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탕!
아찔한 총성이 폭풍우가 쏟아지는 절벽 끝에서 들려왔다.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강은영의 눈앞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강우 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산 속에 울려퍼졌다.
강은영은 미친 사람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그의 가슴을 붙잡고 어떻게든 출혈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체온도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왜 왔어….”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이혼한 전처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를 강은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가문의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남자, 박성철.
하지만 과거의 따뜻했던 눈빛에는 오로지 싸늘함만 담겨 있을 뿐이었다.
강은영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나한테 접근한 거였어?”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녀와 박강우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그녀가 박강우를 증오하게 만들고 박강우를 부현그룹 대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함이었다.
박성철은 그녀의 절규를 무시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곧이어 그의 등 뒤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걸어나왔다.
‘강설아?’
박강우를 사랑한다던 강설아는 왜 또 박성철이랑 같이 있는 걸까?
강은영은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이명이 들리고 분노에 이가 갈렸다.
“두 사람….”
강설아는 다가와서 다친 강은영의 어깨를 발로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
“내가 진작에 말했지. 강영물산은 네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왜 언니 말을 안 들어?”
강은영은 그제야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강은영은 깊은 절망과 분노에 치가 떨렸다.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서 좋아? 천벌 받을까 두렵지도 않아?”
“천벌?”
박성철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그건 염라대왕님한테 가서 여쭤봐.”
말을 마친 그는 총구를 그녀에게 겨누었다.
악귀처럼 섬뜩하게 웃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강은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안 돼!”
총구는 곧 박강우에게로 향했고 강은영은 미친 사람처럼 절규했다.
그녀의 절규 속에 총탄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박강우의 심장을 꿰뚫고 피를 사방으로 튕겼다.
강은영은 실성한 사람처럼 박강우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이때, 가슴에서 숨막히는 통증과 함께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여자의 하얀 손은 힘없이 진흙바닥에 미끌어졌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자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따뜻한 입술로 남자의 얼굴에 키스하며 말했다.
“미안해….”
결국 그녀의 멍청함이 그의 목숨까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강우 씨,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는 당신 말만 믿을게.”
입을 연 순간 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고 곧이어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녀는 증오와 후회를 안고 박강우와 함께 깊은 심연으로 추락했다.
철컥!
“안 돼!”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하며 눈을 번쩍 떴다.
눈 부신 전등 불빛과 함께 박강우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한 순간, 강은영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멀쩡히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숙여 총탄을 맞았던 가슴을 내려다본 순간, 그녀는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난 분명….”
그녀가 넋을 놓은 사이, 남자는 성큼 다가와서 그녀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을 그대로 집어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또 도망칠 거야?”
“아니. 나 이제 안 도망치지 않을 거야, 강우 씨.”
강은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남자의 목덜미를 껴안고 말했다.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겨우 받아들인 그녀는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렸다.
“아!”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려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보기에도 섬뜩한 상처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
놀란 그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남자의 단단한 팔이 다시 그녀를 붙잡아 품에 안았다.
고개를 들자 남자가 음울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순간적으로 보인 본능적인 반응이 남자의 아픈 곳을 건드린 듯했다.
“또 도망가려고? 도망칠 기운은 있어?”
“아니. 도망가려던 거 아니야.”
짙은 분노가 느껴지는 남자의 말투에 강은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정에도 남자의 이성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박강우는 그대로 몸을 뒤집어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매끈한 복근에 난 기다란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스며 나왔다.
강은영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하지 마!”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강은영은 몸을 비틀며 그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울음 섞인 거절과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그의 분노만 자극할 뿐이었다.
“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강은영은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보자 절벽 끝에서 절규하던 그 장면이 떠올라 떨리는 손으로 상처에 손을 뻗었다.
피는 그녀의 손가락을 흥건히 적시며 흘러내렸고 강은영은 절망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강우 씨, 피 나….”
당황한 그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박강우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길과 눈물을 머금은 얼굴을 보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강은영은 그의 팔에 매달려 작은 소리로 애원했다.
“일단 지혈부터 하자. 응?”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두려움이 묻어났다.
박강우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차갑게 말했다.
“뭐야? 이렇게 잘해주는 척하다가 기회 봐서 도망가려고?”
강은영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도망 안 가니까 일단 이거 놓으라고!”
지난 생의 진실을 다 알고 있는 그녀가 도망칠 생각을 할 리 없었다.
죽기 전에 그들의 본모습을 알아버렸고 목숨을 던져 자신을 구하러 왔던 이 남자에게서 다시 도망칠 생각을 할 리가 없었다.
지난 생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 때문에 생긴 이 상처 때문에 박강우는 장장 한 달을 고생했다.
“약 가져올게.”
강은영은 혹시라도 또 그의 신경을 자극할까 봐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밀쳤다.
하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강은영은 미안함에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는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강은영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어제 회귀한 순간 힘을 뺀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상처가 이렇게 깊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재빨리 방에서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던 박강우의 예상과는 다르게, 강은영은 서랍에서 소독약을 챙겨왔다.
“아!”
침대에 앉자마자 남자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강은영은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하고 말했다.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안 그래도 깊은 상처가 벌어져서 더 흉측하게 보였다.
그녀는 얼른 소독약을 꺼내 조심스럽게 상처에 발라주었다. 따뜻한 손길이 상처에 스치자 오히려 박강우가 당황하며 흠칫 몸을 떨었다.
곧이어 그녀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남자는 그녀의 턱을 잡고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강은영은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다.
드디어 다시 살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은영아, 도망칠 생각은 포기해. 절대 놓아줄 생각 없으니까!”
남자가 거친 숨을 토하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