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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장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도 백지연은 변선희의 손을 꼭 잡고 한껏 들뜬 표정으로 다정하게 얘기했다. “엄마, 우리 어찌됐든 한가족인데 앞으로는 정희보고도 집에 자주 오라고 해요.” “네가 그렇게 얘기해주니 마음이 놓이네. 너희가 마음이 안 맞을까봐 걱정했는데.” 변선희는 백지연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지도 못하고 서정희와의 재회를 꿈꿨다. 그 누구도 백지연이 지금 얼마나 떨리는지알 수 없을 것이다. 방까지 가는 길에 셀수도 없이 서정희가 곤경에 빠진 모양새를 상상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안에 있는 사람을 보자 다들 자리에 얼어붙었다. 백지연의 얼굴에도 웃음이 점점 사라져갔다. 소파에 두 사람이 엉켜있었다. 염정훈은 재킷을 벗어던진채 흰 색 셔츠만 입고 있었는데 단추가 뜯겨져있어 가슴팍이 확연히 드러났다. 평소 한치의 빈틈도 안 보이던 진중한 모습과는 반대로 이렇게 퇴폐적이고 방탕한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염정훈은 품에 여자를 안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여자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파묻게 했다. 다들 여자의 가녀린 허리선과 밖에 드러난 백옥같이 흰 피부의 팔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염정훈이 전처와의 옛정을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염정훈이 그저 바람을 피우다가 들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잣집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다들 성인군자의 얼굴을 하고서 뒤에서는 누구보다 더 더럽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염정훈이었으니 말이 달랐다. 그동안 염정훈한테 엉겨붙는 여자가 한 두명이 아니었지만 다들 떨쳐져나갔다. 백지연은 염정훈이 유일하게 약혼녀로 인정한 여자였다. 공식 발표를 할 때 약혼녀를 아끼는 그 기세가 웅장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한 좋은 남편이 그것도 아들 돌잔치에서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우다니… 여수정은 품안의 여자가 서정희라는 것을 눈치채고 표정이 험악해졌다. 어찌됐든 백지연에게 염정훈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본인도 직접 염정훈의 일에 끼어든건데, 이건 선을 넘은 정도가 아니었다. 주식은 커녕 온 집안이 망하게 생겼다.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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