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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녀는 홀로 욕실로 들어왔다. 뜨거운 물이 그녀의 한기를 쫓아줬다. 그녀는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한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온화한 분위기로 꾸민 애기방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딸랑이를 살살 흔들었다. 오르골의 음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방안의 불빛은 노란빛으로 분명 온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서정희는 눈물만 펑펑 흘렸다. 어쩌면 이건 그녀가 치르는 죗값일 지도 몰랐다.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에 하늘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게 분명했다. 서정희는 1미터 20 사이즈의 아기 침대로 기어 올라가 몸을 새우처럼 작게 말았다. 눈물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 깔고 있는 애기 담요를 적셨다. 그녀는 인형을 꼭 끌어안은 채 중얼거렸다. “미안해, 아가. 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널 지켜주지 못했어.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금방 곁으로 갈게.” 아이가 죽은 뒤로 그녀의 정신상태는 늘 좋지 못했다. 마치 만개했던 꽃이 하루하루 시드는 것 같았다. 흩어지지 않는 밤하늘을 보며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 돈을 남겨주고 나면 아이의 곁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하늘이 채 밝기도 전에 그녀는 단장을 마쳤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결혼사진에 환하게 웃고 자신을 쳐다봤다. 눈 깜짝할 사이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은 아침을 먹었다. 비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녀는 최대한 오래 살아 아버지를 보살펴주고 싶었다. 서정희가 막 문을 나서려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서정희 씨, 서제평 씨가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해서 지금 응급 처치 중이에요.” “저 지금 바로 갈게요!” 서정희는 가장 빠른 시간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서정희는 양손을 꼭 맞잡았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계속 잘 살아가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명세서를 건넸다. “서정희 씨, 방금전 아버님의 응급 상황에 대한 치료비와 수술 비용입니다.” 내역을 살펴보니 무려 수천만 원에 달했다. 한 달에 천만 원이나 드는 아버지의 일상 요양 비용도 그녀는 쓰리잡을 뛰어서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이번 달 입원비를 낸 터라 카드에 백만 원도 없는데 수술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서정희는 하는 수 없이 염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목소리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어딨어? 반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가.” “서정희, 재밌냐?” 염정훈은 차갑게 웃었다. “어쩐지 갑자기 생각을 바꿨나 했더니. 그런 구차한 거짓말에 속을 만큼 내가 멍청해 보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염정훈에 서정희는 설명했다. “거짓말 아니야. 예전에는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랬어. 당신에게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난 이제 이해해. 이런 결혼은 진작에 존재할 필요를 잃었지. 난 진심으로 당신이랑 이혼하고 싶어. 내가 못 간 건 아버지 심장병 발작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해서…” “죽었어?” 염정훈의 물음에 서정희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지? “아니, 응급 수술 중이야. 염정훈, 수술비로만 몇천만이 들어. 그 20억 먼저 주면 안 돼? 당신이랑 이혼할 거야, 약속할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염정훈의 비웃음이었다. “서정희, 딱딱히 기억해. 난 그 누구보다도 네 아버지가 죽길 바라고 있어. 돈을 줄 수 있어. 다만 이혼하고 나서.” 휴대폰에서 통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정희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과 염정훈이 사귀고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보이고 있었지만 방금 전 휴대폰에서 전해지는 원망에는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죽길 바란다니? 왜? 2년 전 회사가 파산했던 일이 떠오르며 모든 것에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그렇게 딱 들어맞는 우연이 있을 리가? 어쩌면 파산은 그가 벌인 일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 집안이 염정훈에게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서정희는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현재 급선무는 우선 그 몇천만 원의 수술비를 모으는 것이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자, 서정희는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선생님, 저희 아빠 어떻게 됐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서정희 씨. 복이 많으셔서 이겨내셨습니다. 다만 마음이 원래도 약하신 터라 당분간은 어떠한 충격도 다시 받게 해서는 안 돼요.” “알겠습니다.” 의사의 말에 서정희는 한시름을 놓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제평은 아직도 혼절 상태였다. 서정희는 얼른 간호인에게 물었다. “아버지 정신 상태 괜찮았었는데 왜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한 거예요?”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 “요즘 기분도 많이 좋으셨어요. 새우 교자도 드시고 싶다고까지 하셨는걸요. 전 산해채까지 고작 십몇 분밖에 안 걸리니까 금방 다녀왔었는데 제가 돌아오니까 이미 응급실로 실려 가셨어요. 정희 씨, 다 제 잘못이에요!” “떠나기 전에, 아버지가 누굴 만나지는 않았어요?” “아니요. 제가 떠나기 전만 해도 이상한 낌새는 없었어요. 아가씨가 산해채의 당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사 오라고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서정희는 이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간호사에게 서제평을 잘 보살펴달라는 말을 한 뒤 빠르게 간호사실로 가 방문기록을 살펴봤다. “서정희 씨, 오늘 서제평 환자를 방문한 사람은 없어요.” 간호사가 그녀에게 답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참, 서정희 씨. 환자분 비용 결제하셨나요?” 서정희는 난처함을 누르며 대답했다. “금방 낼게요, 죄송해요.” 간호사실에서 나온 그녀는 곧바로 차를 타고 법원으로 향했지만 염정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서정희는 다급하게 염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법원이야. 당신 어딨어?” “회사.” “염정훈, 지금 와서 이혼 수속할 수는 없어?” 염정훈은 냉소를 흘렸다. “당신이 보기엔 내가 지금 곧 들어갈 몇백 억짜리 프로젝트랑 당신 중에 누가 더 중요할 것 같아?” “회의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염정훈, 제발 부탁이야. 아버지 쪽에 지금 당장 급전이 필요해.” “죽으면 장례식 비용은 내가 내줄게.”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다시 걸었지만 전화는 이미 꺼져있었다. 촘촘하게 내리는 빗방울은 마치 커다란 그물처럼 서정희를 가둔 채 숨조차 쉬지 못하게 했다. 버스정류장 간판 아래에 쭈그려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를 보던 서정희는 후회했다. 만약 임신해서 휴학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미 졸업장을 받았을 테고 그녀의 능력과 학력이라면 분명 더 나은 미래가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집안은 파산했고 그녀를 보물처럼 여기던 염정훈은 갑자기 돌변했다. 하루아침에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일년 전, 염정훈은 사람을 시켜 그녀의 모든 쥬얼리 보석과 명품 가방을 가져간 탓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중 돈이 되는 것은 두 사람의 결혼반지가 유일했다. 반지를 벗은 그녀는 결연하게 한 명품 쥬얼리 샵으로 들어갔다. 판매원은 남루한 차림에 잔뜩 젖은 서정희를 훑어보며 물었다. “손님, 영수증과 보증서 가져오셨어요?” “네.” 판매원의 눈초리를 못 본 척하며 서정희는 고개를 숙인 채 다급하게 영수증을 건넸다. “네, 손님. 반지는 감정을 보내야 해서, 내일 연락드려도 될까요?” 서정희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조금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급히 돈이 필요해서요, 서둘러주실 수 있나요?” “네, 최대한 서두를게요. 잠시만…” 판매원이 반지를 가져가기도 전에 하얗고 가는 손이 뚜껑을 눌렀다. “반지가 참 예쁘네, 제가 살게요.” 고개를 든 서정희의 눈에 그녀가 싫어하는 얼굴이 보였다. 백지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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