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대표님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 차 얼마짜리지?” 성효진은 백미러로 차에 새겨진 슈퍼카 로고를 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둘을 팔아도 배상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나유아는 눈을 깜박였다. “주차 자리를 빼앗는 게 못마땅해 일부러 들이박은 줄 알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바보가 아니거든.” 성효진은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나유아는 몸을 기울여 기어를 떼고 핸드브레이크를 올린 뒤에야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가볼게.” 슈퍼카 주인도 차에서 내렸는데 키가 1ｍ 90㎝ 정도 되는 멋진 남자였다. 아주 큰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오뚝 솟은 콧날과 지나치게 빨간 입만 드러내 있었는데 나유아를 보자 껌을 씹던 동작을 잠시 멈추고 웃었다. “날씬한 아가씨, 우리 만난 적 있죠? 왜 이렇게 낯이 익지?” 나유아도 낯이 익어 가까이 가서 보니 고선호의 친구 심호현이었다. 심호현은 고선호와 함께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짜개 바지 친구였다. 하지만 나유아가 그를 본 것은 2년 전뿐이었다. 고선호가 술에 취해 그녀를 데리러 가서 심호현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유아의 시선은 재빠르게 일그러진 차 앞부분과 심호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웃었다. “심호현 씨?” 심호현은 어리둥절해 하며 손을 들어 선글라스를 위로 밀어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씬한 아가씨, 우리 만난 적 있어요?” “나유아야.” 심호현은 몇 초간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야 나유아가 누군지 떠올리고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폈다. “형수님...” 나유아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스포츠카의 앞부분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심호현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내 탓이야. 서둘러서 사람을 만나러 가려고 주차 자리를 잡으려고 그랬어. 큰 문제는 아니야, 나중에 직접 보험을 부르면 돼.” 나유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차 수리비는 고선호에게 청구해.” 그러자 심호현이 황급히 대답했다. “별것도 아닌 일을 갖고 뭘 그래. 신경 쓰지 마.” 고개를 돌린 나유아는 멍하니 식은땀만 흘리는 성효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멍하니 뭐해? 운전해! 맞은편 상가 주차장으로 가자.” “알았어." 성효진은 차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고 약간 의아해했다. “그 사람이 나중에 고선호에게 말할까 봐 두렵지 않아?” “알려주라지 뭐, 오늘 오후만 무사하면 돼.” 나유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거기서 세 시간을 소비한다면 돈뿐만 아니라 주문도 물 건너 간거야.” 심호현과 고선호의 관계라면 그까짓 돈쯤 따지지 않을 것이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나유아가 당부했다. “이따가 동성에 가면 네가 수정이고 난 너의 비서인 거야. 알겠지?” 성효진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 이 공을 내 탓으로 돌리려는 거야?” 나유아는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심호현이 동성에 있는데 내가 수정이라는 것을 알면 고선호에게 알려질 거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그녀는 방금 자기가 남편을 잃은 과부라고 말했다. 그녀가 수정이라는 것을 고선호가 알게 된다면 그녀를 죽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효진은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맞은편 쇼핑몰에 차를 세우고 또 잠시 뜸을 들이던 두 사람은 세시가 되자 심호현을 다시 만날 불운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성 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그녀들이 엔효 패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왔다는 말에 두 번 더 쳐다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정 디자이너님이신가요?” 성효진은 들킬까 봐 검은 선글라스를 사서 쓰고 있었는데,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 여기는 제 비서예요." 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존경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대표님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