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는 전교에서 유명한 모태 아첨꾼이다. 그런 내가 환생했다.
전생에 유시영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아첨하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수능에 떨어졌다.
뚱뚱한 사람은 싫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몸도 망가졌다.
실망한 아버지의 눈빛과 눈물 젖은 어머니의 눈을 보며 나는 한을 품은 채 죽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고 한다.
다시 한번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번 생은 나 자신을 위해 살 거라 다짐했다!
더는 모태 아첨꾼이 되지 않기로 했을 때, 충실한 아첨꾼을 잃은 얼짱이 오히려 급해 할 줄은 몰랐다.
“주은우, 너 이 연애편지를 반 친구들에게 소리 높여 감정적으로 읽어 봐, 사랑하는 누구, 누가 너의 사랑하는 사람인지.”
3학년 1반 담임 최옥화는 분노에 차 주은우의 얼굴에 연애편지 한 장을 내 던졌다.
끊임없이 교단을 내리치며 화가 나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하하하...”
반 친구들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며 시선이 일제히 주은우를 향했다.
‘여긴 3학년 1반? 내가 2004년으로 환생한 건가?' 주은우가 중얼거렸다.
천천히 사방을 바라보니 칠판에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천금 같은 시간을 아껴 쓰자’ 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대학 입시 전의 슬로건이였다.
벽에서는 낡은 선풍기가 윙윙거리며 돌고 있었다.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교복을 입은 학우들의 눈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주은우는 고개를 숙여 품속의 연애편지를 보았는데, 바로 자신이 대학 입시를 한 달 앞두고 같은 반의 얼짱 유시영에게 쓴 것이었다.
뜻밖에도 유시영은 이 편지를 선생님에게 건네줬고 자신은 반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전생에 주은우는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유시영을 좋아하며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대학에서 그녀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결국 그녀가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겨우 체념했다.
주은우는 고개를 들어 유시영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줄에 앉은 유시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시큰둥한 눈빛을 하고 있다.
주은우는 연애편지를 펼치고 자신이 쓴 앳되고 진실한 구절을 보았다.
“사랑하는 시영에게, 나는 네가 어느 대학에 지원했는지 묻고 싶어. 너랑 같은 학교에 등록하고 싶고, 너와 함께 대학을 다니고 싶고,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읽지 마.” 짝꿍 진태용이 작은 소리로 말하며 볼펜으로 주은우의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이걸 읽고 있는 주은우도 보통은 아니라 생각했다.
“하하하...” 주은우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젊었을 때 이렇게 오글거리는 걸 썼다는 게 우스웠다.
“이게 웃겨? 복도에 가서 서 있어.” 최옥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네...” 주은우는 입을 다물고 웃음을 참으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최옥화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젠 주은우는 포기해야겠어. 곧 대학 입시가 다가오는데 머릿속은 온통 연애 생각뿐이야.’
이런 학생이 무슨 장래성이 있겠는가? 자신의 진학률만 떨어뜨릴 뿐이다.
주은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복도에 서 있다.
전생에 넉넉하지 못한 가정과 샐러리맨 부모 사이에서 명문고에 다니기 위해 돈을 많이 썼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과외를 받았다.
하지만 바보같은 그는 고2부터 이미 과외에 나가지 않았다.
보충 수업료를 챙기고 유시영에게 선물을 사주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대학도 합격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친척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일자리를 안배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고졸 학력 때문에 여기저기 퇴짜를 맞았다.
결국 지인의 도움으로 야근을 일삼는 회사에 들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했다.
매달 월급은 유시영의 선물을 사는데 다 썼다.
유시영은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90키로인 그는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결국 굶어 병이 났다.
죽기 전에 유시영이 자신을 보러 한번도 오지 않았으니 생각만 해도 슬펐다.
하지만 주은우는 유시영을 미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이니 말이다.
다만 전생의 죽음과 함께 이젠 많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유시영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대학에 가지 못하고 부모님 앞에서 매일 열심히 하는 척만 했던 것이 유일한 후회였다. 그는 이번 생에는 아버지의 실망스러운 눈빛과 눈물 젖은 어머니의 눈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주은우는 기지개를 켜며 입가에 안도의 미소를 머금었다.
“전생에 그 많은 것을 바쳤으니 충분해. 이번 생은 날 위해 살아야지.”
“따르릉...”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 많은 학생이 걸어 나왔다.
친구들은 주은우 앞을 지나가며 한두 마디 비웃었다.
“은우 대단해, 연애편지도 쓸 줄 알아?”
“하하하, 아쉽네, 얼짱이 널 안 좋아해...”
지루한 고3 생활에서, 이 즐거움은 그들이 한 달 동안 토론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주은우는 어깨를 으쓱하고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막 반으로 돌아가려는데 유시영이 그를 불렀다. “주은우.”
“무슨 일이야?” 주은우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유시영은 앞머리를 단정히 하고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으며 하얀 피부를 자랑했다.
예쁜 눈은 크고 둥글며, 긴 속눈썹은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앳된 모습이었는데 아직 화장을 배우기 전이라 교복을 입으니 청순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녀는 두 손을 뒤로 한 채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주은우, 오늘 일은 미안해. 편지가 답안지에 섞여 있는 걸 깜박했어.”
“오...” 주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도 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었고 이미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은우, 사실 난 강성대학교에 지원했어. 열심히 해, 강성대학교에서 기다릴게.”
유시영은 발끝을 세우고 귓가에 대고 말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교실로 달려갔다.
“습...”
주은우는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그 순간, 하마터면 또 빠져들 뻔했다.
‘이 계집애 수단이 대단해.’
그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마음을 안정시키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유시영의 말은 오히려 대학 입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전생에 그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최옥화 선생님은 비록 무서운 분이셨지만 주옥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가면 그것은 내 것이 되고, 다른 사람은 훔쳐 갈 수 없다.”
사회에 나가자 주은우는 이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번 생에는 열심히 공부해야지.”
유시영이 반에 돌아오자 절친 전영미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너 주은우의 연애편지를 선생님에게 드렸어? 그 바보가 화내면 어떻게 해? 우리 여름 휴가 여행 경비가 아직 걔한테 달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방금 내가 어느 대학에 갈지 말해줬어. 좀 있다 책 보러 갈걸?” 유시영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주은우의 연애편지를 담임교사에게 건네는 것은 주로 자신이 아직 솔로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물고기 한 마리 때문에 큰 어장을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주은우는 급히 교실로 돌아가 글짓기 대선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영미는 유시영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너 참 대단해.”
화장실에서 돌아온 주은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자, 내가 피시방 쏠게.”
주은우가 오늘 망신을 당할 때로 당했으니 자신이 돈을 써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 했다.
“피시방은 무슨 피시방이야, 곧 수능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 주은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뭐야, 너 귀신에게 홀렸어? 유시영한테 거절당한 것 때문에 이 정도까지 할 필요 있어?”
진태용은 안타까운 듯 말했다. “네가 유시영과 같은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도 유시영은 네 고백을 받아주지 않을 거야.”
“유시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주은우는 글짓기 대선을 들고 진태용에게 말했다. ‘풍부하고 다채롭다’는 주제로 글짓기 한 편을 써. 몇 년 동안 이 주제가 수능에 나오지 않았으니 올해엔 반드시 출제될 거야. 어떻게 쓸 건지 미리 준비해.”
“헛소리, 반드시 출제되는지 어떻게 알아?”
“제빵기 걸고 내기할까.” 주은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태용은 그 눈빛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너랑 내기 안 해.”
그는 오늘 주은우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또 정확히 어디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주은우가 피시방에 같이 가지 않아 심심해진 진태용은 ‘글짓기 대선'을 펼쳤다.
“주은우, 나 영미랑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점심에 우리 둘 밥 좀 챙겨줘. 고마워, 주은우.” 유시영은 명령이라도 하듯 말하고 전영미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주은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주은우가 일어나자 진태용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가?”
“밥 먹으러 식당에.”
“너 바보야? 정말 유시영에게 밥을 가져다줄 거야? 걔가 너에게 돈을 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