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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어제 친구와 약속을 잡았기에 심자영은 아침 일찍 준비하고 문을 나섰다. 길 옆에 서서 어플로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자영아." 심자영이 고개를 돌리자, 강유리가 주경민의 팔짱을 낀 채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잠깐 멈칫했고 주경민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고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에 예전의 그 뜨거움이 없었다. 그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계속 차를 부르려고 했다. 주경민은 그녀의 거리감이 너무 어색했다. 조용한 그녀의 모습에 주경민은 그녀가 많이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오늘 학교에 수업 없잖아, 일찍 어딜 가려는 거야?" 심자영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경민이 그녀의 시간표를 어떻게 알지? 그녀는 더 생각하지 않고는 나지막하게 답했다. "친구 만나기로 했어." "무슨..." 주경민이 미간을 찌푸리고 더 물으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강유리가 그를 잡아당겼다. "자영이가 다 컸어, 자기 프라이빗이 있는 거야, 오빠라고 해서 평생 상관할 거야?" 강유리는 혼내 듯 말했다. "자영이가 남자 친구 만나러 가는 걸 수도 있잖아, 자꾸 묻지 마, 자영이 부끄러워하겠어." 주경민이 심자영을 힐끗 보았지만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는 그저 조용히 서서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는 짜증이 나서 낮고 묵직하게 말했다. "어디 가는데, 내가 데려다줄게." 심자영이 거절하기도 전에 강유리가 먼저 말했다. "민아, 우리 약혼식에서 입을 옷 제작하려고 디자이너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 자영이 데려다줄 시간 안 될 것 같아." 강유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경민이 바로 심자영한테 말했다. "그럼 알아서 택시 타고 가." 그러고는 심자영이 답하기도 전에 강유리를 차에 태우고 떠났다. 점점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심자영은 코끝이 찡해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이곳은 별장 지역이라 택시를 잡기 어려웠기에, 택시를 부를 수 없었던 심자영은 결국 걸어 나가기로 했다. 한참 걸어서야 겨우 택시를 잡았다. 친구와 전시회를 보고 난 후,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심자영이 출국할 거고, 앞으로 해외에 계속 남을 수 있다는 소식에 허수빈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갑자기? 네 오빠는 알아? 동의했다고?" 심자영은 그녀한테 자신과 주경민의 지금 사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거짓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했어, 우린 혈연관계가 없잖아, 오빠가 곧 약혼할 거야, 집에서 더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아." 허수빈은 복잡한 눈빛을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영아, 정말 출국할 거야, 아쉬워서 오빠 떠날 수 있겠어?" 심자영은 젓가락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는 억지미소를 지었다. "아쉽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난 이미 다 컸어, 새로운 인생 시작해야 해. 오빠도 오빠가 가야 할 길이 있어, 언젠간 헤어져야 해." "네가 진짜 이렇게 놓을 줄 몰랐어." 허수빈이 감탄하며 말했다. "예전에 네 오빠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어. 자기가 없으면 네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할까 봐, SKY도 포기하고 본 지방 대학을 선택했잖아. 널 좋아하던 남자애가 너한테 거절당하고 헛소문을 퍼뜨렸을 때도, 처벌을 받으면서까지 그 애를 혼내줬잖아. 가을 소풍 때, 네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때, 발에 깁스를 하고도 목발을 짚고 널 찾으러 갔잖아..." 허수빈과 심자영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지난 일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변했대?" 심자영은 순간 황홀했고, 예전 생각이 떠올라 표정이 굳어졌고 고개를 떨구었다. 허수빈은 그녀가 조용해 지자 더는 주경민 말을 꺼내지 않았고 얼른 다른 얘기를 꺼냈다. 밥을 먹고 나서, 두 사람은 학교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마침 학교 근처의 오래된 다과점을 지나게 되었다. 심자영은 이 가게의 치자꽃 과자를 아주 좋아했는데, 이 가게가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매일 200인 분만 판매했다. 하지만 그녀가 먹고 싶다고 하면 주경민은 아무리 바빠도 직접 줄을 서서 그녀한테 사주었다. 허수빈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그녀를 끌고 줄을 섰다. "이 가게 사장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퇴직이래, 오늘이 마지막으로 영업하는 거래, 앞으로 더는 못 먹어." 허수빈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심자영이 멈칫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갑자기 앞에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주경민이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심자영이 시선을 아래로 옮겼는데, 그의 왼손에 과자들이 몇 가지 있는 걸 보았다. 그중에 그녀가 좋아하는 치자꽃 과자도 있었다. 주경민도 심자영을 만날 줄 몰랐는지 그녀의 앞에 있는 허수빈을 힐끗 보고는 물었다. "물건 사러 왔어?" "응." 심자영이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답했다. 주경민이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게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자꽃 과자가 다 팔렸어요, 다른 걸 보시면..." 허수빈은 주경민을 보지 못하고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나서 뒤돌아 심자영한테 말했다. "아쉽네, 못 먹겠어..." 그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주경민을 보았고 그가 들고 있는 과자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경민 오빠, 이 가게가 문 닫는 줄 알고 특별히 자영이를 위해 산 거야?" 주경민은 심자영을 힐끗 보았고 답하려고 했다. "민아, 다 샀어?" 강유리가 걸어오더니 다정하게 주경민의 팔짱을 끼고는, 이제야 심자영을 본 것처럼 말했다. "어머, 자영아, 너도 과자 사러 왔어? 이 집 치자꽃 과자가 유명하다고 민이한테 들었어, 나 맛보게 하려고 특별히 돌아서 왔는데 이렇게 만난 줄 몰랐네." 허수빈은 의하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힐끗 보고는 조용히 심자영의 손을 잡았고, 그녀한테 위로를 주려 했다. 하지만 심자영의 손이 아주 차가웠다. 심자영은 입술을 오므린 채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강유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애교를 부리며 주경민한테 물었다. "치자꽃 과자 샀어?" "네가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샀지." 주경민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치자꽃 과자를 꺼내 강유리한테 건넸다. 강유리는 조용히 심자영을 보며 뿌듯한 눈빛을 보냈다. "줄 선 사람이 너무 많네, 우리가 산 걸 자영이한테 나눠주자, 어차피 나 다 못 먹어." "그래." 주경민이 웃으며 답하고는 심자영을 바라보지도 않고는 대충 과자를 집어 건넸다. 심자영은 위에 쓰여 있는 밤 과자라는 글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밤 알레르기가 심해서 한 번은 입원까지 했었다. 그날 이후로, 주경민은 집에 그 물건이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주경민은 그걸 잊었다. 어쩌면 신경 안 쓰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이미 주경민을 포기하기로 결심했고, 앞으로 오빠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젠 그들이 대놓고 애정행각을 해도, 주경민이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걸 다른 사람한테 주어도, 심지어는 알레르기를 기억하지 못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거나 괴롭지도 않았다. 그래서 강유리의 도발도 상관없었고 말려들지 않았다. 심자영은 고개를 들어 덤덤하게 주경민을 바라보았고 가볍게 거절했다. "아니야, 오빠, 별일 없는 거면 먼저 가볼게." 그러고는 허수빈을 끌고 미련 없이 뒤돌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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