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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알겠어." 서도훈은 안소희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줬다. 안소희는 계속 밥을 먹으면서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나똥개는 왜 여기에 온 걸까? 나영재도 쭉 생각에 잠겼다. 안소희는 왜 여기에 온 걸까? 연청원, 임천우와 밥을 먹으면서도 문을 열고 마주친 두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넓은 테이블에서 왜 굳이 바짝 붙어 앉았을까? "무슨 생각해?" 연청원은 흥미진진한 구경꾼의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볼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잖아, 왜 혼자 말도 없이 앉아있어." "아니야." 나영재는 말을 아꼈다. 연청원과 임천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청원은 정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서도훈은 28년을 살면서 한 번도 여자를 옆에 둔 적이 없다던데, 소문은 역시 소문일 뿐이네." "그러게." 임천우는 여유롭게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나영재는 "서도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났던지라 사정없이 연청원의 말을 받아쳤다. "할 거 없으면 술이나 마셔." "할 게 없긴 해." 연청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세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며 장난도 자주 쳤기에 나영재의 눈치 따윈 보지 않았다. 나영재는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구는 임천우를 보며 집에서 안소희와 이야기를 나눌 때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예능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지금 네가 술 마실 때야?" 임천우는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일까. 연청원은 임천우의 어깨를 감싸며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가 바람난 불쌍한 영재니까 오늘은 봐줘." "바람? 다른 남자랑 같이 앉아있는 게 바람이면 넌 뭐데?" 나영재는 사정없이 쏘아붙였다. "적어도 안소희는 다른 남자 아이까지 가지진 않았어." 연청원의 얼굴은 순간 굳어버렸다. 임천우는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부탁할 일이 있다며?" 연청원은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고, 확실히 기분이 팍 상한 눈치였다. "무슨 일인데, 얼른 얘기해." "한동안 가윤이 좀 잘 챙겨줘." 나영재는 잠시나마 안소희를 잊고 허가윤 얘기를 꺼냈다. "빚 하나 졌다고 생각할게." 나영재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신세를 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둘의 관심사는 딱 하나였다. "허가윤이 돌아왔어?" 나영재는 덤덤하게 답했다. "응." "그래서 안소희랑 이혼하는 거고?" 임천우는 복잡한 안색으로 중요한 질문을 내던졌다. "응." 나영재는 인정했다. 연청원은 빈틈을 잡은 듯 곧바로 정곡을 찔렀다. "그때 너 걔한테 버림받고 하마터면 인생 망칠 뻔한 건 기억하지?" "오해야, 허가윤이 반년 전에 이미 다 설명했어." 나영재는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안소희가 이혼 도장 찍기 전까지는 만나지 말래. 그래서 한동안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 임천우는 안소희와 일면식이 있었다. 그녀는 매우 온화하고 예의 바른 여자였다. "화는 안 냈어?" "아니." 나영재는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연청원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안소희도 너한테 별 감정 없나 보네. 그때 초고속으로 결혼한 것도 네 돈보고 그랬나봐." "그런 여자 아니야." 나영재는 저도 모르게 안소희를 싸고돌았다. "맞는지 아닌지는 이혼할 때 뭘 요구했는지 보면 알 거 아니야." 연청원은 웃으며 조롱하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은 말이야, 고상하고 얌전한 척을 잘해서 진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지."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연청원이 덧붙였다. 나영재는 연청원의 말이 듣기 싫어 미간을 찌푸렸다. 안소희는 돈만 따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이혼할 때 그녀가 요구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점점 잡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나영재의 시선은 계속 그 룸의 문을 향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안소희와 서도훈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나영재가 문을 닫고 나간 후 따라와서 설명이라도 했겠지만 30분이나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영재는 또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연청원과 임천우는 나영재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또 10여 분이 지나고, 염청원은 보다못해 몸을 일으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다 먹었으면 맞은편 룸에 인사나 하러 가자." "안 가." 나영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건 안소희이니, 나영재는 안소희가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청원은 나영재가 체면 때문에 고집을 피운다는 것을 알아채고 일부러 핑계를 찾았다. "도훈 씨가 서울에서 강성까지 왔는데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나영재는 멈칫했다. "가자." 임천우가 나영재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마땅한 이유를 찾은 나영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두 사람과 함께 룸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외모가 출중한 데다 키도 190cm 가까이 되어 다른 곳에서 일렬로 걸어 다닌다면 떠들썩해질 게 분명했다. 다행히 그곳은 회원제 레스토랑이었기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영재와 임천우는 함께 서 있었고, 노크하는 임무를 연청원에게 맡겼다. 이런 일에 능숙했던 연청원은 곧바로 노크하고 동의를 구한 다음 룸에 들어갔다. 연청원은 길고 가느다란 눈으로 안소희와 서도훈을 훑어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서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도훈 씨, 강성에 오면 미리 말씀이라도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러면 미리 준비라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청원 씨에게 폐를 끼칠 순 없죠." 서도훈은 신사답고 매너 있게 입을 닦으며 말했다. "이분은..." 연청원은 안소희를 바라보며 일부러 끝말을 길게 늘였다. 안소희는 침묵했다. 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나영재는 한 번도 정식으로 안소희를 친구들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연회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연청원은 분명 안소희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서도훈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도훈 씨, 제 친구 두 명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연청원은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 "서로 안면도 트게 말입니다." "오늘은 안 될 것 같네요." 서도훈은 미소를 머금고 매너 있게 거절했다. "다음에 제가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간단한 한마디지만 연청원은 계속 권유할 수 없었다. 연청원은 저도 모르게 안소희를 힐끔 쳐다보았다. 교활한 여우 같은 서도훈이 이런 초대를 단호하게 거절하다니, 두 사람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이러는 건 어떻습니까?" 연청원은 재밌는 구경도 하고 자신에게 막말을 퍼부은 나영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저희 룸은 바로 맞은편입니다. 두 분, 식사 마치고 오셔서 저희와 함께 얼굴이라도 잠깐 보는 건 어떻습니까?" 이번에 서도훈은 단칼에 거절하지 않고 옆에 있는 안소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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