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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강아영 씨... 3년이나 지났지만 역시나 날 아내로 생각하지 않는 거구나.’ 서지훈의 눈동자를 잠식한 증오를 확인한 순간 강아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브로치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아영은 착잡한 마음에 갓길에 차를 세웠다. 맞은편 건물의 대형 광고판에 [서지훈 대표 디자이너 Dylan이 아내에게 주었던 프러포즈 선물 브로치를 40억에 낙찰받아, 애인 이지원과 결혼 임박?]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이름이 이지원이었구나...’ 영상속 이지원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서지훈을 꼭 끌어안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인 서지훈 역시 싱긋 미소 지으며 이지원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이었다. 항상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강아영에겐 그런 눈빛이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강아영은 스크린에 비치는 서지훈의 얼굴은 처음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멋진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시리기만 했다. ‘그 브로치로 프러포즈를 할 생각이었어? 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프러포즈 선물이 남편과 세컨드의 프러포즌 선물로 쓰이다니. 강아영, 네 인생 어쩌다 이렇게 꼬인 거냐...’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서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역시나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 브로치만 돌려주면 이혼해 줄게요.” “...” 잠깐 침묵을 유지하던 서지훈은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강아영은 괜히 더 미움을 살까 싶어 차마 다시 걸지도 못했다. ... 서지훈은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함게 살았어야 했을 신혼집은 강아영의 손길로 아늑하게 꾸며진 모습이었지만 그에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거실에 들어서니 가정부가 그를 맞이했다. “사모님 어제 밤새 거실 소파에 앉아계시다 방금 전에 침실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서지훈은 운전 기사더러 캐리어를 거실에 두라고 말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열린 침실 문 사이로 깔끔하게 배치된 방 안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와 똑같은 차림의 강아영이 책장 위의 책을 상자에 넣고 있었다. 인기척을 들은 강아영이 고개를 들었지만 서지훈의 얼굴을 확인했음에도 표정에는 그 어떤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색한 침묵에 질린 건지 타이를 풀어헤친 서지훈이 먼저 돌아섰다. 보통의 룸메이트보다 더 어색한 부부 사이라니, 세상에 이런 웃긴 경우가 있나 싶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지훈과 이지원 불륜 커플에 대한 뉴스 때문에 강씨 가문의 체면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해명 한마디 하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난 소중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난 저 사람이 원한 아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거겠지...’ 3년 전, 서씨 가문이 강씨 가문에게 큰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무슨 대가를 원하냐는 말에 강아영은 서지훈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고 그의 가족들은 정말로 애인이 있던 서지훈을 내주었다. ‘멀쩡히 잘 사귀는 사람을 떨어트려놨으니 이것도 벌이라면 벌이겠지.’ 3년 전, 서지훈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 사랑하는 사람 있어. 강씨 가문에 대한 은혜는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갚을게.”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강아영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니요, 서지훈 씨. 내가 원하는 건 당신뿐이에요.” 만약 지금이었다면 그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싶은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 강아영이 모든 짐 정리를 끝내고 차로 옮겨달라 고용인들에게 부탁할 때쯤에야 서지훈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녀를 지나쳐 거실 소파에 앉은 그가 물었다. “어디 가?” 목소리에 강아영은 고개를 돌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이 꼭 맞는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지원의 것이 분명한 낯선 향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와 그녀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이혼 협의서는 내가 변호사한테 따로 연락할게요.” 하지만 담배를 만지작거리던 서지훈의 대답은 꽤 의외였다. “아직도 투정이야?” ‘투정? 내가 지금 투정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혼이고 뭐고 그냥 다 해본 말이고 내가 지금 브로치 때문에 삐쳐서 이런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픽 웃던 강아영이 대답했다. “3년 전에 당신도 이렇게 답답한 마음이었겠네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의 말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서지훈의 손이 멈칫했다. 촉촉해진 눈가와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 서지훈은 살짝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강아영은 홱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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