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3장

재정 위기가 겨우 해제되자 스튜디오 사람들은 전부 한시름을 놓았다. 그리고 우리의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임지아가 첫 출근한 날 오영은은 환영회를 준비했다. 환영회 장소는 십몇만원짜리 노래방에서 샹그리아 호텔로 바뀌었다. 회사의 직원 8명이 전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모두 임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영은은 무료함에 디저트를 한 입 집어먹으며 말했다. “예쁨 받는 공주님다워. 가서 옷까지 갈아입어야 한다니, 쯧.” “상대는 쩐주야.”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말이 일하러 온 거지, 모시고 있어야 할 판이네.” 은연 중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로비 쪽에서 기척이 들려왔고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임지아가 공주처럼 주한준의 팔짜을 낀 채 나타난 것이 보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오영은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진짜 쩐주 오셨네.” 주한준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여태까지 주한준은 시끄러운 곳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대학 기간 동안 학과 내에는 자주 각종 모임이 열렸었다. 설령 학교 간부가 나선다고 해도 주한준은 피하기 급급했었다. 고고하다 못해 무리에 조금 어울리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매번 그럴때마다 다 내가 학교 간부에게 찾아가 사정을 하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다. 들고 있던 술을 들이켠 나는 빠르게 다가갔다. “죄송해요, 오빠가 저 환영회에 참석한다는 걸 알고는 굳이 바래다주겠다고 해서요.” 여자애가 부끄러워하며 애교를 부리자 그 누구도 화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인사치레를 하며 말했다. “주 대표님께서 발걸음 해주시다니 오히려 영광이죠.” 그도 그럴것이 지금은 주한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 전부 한가닥하는 사람들이었다. 오영은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진아도 원래는 대표님을 초대하려다가 바쁘실까 봐 말씀 안 드렸는데, 마침 잘 됐네요.” 이 언니도 참, 선의의 거짓말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했다. 나는 조금 양심에 찔려 입꼬리만 올리다 주한준의 따져 묻는 듯한 눈빛과 시선이 마주쳤다. 양심이 더 찔렸다. 다급함에 나는 얼른 진행자에게 눈짓했다. 환영회가 정식으로 시작됐다. 오영은은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있어서는 가히 천부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말 몇 마디 만에 자리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림 보고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매번 회사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하는 코너였다. 여태까지는 7명이서 심판인 오영은을 제외하고 각기 3개조로 나뉘었는데 이제는 두 사람이 늘었으니 한 조가 추가됐다. 그랬다, 임지아는 주한준도 게임으로 끌어들였다. 어린 아가씨는 얼굴에 흥미진진함이 가득했다. 조는 추첨으로 결정됐다. 예상치 못한 것은 나와 주한준이 무려 한 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 옆에 있던 임지아도 그것을 발견한 건지 눈에 띄게 실망했다. 나는 자발적으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조용히 임지아와 쪽찌를 바꿨다. 임지아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를 올렸다. “선배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무슨 그런 과찬을.’ 나는 묵묵히 속으로 말했다. 갑이 재밌게 놀 수 있게 최선을 다 하는 건 을의 의무였다. 그렇게 한바탕 논 끝에 늦은 밤이 되었다. 다들 잔뜩 취한 것을 본 나는 직원에게 숙취해소를 위한 음료를 주문했고 모두에게 직접 건네줬다. 주한준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1미터 밖에서 조용히 임지아가 그의 이마의 땀을 세심하게 닦아주는 것을 지켜봤다. 주한준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옷깃의 단추는 언제 푼 건지 두 개쯤 풀려 쇄골이 드러나 있었고 선명한 이목구비는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 짙은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꽤 취한 듯 보였다. 나는 더 방해하고 싶지 않고 조용히 등을 돌리는데 귓가에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지나.”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두 발은 얼어붙은 듯 꿈쩍할 수 없었고 이내 주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가지마. 응?” 자기야라는 말에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철렁했다. 시선을 주한준 쪽으로 돌리는데 임지아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나는 임지아를 귀띔했다. “주 대표님이 부르네요.’ 저런 미련 가득한 말투는 절대로 나를 부르는 것일 리가 없었다. 잠시 멈칫한 임지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주한준의 높은 콧대를 쓸더니 애교 어린 투정을 부렸다. “오빠, 회식 아직 안 끝났거든요.” 그 말에 눈꺼풀을 들어올린 주한준의 입가에 드러난 미소는 나의 예상을 증명했다. 쩐주를 보내고 나자 이미 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멀어지는 마이바흐를 본 오영은은 팔꿈치로 나를 쿡 지르며 위안 섞인 말을 건넸다. “오늘 고생 많았어.” 나는 반쯤 농담 어린 말투로 말했다. “좀 실질적인 말씀 해주시죠 오 사장님.’ 오영은은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잘났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의 오 사장님은 다정하게도 나를 아파트 단지 밑까지 바래도 내일 아침 늦어도 된다는 뜻을 넌지시 건넸다. 정신적인 보상도 나름 제대로 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꿈속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그 모습은 수많은 밤에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아주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면 그는 나의 가는 허리를 안은 채 어르고 달래는 말투로 말하기도 했었다. “자기야, 더 크게.” 그건 남들이 모르는 주한준의 모습이었다. 욕구가 강하고, 독점욕이 아주 강했지만, 드러낼 수는 없었다. 끝내 나는 잠을 설쳤다. 아침 러시아워에 지하철에 도착한 나는 정어리처럼 인파속에 밀려나오다 무선 이어폰 한쪽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속으로 개탄하고 있을 때, 시선을 들자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마이바흐를 발견했다. 차 앞에는 정장 차림의 주한준이 젠틀하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게 보였다. 다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오렌지 핑크빛의 슬림핏 원피스를 입은 임지아가 내리는 게 보였다. 아침부터 활력이 넘치는 게 날개짓하는 나비같아 보였다. 주한준이 직접 출근길에 바래다주다니. 영한 그룹과 우리 스튜디오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 그 말인 즉슨 아침 잠버릇이 심한 주한준의 출근 시간이 한 시간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자신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주고 어르고 달래 깨워주던 날들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씁쓸함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나는 두 사람을 피해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자 마자, 임지아의 귀엽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선배, 좋은 아침이에요!” 도무지 모른 체할 수가 없어 담담한 얼굴로 다가갔다. 시선이 주한준의 얼굴을 흘깃 훑은 뒤 예의를 차려 말했다. “주 대표님, 임지아 씨, 좋은 아침이에요.” 임지아는 붙임성 좋게 말했다. “선배, 지아라고 부르면 돼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이대로 가기도, 그렇다고 계속 서 있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주한준은 곧바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뻔히 알면서 묻는 수밖에 없었다. “주 대표님, 감찰하러 오신 거예요?” 옆에 있던 임지아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니에요, 선배. 오빠는 제가 길 잃어서 회사 주소를 못 찾을까 봐 특별히 바래다주러 온 거예요.” 내가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인사치레를 건넸다. “언제든지 주 대표님의 직접 방문과 지도를 환영합니다.” 주한준은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실례지만 길 안내를 부탁하죠, 남 팀장.” 설마 진짜로 올라오겠다는 뜻인걸까? 임지아도 그걸 알아챈 건지 두 눈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났다. “오빠, 우리랑 같이 올라가게요?” 주한준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네 근무 환경이 어떤지 보게.” 임지아를 스튜디오에 보내 이력서를 꾸며주는 걸로도 부족해 주한준은 그녀의 근무 일상까지도 신경 쓰고 있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