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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조수연은 이장훈의 뻔뻔한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당당하게 둘의 관계를 사람들 앞에 공개할 줄이야! 이 남자, 지금 소유권을 주장하는 걸까?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분노가 치밀었다. 할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본다고는 했지만 아직 사람들 앞에서 공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우리 관계를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얼굴이 예뻐서 그런지 화를 내는 모습도 마치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사랑스럽게 보였다. 유지환은 처음 보는 대표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직원들 앞에서는 절대 무표정을 유지하는 냉혈 상사였는데 조수연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이장훈의 말이 사실일 수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거대한 충격이 그를 강타했다. 태진그룹의 대표가 한낱 운전기사와 교제 중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조금 전 이장훈에게 했던 짓을 떠올리자 사색이 되었다. “이… 이장훈 씨, 미안해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요. 너그럽게 넘어가 줘요.” 그는 이제 와서 후회막급이었다.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표의 남자친구였다니! 이장훈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나한테 당장 꺼지라면서요?” 유지환은 이장훈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꺼내자 더 당황하며 스스로 귀뺨을 쳤다. “제가 눈이 멀어서 귀한 분을 몰라봤네요. 약자나 괴롭히는 저는 정말 인간도 아니에요!” 그는 갑자기 스스로를 반성하며 귀뺨을 쳤다. 경비실 직원들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이장훈에게 다가와서 사과했다. “이장훈 씨, 죄송해요. 유 팀장 말만 믿고 움직인 저희가 잘못했네요. 그래도 해고만 하지 말아주세요.” 태진그룹은 직원 복지가 아주 좋은 기업 중에 손꼽히는 기업이었다.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과 대비해도 월급이 무려 50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경비 팀장은 후회막급이었다. 쫓겨나지만 않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조수연은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고 평소의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물었다. “유 팀장,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죠?” 유지환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꺼렸고 결국 이장훈이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조수연은 버럭 화를 냈다. “유지환 팀장, 평소에도 부하 직원들에게 이렇게 대하나요? 관리자라는 직급을 단 사람들이 다 유 팀장처럼 행동하면 누가 이 회사를 위해서 일할 마음이 생기겠어요? 당신들은 해고예요. 인사팀 가서 자료 작성하고 나가세요!” 유지환은 억울했지만 대표이사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잔뜩 기가 죽어 현장을 떠났다. 가장 억울한 사람은 경비팀 직원들이었다. 맞은 것도 억울한데 직장까지 잃게 되다니! 그들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인사팀으로 향했다. 모두가 떠난 뒤, 조수연은 이장훈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네요.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말아요. 비록 그쪽이 좀 변태 같아서 기분 나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부하직원 시켜서 시비를 걸게 한 건 아니니까요.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인 조 회장이 이장훈의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그녀는 이 일로 이장훈이 다 내팽개치고 떠날까 봐 걱정이 됐다. 이장훈은 당연히 조수연을 의심하지 않았다. 유지환 사무실 앞에서 김인영과 장명수 커플을 마주친 것도 있고 아마 뭔가 있다면 그쪽에서 말이 나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수연 씨를 믿어요.” 조수연도 오해가 풀렸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장훈이 어쩌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혼자서 경비실 직원을 때려눕힌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상황에 일반인이었으면 절대 혼자 세 명이나 되는 경비들을 상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뢰는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죠. 참, 지난번에 할아버지를 치료하려면 백 년 이상 된 인삼이 필요하다고 했었죠? 이미 판매자를 확보했어요. 그거면 할아버지의 병이 확실히 완치될 수 있는 거죠?” 이장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장담 못해요.” 조수연은 그 말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담을 못한다면서 그건 왜 가져오라고 한 거예요?” 이장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인삼은 회장님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작용만 할 뿐이지 병치료는 내가 해야죠.” 조수연은 잘난 척하는 그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하는 그의 태도가 심히 불편했다. 그녀가 씩씩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 보니 셔츠의 세 번째 단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가슴이 앞으로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장훈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그녀의 오해를 산 일이 떠올라서 오늘은 제대로 해명할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봤죠? 단추 저절로 풀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셔츠 안 어울린다고 했잖아요. 너무 타이트한 거 입으니까 이런 불상사가 생기죠.” 조수연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아니꼽게 말했다. “지금 단추가 떨어졌는데 웃음이 나와요?” 이장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 말은, 어제도 그렇게 저절로 떨어진 거라고요. 내가 그쪽 단추를 푼 게 아니라.” 조수연도 자신이 어제 큰 오해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얄밉게 웃고 있는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내려가지 않았다. “아, 알았다고요. 그만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도망치듯 뒤돌아섰다. 이장훈은 그녀의 모습을 힐끗 보고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집어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조수연은 마침 외근 나가는 유은정을 만났다. “아,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아까 이장훈이랑 얘기하다가 단추가 뜯어졌어.” 유은정은 감탄하듯 혀를 찼다. “아이고, 여태 보여줄 사람도 없었는데 드디어 만난 거야?” 조수연은 친구의 얄궂은 태도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아니, 내 말은 어제 그 사람 오해한 거 같다고. 그 사람이 내 단추를 뜯은 게 아니었어.” 유은정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라면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네. 적어도 변태는 아니라는 소리잖아. 차라리 잘된 일 아니야? 곧 있으면 약혼식도 할 텐데 인성은 보장된 사람이라니 걱정을 덜었잖아.” 조수연은 셔츠 안 어울린다고 말하던 이장훈의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항상 포커페이스만 유지하던 그녀가 웃자 사무실 분위기마저 달라졌다. “응. 내 직감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아. 좀 더 알아가고 싶어. 점심에 같이 밥 먹자고 할 생각이야.” 유은정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네가…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날이 오다니!” 시내의 한 커피숍. 김인영은 우아하게 커피잔을 들며 장명수에게 말했다. “고마워, 명수 씨. 명수 씨 지인이 아니었으면 아마 조 대표와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을 거야.” 장명수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이혼도 했겠다,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지. 태진그룹과의 계약도 순조롭게 따낼 수 있을 거야.” 이때, 장명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며 김인영에게 말했다. “봐, 지환이한테서 벌써 전화가 왔네? 분명 약속을 잡았다고 연락 준 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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