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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강다인은 가족이라는 말에 구역질이 났다. ‘전생에도 똑같은 말을 했으면서. 챔피언을 따내는 문턱에서 바로 교체당하고 말았는데 가족은 무슨.’ 강다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크루에 합류할 마음이 없어. 열심히 시험 준비나 할 거야.” 강별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전에 게임을 배워달라고 할때, 저녁마다 같이 연습하자고 조르면서 정식 팀원이 되겠다고 할때는 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강다인은 마음이 아파져 오는 느낌이었다. 강별을 따라 게임을 한 것도 그와 친해지려고, 공통 취미를 만들려고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게임만 하고 공부를 내팽개쳤더니 성적이 많이 내려갔더라고. 그래서 더이상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아.” 강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암튼 후회하지 마! 시합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들은 지우가 우리 강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강다인이 싫다고 하는데 굳이 설득할 마음도 없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더는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은 강다인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감정을 추스르고 수업을 보충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 다음날 방과 후. 교문 앞에는 기사 아저씨가 강다인과 김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지우가 먼저 차 앞으로 다가가더니 말했다. “아, 오늘 트레이닝 캠프에 가야 해서 아저씨가 나를 먼저 데려다주기로 했거든. 집이랑 반대 방향이야.” 기사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강별 도련님의 연락을 받았는데 먼저 지우 아가씨를 데려다주라고 했습니다.” 강다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가 알아서 갈게요.” 차에 올라탄 김지우는 으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은 언니, 내가 별이 오빠를 잘 설득해 볼게.” 강다인은 김지우를 무시한 채 바로 뒤돌아섰다. 김지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강다인, 두고 봐. 언젠간 내가 모든 걸 빼앗아 갈 거야! 네가 나한테 빚진 거라고!” 우두커니 길가에 서 있던 강다인은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근처에 있는 독서실로 가려고 했다. “다인 학생, 아직도 집에 안 가고 뭐 해요?” 어떤 남자의 목소리에 멈칫한 강다인은 뒤돌아 그와 두 눈이 마주쳐서야 상대방을 알아보았다. ‘독설가 선생님이시네.’ 마스크에 의사 가운만 입고 있던 그가 갑자기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못 알아볼 뻔했다. 이석훈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내 말 안 들려요?” “집에 가기 싫어서 독서실에서 공부 좀 하려고요.” “저 따라와요.” 강다인은 잠깐 망설이다 따라가 보기로 했다. 결국 학교 보건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 나았는데 여긴 왜 온 거예요?” 이석훈이 테이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여기가 바로 독서실보다도 더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에요.” 강다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나름대로 일리있다고 생각했는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강다인은 문제집을 꺼내 열심히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석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뒤돌아 밖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강다인은 공부에 열중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문득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명함 하나를 발견하고 그의 이름이 이석훈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다 봤어요?” 강다인은 뻘쭘한 표정으로 명함을 내려놓았다. “일부러 물건을 뒤진 거 아니네요.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어요.” “숙제는 다 했어요?” “네. 모르는 것 빼고는 다 했어요. 내일 담임 선생님한테 물어보려고요.” 이석훈은 강다인에게 다가가 문제집을 낚아챘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몰라요?” 강다인은 조금 충격이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네. 예전에는 공부를 열심히 안 했거든요.” “잘 들어요.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이석훈은 펜을 들고 문제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강다인은 그를 보면서 갑자기 심경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김지우 때문에 친구도 없고, 선생님의 예쁨도 받지 못해 주동적으로 문제집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석훈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집중 안 하고 뭐 해요?” 강다인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죄송해요. 열심히 들을게요.” 이석훈은 말 잘 듣는 그녀의 모습에 침을 꼴깍 삼키고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설명했다.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 어둠이 내렸다. 이석훈은 강다인 옆에 서서 한 손으로 상체를 지탱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왜 머리가 꽉 막힌 느낌이죠? 아까랑 똑같은 문제잖아요.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눈을 두고 뭐 하는데요? 아이큐는 테스트해 봤어요? 80도 안 넘죠? 다시 해봐요!” 감정 기복이 없는 차가운 말투였지만 가슴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독설가인 것을 알았기 다행이지, 아니면 진작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문제까지 다 풀고서 말했다. “감사해요. 선생님, 너무 대단한 거 아니에요? 아직도 이 문제들을 기억하는 거예요?” 이석훈은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학원을 안 다녀요?” 강다인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가족한테 빚지기 싫어서요.” 학원에 다니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지만, 오빠들한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이석훈은 시무룩한 강다인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이때 강다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부터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와서 물어봐도 돼요?” 이석훈은 고개를 돌려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시간 없어요.” 강다인은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가방을 정리했다. 이때 이석훈이 테이블을 툭툭 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기분을 봐서요.” 강다인은 바로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다인은 이석훈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가방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석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후였다. 이때 집사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도련님이랑 지우 아가씨는 밖에서 외식한다고 합니다.” “네.” 강다인은 오랜만에 조용해진 집안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SNS를 켜자마자 김지우가 올린 게시물이 보였다. [오빠들과 근사한 외식.] 김지우는 오빠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강다인은 핸드폰을 바로 꺼버리고 계속해서 밥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식탁으로 향했는데 김지우 한 명뿐이었다. 김지우가 슬쩍 자랑하면서 말했다. “어제 트레이닝 덕분에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몰라.” 강다인은 김지우를 무시하고 무표정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한창 기분이 좋은 김지우 역시 그녀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담담한 척하긴. 속으로는 천불이 날 거야.’ 강다인이 대충 아침밥을 먹고 밖으로 나갔는데 기사 아저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지우 아가씨께서 나오시면 함께 가시죠.” 차에서 10분이나 기다렸는데 김지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강다인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인내심이 부족한 말투로 말했다. “지각하겠어요.” 슬슬 강씨 가문의 모든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은 강다인은 차에서 내리려다 강하늘과 마주치고 말았다. “지우를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게 뭐 어때서? 지우 아버님은 너를 살려준다고 도망치지도 못하셨는데. 그런데 넌 잠깐 기다릴 인내심도 없는거야?” 강다인은 문손잡이를 꽉 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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