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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장

나는 나에게 체면이 깎이지 않을 이유를 댔다. 통화를 마친 뒤 나는 덜덜 떨리는 두 손을 쳐다봤다. 심장이 마치 돌덩이라도 얹힌 듯 갑갑했다. 하정욱의 말을 들으면 주한준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주한준이라면 모든 준비는 항상 최대한 완벽하게, 세심하게, 앞당기기만 할 뿐 미루는 일은 없었다. 어쩌면 하루 전에 이미 이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주한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지아도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애초에 그들이 나를 참여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텅 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미래를 떠올린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는 영한 그룹으로 향했다. 나는 나의 권리를 절대로 남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주한준은 내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했다. 전화 속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남 팀장이 직접 찾아온 거야?” “만나서 얘기하죠.” 나는 주한준의 말속의 거절을 알아챘지만 인내심 있게 말했다. “이미 영한 그룹 빌딩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10분 뒤, 프런트에서 나를 대표 사무실까지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한준은 사무실 테이블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은테 안경을 쓴 채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기척을 들은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사회는 다음 주 월요일로 미뤄졌고 내일에는 다른 스케줄 있어.” 나는 잠시 멈칫했다. 목구멍에 풀이라도 칠해진 듯 턱끝까지 차오른 말이 그만 막혀버렸다. 내일의 스케줄, 내 예상이 맞다면 주한준은 아마 직접 임지아를 데리고 음유시인에게 데려갈 것이다. 그를 위해 그는 특별히 이사회의 시간을 바꾸었다. 그건 무려 이사회였다. 역시, 발언권을 가지게 되니 지위와 권리도 달라졌다. 내가 제 자리에 서서 아무런 말도 없자 주한준도 드디어 이상함을 알아챈 건지 은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고개를 살짝 들고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는 그의 시선에서 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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