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그게…”
양건덕은 머리가 아팠다. 그는 이 몇 년간 그저 회사에 사람을 들이기만 했지 기타 업무들은 다른 주주들에게 맡겼으니 어떻게 알 수 있다 말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현의 평온한 눈빛에 양건덕은 더 안절부절못했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듯 고개를 숙였다.
“양 사잠님 지금 대답을 못하는 겁니까, 아니면 대답하기 싫은 겁니까?”
어떤 대답을 해도 지수현이 만들어낸 함정에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양건덕의 표정에는 분노가 잠깐 스쳤다.
“지 대표님,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회사를 관리하는 업무 쪽에는 능하지 않는다는 거. 일부러 이런 걸 물어본다는 건 그냥 절 괴롭히려는 거 아닙니까?”
지수현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양 사장님 본인도 업무를 잘 못한다는 거 알고 계시네요. 그렇다면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양 사장님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자격은 없는 거 같은데요.”
“…”
신설리는 서류를 들고 와 지수현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그러다 사무실 입구에서 마침 양건덕이 화를 내면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 그녀를 봐도 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지수현이 태연하게 서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양 사장님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그래? 아까 떠날 때 안색이 굉장히 안 좋던데.”
지수현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서류를 보며 말했다.
“자기 친척들을 해고한 거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가 봐. 무슨 일이야?”
신설리는 가지고 온 서류를 지수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오늘 사인해야 하는 계약서. 문제없으면 사인해 줘, 내가 가져갈게.”
지수현은 서류를 받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인사 쪽에 연락해서 비서 두 명 찾아달라고 전해줘.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알겠어. 지금 바로 연락할게.”
서류를 꼼꼼히 살펴본 뒤 지수현은 사인을 하고 지수현에게 건네 주었다.
“아. 지금 회사 자금이 얼마 정도 부족한 거지?”
신설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좋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적어도 100억은 될 거야.”
지수현은 미간을 좁혔다.
“알겠어. 나가서 일 봐.”
신설리가 나간 뒤 지수현은 자신이 현재 바로 쓸 수 있는 금액을 찾아보았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딱 100억이 조금 넘었다.
그녀는 재무팀 팀장을 불러오더니 자신 수중에 있던 100억을 회사 통장에 이체해 놓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회사에게 빌려주는 겁니다. 연말 정산 때 다시 돌려주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재무팀 팀장이 떠난 뒤 지수현은 계속 서류를 검토했다.
양건덕은 사무실에서 난리를 친 후에도 마음속에 계속 분노와 억울함이 남아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더니 신건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 대표님, 점심에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나 하시죠.”
신건우가 룸에 들어서자마자 양건덕은 열정적인 태도로 일어서 그를 대접했다.
“신 대표님, 어서 앉으시죠!”
신건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자리에 앉은 뒤 양건덕에게 말했다.
“양 사장님, 점심에 갑자기 회사에서 이렇게 먼 식당까지 절 부르다니,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나 봐요?”
양건덕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신 대표님께선 절 너무 잘 아신다니까요. 오늘 오전에 지 대표님께서 저를 상대로 행동을 취한 일은 알고 계시죠?”
신건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덤덤하게 말했다.
“양 사장님, 그건 지 대표님이 앞으로의 회사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내린 지시예요. 그러니 직원 몇 명 해고하는 건 정상인 거죠.”
게다가 그 사람들은 전부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날로 먹기만 했던 양건덕이 친척들이었으니 신건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양건덕은 억지로 몇 번 웃었다.
“신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신 대표님께선 지 대표님이 제 수하의 사람들만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찻잔을 들고 있던 신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양건덕은 계속 덧붙였다.
“심 대표님, 사실 전 대표님께서 우리 주주들 중에서는 능력이 가장 좋은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지 대표님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가장 많아도 아직 너무 젊지 않습니까. 일을 하는 것도 약간 충동적이고요. 그러니 전 신 대표님께서 MY를 운영해주셨으면 하는데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거죠?”
“듣기로는 신 대표님께서 현재 천성 그룹 백 사장님과 협의를 하고 있지만 계속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 대표님이 능력이 그렇게 출중하다면 MY와 천성 그룹의 계약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 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신건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죠.”
…
저녁, 지수현은 퇴근 뒤 성북에 위치한 저택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허정운에게 가로막혔다.
그는 위풍당당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지수현, 일을 벌여도 분수가 있어야지! 매일 다른 남자 집에 머물러? 지 씨 가문이랑 허 씨 가문 체면을 짓밟는 거잖아!”
지수현은 차갑게 웃었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기나 해? 너랑 지연정 우리 신혼집에서 밀회를 가질 때는 우리 두 집안 체면 생각을 안 했어?”
허정운은 가소로운 듯 답했다.
“내가 말했지, 나랑 지연정 전혀 그런 짓 벌인 적이 없다고!”
“그런 짓을 했든 안 했든 나랑 상관이 없는 일이지, 어차피 이혼할 건데.”
“이혼합의서는 이미 찢어버렸어, 그냥 일시적으로 화나서 한 일이라고 생각할게. 지금 나랑 돌아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로 칠 수 있어.”
지수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허정운, 왜 나랑 이혼하지 않는 거야? 설마 나 사랑하기라도 해?”
그 말을 들은 허정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녀를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 되는 거면 계속 나 방해하지 마. 젊었을 때 빨리 이혼해서 다른 사람 찾아야지.”
약간 애가 타는 모습이기도 한 그녀의 태도에 허정운의 주위에는 싸늘함이 계속 감돌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 찾을 생각까지 한 거야?”
“아니면?”
지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 곁에 계속 있는 거 남편 죽은 과부신세랑 뭐가 다른데? 난 내 행복 찾으러 갈 거야.”
“…”
그의 마음속에는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애써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지수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계속 그녀에 의해 감정이 변화되군 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한 글자씩 짓씹는 것처럼 말을 뱉어냈다.
“나랑 이혼을 굳이 하겠다면, 그래, 해도 돼. 대신 몇 년간 내 청춘을 허비한 배상액을 청구해야겠어.”
“?”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라는 그녀의 표정에 허정운은 다시 덧붙였다.
“100억. 만약 네가 낼 수 있다면 기꺼이 이혼해 줄게.”
지수현은 잠시동안 말이 없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허정운을 바라봤다.
“진짜 내가 100억을 주면 나랑 이혼할 거야?”
“그래, 하지만 내가 준 돈은 안 돼.”
몇 년간 지수현은 계속 허 씨 가문 쪽에서 거주를 했고 결혼할 때도 허정운은 그녀에게 한도가 없는 블랙카드 한 장을 건네줬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그 카드를 쓰지 않았다.
그의 생일 때 그녀가 준 선물도 전부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그러니 허정운은 지수현이 분명 이 많은 돈을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자.
지수현은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일주일 뿐이야. 일주일 내로 100억을 내오지 못하면 다시는 이혼 얘기 꺼내지 마.”
지수현은 미간을 좁혔다.
“허정운, 이 조건은 좀 너무한 거 아니야?”
허정운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이혼하자고 난리를 친 건 너야. 그래서 지금 기회를 주는 데도 불만이 많네. 지수현, 설마 너 나랑 밀당하는 건 아니지?”
지수현은 그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그래, 일주일, 알겠다고. 그러니까 이제 빨리 좀 꺼져줄래?”
그녀 눈빛에 담긴 불쾌함을 읽어낸 허정운은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우리가 이혼하기 전에는 다시 돌아가서 지내.”
“허정운, 적당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