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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독거미

“천수야, 어디 한 번 덤벼 봐.” 통화를 마친 김연아가 돌아섰을 때 마침 강준을 향해 달려드는 이천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벌한 기세로 뛰어오던 이천수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 뒤를 따르던 두 부하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이내 야구 방망이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댕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정다은은 김연아의 말을 못 들은 듯 벌떡 일어서더니 이천수의 품에 안겼다. 이때,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천수 씨, 바로 저년이 날 때렸어요. 이거 봐요. 얼굴이 다 부었잖아요. 더러운 연놈들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마세요!” 정다은의 말에 이천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팔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대뜸 따귀를 날렸다. 심지어 젖 먹은 힘까지 다해 풀파워로 휘둘렀다. 뺨을 맞은 정다은은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고 나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죽여 버릴 거야!” 이천수는 정다은의 예쁘장한 얼굴을 연신 걷어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년이 감히 연아 누나를 욕해? 맞아야 정신 차리지?” “그만해.” 김연아가 짜증 섞인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네 여자친구 아니야? 훈육하더라도 둘만 있는 곳에서 해야지, 길거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럼요. 연아 누나 말이 맞아요.” 이천수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더니 부하를 향해 큰소리로 호통쳤다. “얼른 끌어내지 않고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돌아가면 아주 혼쭐이 날 각오해!” “네, 네!” 두 부하는 이천수에게 걷어차여 기절한 정다은을 들어 올려 신속히 차에 태웠다. 하지만 이천수는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하얗게 질린 얼굴만 봐도 그가 김연아를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강준도 속으로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어젯밤만 해도 이천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지성 그룹 헌터바 대표인 안정우마저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춰주지 않았는가? 헌터바의 안정우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비록 헌터바 직원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연기태와 친했다. 연기태의 말에 따르면 안정우는 인맥이 워낙 넓어서 강성시에 막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산업을 지니고 있으며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업종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마저 이천수를 만나면 고개를 조아리기 바쁜데 당사자의 클래스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천수는 마치 고양이를 본 쥐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에게 공포심을 안겨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김연아였다. “연아 누나의 친구인 줄 몰랐어요. 이 주둥아리가 방정이지!” 이천수가 대뜸 자기 뺨을 때렸다. 물론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함정이었다. 김연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앞으로 준이한테 접근하지 마.” 그리고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차에 돌아갔고, 이내 강준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천수가 굽신거리며 손 인사를 건네자 강준은 시동을 걸고 유유히 떠났다. 저 멀리 떠나가는 차를 보며 이천수의 표정이 점점 싸늘해지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재수 없는 년! 언젠간 너도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두고 봐.” “도련님, 독거미 같은 여자는 갔나요?” 이때, 두 부하가 쪼르르 뛰어와서 물었다. 사실 이천수보다 김연아를 더 무서워하는 사람은 그들이었다. “흥, 어차피 며칠 못 갈 거야. 최근에 입수한 소식인데 누군가 저 여자를 노리고 있대.” “이런 미친 여자를 건드리는 사람이라니?” 부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리둥절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에 큰코다치지나 마. 너희들이 알아서 뭐 하게? 참, 정다은은?” 이천수가 시부렁거리며 말했다. “차에서 피를 닦고 있어요. 아까 꽤 세게 걷어찼던데요?” “바보 같은 년! 호텔로 데려가. 계속해서 뽕을 뽑아야지.” “네!” 두 부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천수는 고용주로서 아량이 넓은 편에 속했다. 가끔은 놀다가 질린 ‘장난감’을 부하들에게도 하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정다은도 며칠 안 남은 듯싶었다. ... 한편, 벤츠 SUV에서 김연아도 이천수의 신상을 탈탈 털고 있었다. “아까 본 남자는 이천수라고 하고, 위로 이진수라는 형이 있어. 이씨 가문은 배경이 탄탄한 집안이며 강성시 토박이로 발전해 와서 산업 규모가 어마어마한 편이야. 이제 기성세대가 전부 2선으로 물러났기에 지금은 형이 이수그룹을 운영하고 있어.” “이천수 이놈은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흘이 멀다고 여자를 바꿨는데 강성시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는 않아. 만약 이씨 가문이라는 든든한 백과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이진수가 없었더라면 이미 죽고도 남았을 거야. 1년 전쯤에 술에 취해 나랑 마주쳤다가 괜히 집적거리기에 한쪽 다리를 부러뜨린 적이 있거든? 그 뒤로 내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해.” “누나는 직업이 뭐예요?” 강준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김연아는 옆으로 돌아앉더니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맞춰 봐.” 그녀가 움직이는 순간 풍만한 가슴이 마침 시야에 들어왔고, 왠지 모르게 도발적인 눈빛과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워 자칫 신호 위반을 할 뻔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허둥지둥하는 강준의 모습을 보자 김연아는 박장대소했고, 이내 가슴이 들썩거렸다. 사실 김연아가 자신감이 넘치는 데 이유가 있다. 비록 강준보다 나이는 많지만 강성시의 연하 킬러로 자부할 정도였다. 그녀를 만난 젊은 남자 중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흑심을 품었을 것이다. “아까는 고마웠어요.” 강준은 차마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이렇게 가슴이 큰 여자는 처음 보았다. 김연아는 피식 웃었다. “넌 무슨 일하는데?” “경비원이에요. 스턴 클럽에서 일해요.” “어쩐지.” 김연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네 여자... 전 여친은 딱 봐도 여우야. 그런 사람을 만족시켜 준다는 게 이상하지.” 강준은 대답하는 대신 묵묵히 운전했다. 물론 그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어젯밤에 바람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으니 속상할 게 뻔했다. 이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늘 낮에 시간 있어?” “네.” “그럼 아침 먹고 나랑 어디 가자. 이참에 기분 전환도 좀 하고.” 어차피 낮에 할 일도, 딱히 갈 곳도 없는지라 강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나 가는 데 따라갈게요.” 잠시 후, 두 사람은 아침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김연아가 말한 아침은 다름 아닌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의 조식이었다. 이내 가방을 메고 강준과 호텔에 들어섰을 때 도어맨과 직원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연아 누나라고 불렀다. 강준은 깜짝 놀랐다. 김연아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5성급 호텔에도 지인이 있다니? 그녀의 조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죽 한 그릇과 디저트 두 조각이 전부였고, 다른 건 입에 대지도 않았다. 반면 강준은 모처럼 5성급 호텔에 왔으니 음식을 잔뜩 골라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김연아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관찰했다. 어젯밤에 무슨 수로 납치범을 발견하고 그녀와 완벽 호흡까지 자랑했는지 사뭇 궁금했다. 두 사람이 납치범을 제압했을 때 마치 사전에 합의라도 한 듯 이심전심이 따로 없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맞은편의 젊은 청년은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둘이 식사를 마치려는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김 대표님? 이런 우연이 있다니!” 이내 슈트 차림에 금테 안경을 쓴 사람이 다가왔고, 외모는 50대로 보였는데 기운이 범상치가 않았다. 김연아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엄 대표님은 내가 아직 살아서 밥고 있는 먹는 게 의외일지도 모르겠네요?” 엄철수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김연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뜻인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아, 참...” 이내 손목시계를 흘긋 쳐다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따가 중요한 전화가 걸려 올 수도 있으니까 꼭 받아요.” 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가방을 메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준이 서둘러 뒤를 따랐다. 그와 동시에 엄철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번호가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즉시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휴대폰 너머로 도발적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 대표의 따님이 우리 손에 있는데...” “내 딸 손가락 하나 건드릴 생각하지 마!” 엄철수가 버럭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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