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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서정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비웃음 섞인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염정훈 씨, 말을 해도 참 수준 떨어지네요.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사람은 당신 아닌가요?” 염정훈은 서정희의 말을 무시한 채, 냉랭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정희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요즘 쭉 그놈이랑 같이 있었어?”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서정희는 촘촘한 그의 속눈썹 아래에 자리 잡은 차가운 눈빛을 똑똑히 마주했다. 염정훈은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표정은 잔뜩 포악해져 있었다. 서정희는 아니라고 답했다. “아니. 택시 잡기도 어려운 날씨니까 마침 선배가 데려다준 거야.” 염정훈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정희, 너 거짓말 할 땐 눈을 아래로 보는 습관이 있는 거 알아? 아직도 못 고쳤네. 일 년이나 버티더니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위독한 당신 아버지를 두고 사라진 것도 다 그 남자 때문이지?” 서정희는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염정훈처럼 머리 좋은 사람은 서정희가 변명을 늘어놓으면 놓을수록 서정희가 도발한다고 느낄 테니 상황을 더 최악으로 몰고 갈 뿐이었다. 그래서 서정희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일단 접수부터 해.” 서정희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염정훈은 이미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염정훈이 서정희의 손목을 가볍게 잡고 있었지만 서정희는 통증을 느끼며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염정훈은 사악한 표정을 짓더니 한없이 냉랭하고도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전엔 이혼이 당신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벌일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 서정희는 멈칫했다. “뭐라고?” 염정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정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혼하기 싫어졌다고.” 염정훈은 커다란 손으로 서정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좋아?” 염정훈은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2주 전에 염정훈이 이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서정희는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았으니 서정희는 염정훈의 손길이 역겨울 뿐이었다. “손 치워! 염정훈, 지금 당장 이혼해!” 염정훈은 손쉽게 서정희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한때, 서정희를 위해 모든 비바람을 막아주던 염정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정희는 염정훈을 밀어내기 바빴다. “나 내려놔! 미쳤어? 염정훈!” 남녀의 물리적인 힘 차이는 너무 컸다. 게다가 서정희는 지금 한없이 연약했으니 염정훈에겐 꼼짝도 못 했다. 염정훈은 서정희를 차 뒷좌석에 태웠다. 몇 번의 버둥거림이었지만 서정희에겐 격렬한 운동과 맞먹는 체력 소모였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염정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냐니?” 염정훈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비아냥거렸다. “서정희, 난 당신이 죽지 못해 살기를 원해. 당신이 다른 남자랑 놀아나는 걸 멍청하게 두고 볼 줄 알았어? 말끝마다 죽어도 이혼은 못 한다더니,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네. 그 새 다른 남자랑 붙어먹었어? 그 정도로 외로웠던 거야?” 서정희는 머리가 아팠다. 염정훈이 내뱉는 못된 말에 서정희는 바늘로 찌르듯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입술을 악물고 말했다. “이혼을 그토록 원하던 건 당신이었잖아.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데 이제 와서 왜 또 이래?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한테 충실하지 않았어. 내가 다른 사람이랑 눈 맞았다고 한들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이어서 남자는 거만한 태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든 행복할 수 있지만 서정희 당신은 그럴 자격 없어. 알겠어?” 서정희는 아무 감정 없는 염정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숨 막히는 눈빛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이혼은 내가 정해.” 염정훈이 서정희 쪽으로 몸을 숙이자 그의 넥타이는 서정희의 볼에 툭 닿았다. 고급스러운 울 코트는 주름 하나 없이 반듯했다. 안하무인스러운 그의 태도는 세상 만물을 발아래 두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곧바로 사실인 것으로 검증됐다. 차가 코너를 돌자 서정희의 시선은 맞은편에 길게 늘어선 차들에 멈춰 섰다. 맨 앞에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카이엔이 보였다. 임성결의 차였다. 임성결은 서정희를 데려다주자마자 차 사고를 당했다. 서정희는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차 세워!” 아무리 멍청한 진상정일지라도 이 타이밍에 차를 세울만큼 바보 같진 않았다. 진상정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했다. 서정희가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자 염정훈은 그녀의 손목을 홱 낚아채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정희는 염정훈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왜? 속상해?” 염정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미쳤어? 선배는 나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병원에서도 우리 아빠를 챙겨. 난 선배랑 아무 사이 아니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염정훈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차가운 온기가 서정희의 뺨을 스쳤다. 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냐고? 당신이 괴로워할수록 난 기쁘니까...” 서정희는 있는 힘껏 염정훈의 셔츠를 붙잡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이미 기진맥진했지만 서정희는 애써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염정훈, 우리 아빠는 강선화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왔어. 정말 두 사람이 떳떳하지 못한 사이라 해도 난 아빠를 믿어. 아빠는 절대 강선화를 다치게 하지 않았을 거야.” 강선화의 이름이 언급되자 염정훈은 표정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소 짓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염정훈은 서정희를 거칠게 밀어냈다. “당신, 무슨 자격으로 그 이름을 입에 올려?” 서정희는 딱딱한 차 문에 세게 부딪혔다. 안 그래도 허약한 몸은 산산조각날 것 같았다. 그녀는 맥없이 옆에 기대며 통증을 애써 참았다. 염정훈이 강선화의 이름만 들어도 버럭하는 걸 보니 서정희는 맞게 짚었다고 생각했다. 강선화가 바로 염정훈의 잃어버린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서정희는 되물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꽉 감고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지금의 서정희는 말다툼을 벌일 기력도 없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등받이에 기대어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 볼 터치와 립스틱을 바른 덕분인지 창백한 얼굴이 가려졌다. 서정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염정훈은 서정희가 심술부리는 줄 알고 그녀를 무시했다. 그러나 차오르는 감정은 쉽게 조절되지 않았다. 차는 염정훈의 집 앞에 도착했다. 허약한 서정희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염정훈이 차에서 내리자 진상정은 차 문을 열고 조심스레 물었다. “사모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서정희가 아니라고 하기도 전에, 염정훈은 서정희를 내려다보며 건방지게 비웃었다. “이런 수작밖에 못 부려? 연약한 척하면 내가 마음 약해질 줄 알아?” 그동안 서정희는 염정훈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방법을 써봤다. 이번엔 진짜였지만 염정훈은 믿지 않았다. 잠시 뒤, 염정훈은 서정희가 차에서 내리지 않자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임씨 가문을 상대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꺼지는 게 좋을 거야.” 서정희는 금방 임성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아 임성결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서정희는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차에서 내렸다.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한기가 서정희를 덮쳤다. 서정희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서정희는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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