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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장

“사실 제 마음도... 많이 식었어요.” 차마 이젠 더 이상 강한성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도 그녀 자신의 마음도 속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금 네 표정이 어떤 줄 알아?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을 해.” 강주호의 말에 서러움이 북받친 임서우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급하게 돌아서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진심이에요. 저도 이제 지쳤어요.” “아이고.” 침대에 도로 앉은 강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강하성에겐 형이 하나 있지만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자랐기에 강주호가 곁에 두고 키운 손자는 강하성뿐이었다. 강하성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란 게 자기 자신의 부덕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 하성이 착한 아이인데... 사랑은 노력으로 안 되는 건가?’ “서우야.” 강주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할아버지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 생각하고 좀 더 있어주면 안 되겠니? 그렇게 해도 하성이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그땐 이 할아버지도 포기하마.” “할아버님...” 임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도 내 친손녀나 다름없는 아이야. 우리 하성이한테 좋은 짝을 찾아주고 싶은 욕심에 멀쩡한 네 청춘을 갈아넣을 수 없잖니?” “할아버님!” 참고 참던 눈물이 드디어 와르르 쏟아졌다. “저랑 하성 씨 사이가 어떻게 되든 할아버님과 제 사이는 변치 않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까 참 고맙구나.” 강주호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말은 그렇게 해도 꽤 충격이 컸는지 강주호는 그날 오후부터 알아눕기 시작했고 임서우는 자기 방에서 그림 작업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아. 할아버님은 우리 이혼을 원하지 않으신다는걸. 하지만... 내가 하성 씨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저녁즈음, 1층에서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온 임서우는 그제야 박정원이 말했던 손님이 임예지임을 알아챘다. 임예지 역시 그녀를 발견하곤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임서우가 왜 여기 있어?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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