”
진시연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입을 삐죽거리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내 머리 다치지 말아요. 오빠가 예쁘게 묶어준 머리인데 망가뜨리면 어떡해요? 오빠랑 같이 왔어요. 선생님도 오빠 보고 싶어서 왔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어요 오빠가. 두 분 혹시 한때 만났었죠? 연애한 거 맞죠?”
성시연은 어리둥절한 채 아이의 물음에 깜짝깜짝 놀랐다.
“요놈의 자식, 연애가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진시연은 어른인 척 흉내 내며 말했다.
“당연하죠. 함께 손잡고 맛있는 거 먹고 뽀뽀도 하고 그런 게 바로 연애잖아요.”
성시연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정말 조숙하다니까.’
“너 볼 일 보러 화장실 온 거 아니야? 얼른 들어가 봐.”
아이는 그제야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다시 나오더니 발꿈치를 들고 손을 씻으며 성시연에게 물었다.
“우리 오빠가 올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죠 설마?”
그녀는 아이의 말을 곰곰이 되뇌었다. 혹시 진현수가 그다지 이상적이지 못한 연애를 해서 진시연의 마음에 트라우마라도 남게 된 걸까? 그래서 이토록 성시연을 경계하는 건 아닐까?
성시연은 별안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거 정말 아니니까 날 이렇게까지 경계할 필요 없어. 너희 오빠랑 만날 거면 진작 만났겠지, 안 그래? 선생님은 여기 밥 먹으러 온 거야. 별일 없으면 먼저 간다.”
그녀의 말도 틀린 바가 없다. 애초에 진현수의 고백을 받아줬더라면 지금쯤 아마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진시연이 뭐라 더 물어보려 할 때 성시연은 어느새 자리를 떠나버렸다. ‘동생 바보’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진현수는 한창 화장실 밖에서 꼼짝 않고 아이를 기다렸다.
성시연을 마주친 그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서 또 보네?”
성시연도 활짝 웃었다.
“그러게. 병원 일 마치고 밥 먹으러 왔는데 시연이랑 마주쳤지 뭐야?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진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시연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 모습에 성시연은 실소를 터트리고 재빨리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녀의 입가에 지은 미소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이를 쭉 지켜보던 강찬우는 눈가에 음침한 빛이 감돌았다.
하수현은 의도적인지 아닌지 그녀에게 이런 말을 내던졌다.
“시연이 너 진씨 가문 사람들도 알고 있었어?”
이에 성시연이 솔직하게 설명했다.
“대학 동기예요. 뭐 그냥 아는 사이일 뿐 너무 친하진 않아요.”
이때 하수현의 말투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래? 근데 왜 난 진현수가 너 좋아했었다고 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