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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같은 시각, 대연 별장. 육태준은 돌아온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불을 켜지 않았다. 그는 피곤해서 관자놀이를 누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놀라 깼다. ‘이상해!’ 그는 또 악몽을 꿨는데 역시 하채원에 관한 것이었다. 하채원이 죽는 꿈을 꾸다니, 게다가 정말 리얼했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새벽 4시였다. 육태준은 오늘이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나는 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오늘 함께 이혼 절차를 밟으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채원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이혼하러 가는 걸 잊지 마.] 문자를 받았을 때 하채원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육태준에게 힘겹게 답장을 썼다. [미안해요... 전 못 갈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린 반드시 헤어질 수 있어요...] 그녀가 죽으면 결혼도 자연히 무효가 된다. 육태준은 하채원의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채원이 어떻게 죽을 수 있겠어.’ 그녀가 죽음뿐이 아니라 자신과 이혼하는 것도 아까워한다고 생각한 육태준은 전화를 걸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하채원은 육태준의 전화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그는 늘 간단명료한 말로 문자메시지를 보냈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누른 하채원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육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채원,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네가 이혼한다고 했잖아. 지금 번복하는 거 내가 돈을 안 줘서 그런 거야? 또 결혼한다고 하던데 600억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어?” 하채원은 목이 메었다. 그녀는 갑자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하지 않은 일을 인정하기 싫어서 마지막 힘을 다 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태준 씨... 내가 당신이랑 결혼 한 건... 당신의 돈을 중요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지금 이혼하고 싶은 것도... 돈 때문이 아니에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나는 말해야겠어요... 애초에 우리 엄마와 동생이 계약을 어긴 일은 정말... 몰랐어요...” “지금도 600억을 위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거에요...” 그녀의 말은 띄엄띄엄했는데 육태준은 바람 소리가 심하고 빗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너 지금 어디야?” 하채원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휴대폰을 꼭 껴안고 변명만 이어갔다. “만약... 엄마와 동생이 한 일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당신 마음속에... 항상 배다은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우리 아빠가 내 결혼식 날... 교통사고가 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당신한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집가지 않았을 것이다! 육태준은 하채원의 말에서 그녀가 몇 년 동안 자신을 격렬하게 싫어했다는 것을 알아챘고 이 결혼을 얼마나 후회했는지도 알아챘다... 그는 목구멍이 갑자기 솜뭉치로 꽉 막힌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후회해? 애초에 네가 울면서 나한테 시집오려고 하지 않았어?” 육태준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뜻밖에도 쉬어 있었다. 하지만 하채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육태준은 그녀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채원! 너 지금 어디야?”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못 듣고 하채원의 마지막 한마디만 들려왔다. “사실... 나는 항상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랐어요.” 쿵! 휴대폰이 하채원 손에서 떨어지더니 빗물에 젖은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 ... 대산 별장. 육태준은 끊긴 전화를 보며 당황했다. 그가 전화를 걸었을 때 휴대폰에서 차가운 안내음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으니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육태준은 일어나서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칫했다. ‘하채원이 밀당 하는 거야. 우린 곧 이혼하는데 하채원이 무엇을 하는지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 침실로 돌아왔지만 그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하채원이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만약... 엄마와 동생이 한 일을 미리 알았다면 절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당신 마음속에... 항상 배다은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도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우리 아빠가 내 결혼식 날... 교통사고가 날 거라는 걸 알았다면... 당신한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육태준은 다시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하채원의 방 문 앞에 이르렀다. 하채원이 이곳을 떠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이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불을 켜자 하채원의 방은 개인 소지품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육태준은 앉아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서랍을 열었는데 안에 수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첩에는 한 마디만 적혀있었다. [누군가를 떠나려 결정할 때가 가장 힘든 것 같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몸부림 끝에 내린 결정일 테니.] 육태준은 예쁜 글씨체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힘들어? 너랑 함께한 시간 동안 난 힘들지 않은 줄 알아?” 그는 수첩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방을 나갈 때 다시 제대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 방을 떠난 후 그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 다른 곳. 차지욱은 잠을 설쳤다. 지난 며칠 동안 하채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딱히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새벽 4시가 넘었을 때 그는 장옥자의 전화를 받았다. “지욱아, 하채원 좀 보러 가 줄래? 나 방금 이상한 꿈을 꿨어.” “무슨 꿈인데요?” “하채원이 사고 난 꿈을 꾸었는데 비에 흠뻑 젖은 채 나를 찾아와 잊지 말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어.” 장옥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돼. 전화해도 받지 않아. 며칠 전 15일에 데리러 와달라고 했는데 뭔가 이상해...” 차지욱은 장옥자의 말을 들으며 요즘의 하채원이 떠올라 황급히 옷을 입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바로 찾아갈게요.” 두 집은 아주 가까웠는데 10분 후 차지욱이 달려가 방문을 열었을 때 안은 매우 조용했다. 하채원이 머물렀던 방은 문도 닫지 않은 채 텅 비어 있었다. 그녀가 안에 없다. 이럴 때, 그녀는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머리맡에 봉투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차지욱이 꺼내 열어보니 뜻밖에도 유언 두 장이었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그에게 주는 것이었다. “차지욱, 집세는 이미 너의 카드에 입금했어. 지난 며칠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 너 그거 알아? 단현시에 온 이후로 난 친구가 없었는데 널 다시 만나기 전에는 내가 너무 형편없어서 친구가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다행히 너를 다시 만났어. 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절대 슬퍼하지 마. 나는 단지 아빠를 뵈러 갈 뿐이고, 아빠는 나를 잘 돌봐 주실 거야.” 다른 유언장은 장옥자에게 남긴 것이었는데 마지막 줄에 장옥자에게 주소를 남긴 걸 발견했다. 순간 차지욱은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여기서 서쪽 교외까지는 멀지 않은데 차로 20여 분 거리였다. 하지만 차지욱은 오늘따라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는 한때 자신의 눈에서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길을 택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시간, 최미영도 서교로 향했다. 하지만 최미영은 그저 600억을 위해 하채원을 데리고 결혼하러 가려는 목적이었다... 서교 묘원.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하채원은 묘비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빗줄기가 그녀의 몸을 무자비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긴 치마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녀는 마치 한 포기 부평초처럼 순식간에 세상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 차지욱은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하채원을 향해 달려갔다. “하채원!” 바람 소리와 빗소리만 있을 뿐 차지욱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는데, 하채원을 안기 전에 그녀 옆에 있는 그 약병이 이미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지욱은 손을 떨며 하채원을 안았다. ‘어떻게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지?’ “하채원, 정신 차려. 자면 안 돼!” 그는 소리치면서 산 아래로 뛰어갔다. ... “사모님,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최미영이 창밖을 내다보니 낯선 남자가 눈에 띄었는데 품에... 하채원을 안고 있는듯했다. “하채원!” 그녀는 눈썹을 찌푸린 채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 최미영은 빨간색 치마를 입었는데 빗물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물들였다. 최미영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달려들며 하채원에게 따져 물으려 했지만 순간 하채원이 창백한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차지욱의 품에 몸을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멍하니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채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려던 최미영의 눈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약병 위로 향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약병을 주워들고 나서야 약병에 적힌 ‘수면제’라는 커다란 글자를 보았다. 순간, 최미영은 하채원이 엊그제 한 말이 생각났다. “만약 제가 목숨을 돌려드리면 당신은 더는 저의 엄마가 아니니 저를 낳아준 은혜를 갚지 않아도 되죠?” 최미영이 들고 있던 우산이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약병을 움켜쥐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채원을 노려보았는데 눈시울은 비에 젖었는지 눈물에 젖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쁜X! 네가 어떻게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어? 네 목숨은 내가 준 거잖아!” 그녀의 빨간 입술이 떨려왔다. 차 안에 있던 하천우는 어머니가 비를 맞으며 묘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급히 달려온 후 눈앞에 벌어진 일에 깜짝 놀랐다. 그는 누나 하채원이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정신을 차린 그는 당황해하며 중얼거렸다. “엄마, 어떻게 해요? 이 대표님의 돈은 제가 모두 가지고 가서 새 회사를 차렸잖아요.” 그 말을 듣고서야 차지욱은 비로소 밝고 강인한 하채원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최미영은 주먹을 꽉 쥐더니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왜 시집간 뒤에 죽지 않은 거야. 왜?” 차지욱은 더는 들을 수 없어 눈시울이 붉어진 채 모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꺼져!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최미영과 하천우는 그제야 육태준에 지지 않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이 남자를 주의했다. “누구세요?” 하천우가 다가왔다. “이 여자는 제 누나인데 당신이 왜 우리에게 꺼지라고 해요?” 말을 마친 그는 또 최미영을 향해 말했다. “엄마. 방금 이 대표 쪽 사람이 재촉하러 왔는데 누나를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끝장이에요.” 이 말을 들은 최미영은 차츰 냉정한 표정을 짓더니 독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차에 태워. 죽더라도 결혼식은 끝내고 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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