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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주은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윽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시영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주은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휘파람을 불며 자전거를 끌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유시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전영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시영아, 요즘 주은우가 딴 사람처럼 변한 것 같지 않아?” 유시영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아마 일부러 새침한 척하는 밀당 수작일 거야. 내가 하루만 무시하면 분명히 굽실거리며 나를 찾아올 거야!” 유시영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유시영은 주은우가 갑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영아, 이렇게 예쁜 너를 어떻게 쉽게 포기하겠어? 그저 전술을 바꾸었구나!” 전영미는 유시영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웃었다. 교실에 도착한 주은우는 한눈에 영어 공부하는 반장 도시아를 보았다. 자신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도 이토록 노력하는데,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은우도 자리로 돌아와 영어책을 꺼내 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하나 둘 교실로 들어왔다. 유시영은 열심히 단어공부를 하는 주은우를 힐끗 보며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였다. 강성대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나의 말 한마디가 그를 이토록 크게 바꾸었는데 어떻게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강성대학교에 합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따가 수능 원서를 작성할 때 선생님께서 틀림없이 비웃을 것이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리자 최옥화는 물컵을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앞으로 한 달은 비상시기이니 마음 편히 복습할 수 있도록 자리를 옮길 생각이다.” 최옥화는 기타 몇 개 반의 방안을 본보기로 학생들의 짝꿍을 바꾸려고 했다. 말썽을 부리는 학생들을 한 곳에 몰아 앉히니 그들은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과 우수한 학생들을 합류시키려 했다. 진태용은 담임 선생님의 주의를 받을까 봐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그는 여전히 낮에 잠을 좀 자려고 한다. "진태용, 현민호랑 자리 바꿔!” 최옥화는 위엄 가득한 시선으로 진태용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예상이 현실로 되었다. 진태용은 가운데 세 번째 줄에 앉은 현민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짝꿍은 국어과 대표 장유비이다. 주은우는 담임 선생님을 매우 탄복했다. 이것은 완전히 증상에 맞는 처방이다. 진태용은 문과, 특히 독해 능력이 좋지 않기에 장유비가 진태용에게 이 부분을 가르칠 수 있게 하려 안배였다. 그러나 의문스러운 것은 전생에 자리를 옮긴 적이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환생으로 인해 운명의 궤적이 어긋난 것으로 보였다. “선생님, 저 주은우와 함께 앉지 않을래요!” 현민호는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자신의 국어 성적이 겨우 조금 나아졌는데 만약 주은우와 함께 앉는다면 앞으로 한 달간 성적이 틀림없이 떨어질 것이다. 최옥화는 얼굴이 싸늘해지며 물었다. “그럼 책상을 들고 교단 옆에 와서 앉을래?” 현민호는 풀이 죽어 입을 삐죽거리며 묵묵히 자신의 교과서를 정리했다. 진태용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망했어, 나의 행복한 삶은 이제 없어!” 주은우는 진태용을 흘겨보았다. “앞으로 한 달만 남았으니 수능에 몰두해야 해. 장유비도 있으니 네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국어 성적을 높일 수 있을 거야!” 최옥화는 계속 학생들의 자리를 바꾸어주었다. “전영미는 오종현과 자리 좀 바꿔!” “싫어요...” 전영미는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전영미는 성적이 별로였는데 아직 유시영의 도움이 필요했다. 오종현은 뒤로 3번째 줄에 앉았는데 그의 짝꿍은 고운도였다. 못생겼고 성적도 낮으니 주은우만도 못했다. 비록 주은우는 성적이 좋지 않고 멍청했지만 적어도 얼굴은 반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시영이 그를 놀리지 않았을 것이다. “전영미는 다른 과목의 성적은 괜찮은데 유독 물리만 성적이 낮아. 그런데 고운도는 물리 성적이 좋으니 너희 둘은 서로 배울 수 있어.” 최옥화가 의도를 설명했다. 그녀가 자리를 옮기는 것은 모두 심사숙고한 것이다. 다른 두 개 반에서 자리를 옮겼는데 효과가 좋은 편이다. 하여 반급의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그녀는 비로소 이 방안을 참고했다. 유시영은 체구가 우락부락한 오종현을 흘끗 쳐다보았고, 눈빛에는 혐오감이 번쩍였다. “선생님, 저는 남자랑 짝꿍 하기 싫어요!” 오종현은 시골에서 왔기에 팔뚝이 그녀의 허벅지보다 굵었고 농구를 좋아하다 보니 온종일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으니 짝꿍을 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였다. 하지만 최옥화의 결정을 어찌 학생 한 명이 바꿀 수 있겠는가? 오종현은 유시영 옆에 앉았다. 유시영은 억울해서 눈물만 흘렸다. 오종현은 이렇게 예쁜 여학생과 가까이해본 적이 없었다. 얼굴이 빨개진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유... 유시영, 나와 함께 앉고 싶지 않으면 이따가 수업이 끝난 후 내가 선생님께 말할게!” 유시영은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아예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를 상대하지 않으면 선생님께서 자리를 바꿔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고 결국 오종현을 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업 시간 내내 자리를 옮겼다. 많은 학생이 이미 새로운 짝꿍과 함께 서로 배우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옥화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이번 자리를 옮기는 것에 만족해했다. ‘나는 왜 전에 이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선생님...” 주은우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최옥화는 주은우를 혐오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저도 자리를 바꾸고 싶어요...” 주은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과목마다 성적이 낮아서 어떻게 바꿔도 소용없어...” 최옥화는 가차 없이 타격을 주었다. 많은 학우가 폭소를 터뜨렸다. 주은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그러나 이건 다 내 탓이야.’ 피시방과 연애에 빠져서 공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열심히 해도 선생님은 그저 벼락치기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최옥화는 주은우의 풀이 죽은 낯빛을 보고 마음속으로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내가 바꾸어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반에서 진태용 말고 아무도 너와 함께 앉기를 원하지 않아.” “선생님, 제가 함께 앉을게요.” 이때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옥화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의아해하는 듯 도수아를 바라보았다. 최옥화뿐 아니라 다른 학우들도 모두 놀랐다. 반장이 주은우와 짝꿍을 하려 하다니? ‘공붓벌레와 장난꾸러기가 짝꿍을 한다니! 장난이지?’ 최옥화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안돼, 넌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수도권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있어. 난 주은우가 너의 걸림돌이 되는 것을 허락 못 해!” 도수아는 얼굴을 붉히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주은우가 요즘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선생님, 기회를 한 번 주는 것이 어떨까요?” “열심히 한다고?” “유시영에게 연애편지를 열심히 쓰니?” 최옥화는 이 일을 꺼내기만 하면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하하...” 학우들도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도수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최옥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그를 3일간 너의 곁에 앉게 할게. 만약에 이 3일 동안 현저히 달라졌다면 계속 너의 옆에 앉게 하겠지만, 만약 너에게 방해가 된다면 즉시 다른 곳으로 옮길 거야.”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도수아는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종래로 남학생과 짝꿍을 이룬 적이 없었다. 주은우는 빠른 속도로 교과서를 정리하고는 도수아의 옆에 앉은 황기아와 자리를 바꾸었다. 황기아는 울상이 되어 주은우를 노려보았다. “3일, 3일 후에 우리는 자리를 바꾸게 될 것이야!” 주은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3일 후에 다시 이야기해!” 이로써 자리바꿈을 완성했다. 주은우는 맨 뒷줄에서 첫 번째 줄로 왔다. 창가에 앉은 유시영은 주은우의 웃는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이렇게 좋은 기회에 선생님께 짝꿍 신청도 안 했어?’ ‘난 완곡하게 거절할 이유도 생각해놨어.’ 곧 1교시 수업이 끝났지만, 최옥화는 수업을 끝내지 않고 사무실로 가서 수능 원서를 가져왔다. 요즘은 원서를 먼저 쓰고 수능을 보는 시대였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수능 후 원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능 원서를 작성해야 해. 이건 시뮬레이션이기에 내일 오후 하교 전까지 제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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