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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너무 갑작스러운 변고에 이연아도 몹시 놀랐다.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임서우의 앞에 나서서 가로막았다. “이봐요 장하영 씨,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요. 과격한 행위는 자제해주시죠? 계속 더 공격하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사무실 전체 사람들이 인기척을 듣고 귀빈실 밖에 몰려들었다. 장하영은 차갑게 웃으며 쏘아붙였다. “당신들 브레인은 국내 최상위가 아닌가요? 어떻게 이런 카피이스트 디자이너를 둘 수 있죠?” 이연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임서우를 째려봤다. “하영 씨가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서우 디자이너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한때 실수를 범한 적은 있어요. 그렇지만 오늘 드린 이 몇 개의 견본 원고는 맹세코 아무 문제도 없고 품질 또한 매우 높다고 보장하는 바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요?” 장하영이 목청을 높였다. “당신이 문제없다면 없는 게 돼요?” 그녀는 임서우에게 삿대질했다. “잘 들어요. 나 이 원고들 전에 본 적 있어요.” 임서우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말도 안 돼요!” 이연아도 어이없어서 재차 확인했다. “하영 씨 방금 뭐라고요?” “전에 똑같은 설계도를 봤었다고요!” 장하영은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국내 최상위 회사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다니. 소송당할 준비나 해요!” 그녀는 임서우를 밀치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임서우는 바닥에 넘어진 채 넋을 놓고 말았다. ‘이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그녀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이 몇 개의 견본 원고는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이지 절대 그 누구의 것을 표절한 적이 없다. 이연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재빨리 쫓아가 장하영에게 사과드렸다. “정말 너무 죄송해요 하영 씨. 이번 일은 진상이 밝혀지는 대로 합리한 해명을 드릴게요.” “진상이라니요?” 장하영이 표독스럽게 되물었다. “조사하긴 뭘 더 조사해요? 내가 속일까 봐서요?” 그녀는 임서우를 향해 침을 내뱉었다. “이딴 저질스러운 것들만 회사에 남겨두면 조만간 회사 망할 겁니다.” 장하영은 기고만장하게 자리를 떠났다. 이연아는 화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녀조차 임서우를 칭찬할 뻔했으니까. 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일일까? 그녀는 귀빈실로 돌아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임서우를 향해 소리 질렀다. “꺼져! 당장 물건 챙겨서 꺼지란 말이야!” “저 아니에요. 매니저님 저 진짜 아니에요.” 임서우는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서우 씨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서우 씨 언니처럼 본인을 챙겨주면서 몇 번이고 표절하는 걸 눈감아줄 것 같아요?” 임서우는 끊임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정말 억울했다. “임서우 씨 오늘부로 해고예요. 이 업계에서 가장 경멸하는 것이 바로 카피이스트에요. 그러니까 일찌감치 이 바닥에서 꺼져요!” 임서우는 자신이 어떻게 브레인에서 나왔는지 생각조차 안 났다. 아무도 그녀를 안 믿어주고 모든 이가 그녀를 얕잡아봤다. 월세방에 돌아온 후 그녀는 김은아를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은아야,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거야? 왜 다들 나 안 믿어?” “난 단 한 번도 표절한 적 없는데 왜 다들 안 믿냐고?” 김은아는 화나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네 탓 아니야. 그 인간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널 몰라본 거야.” “너희 회사 사람들 죄다 머리가 고장 난 것 같아. 하나같이 지능이 떨어지네.” “서우야, 임예지한테 전화해보는 건 어때? 걔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게다가 어쨌든 팀장이니까 말하는 데 무게감이 있을 거 아니야?” 이건 임서우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녀는 곧바로 임예지에게 전화해 일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임예지도 몹시 놀라 하며 임서우를 다독여준 후 자신이 꼭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화를 끊고 임예지는 어느 한 계좌로 2천만 원을 이체하며 문자까지 덧붙였다. [아주 잘했어요.] 다른 한편, 임서우는 줄곧 이번 일을 되새겼다. 그녀는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이 매니저는 왜 내가 몇 번이고 계속 표절한다고 했지?” “서우야.” 김은아도 이상할 따름이었다. “네가 전에 견본 원고를 줄 때도 이 매니저가 줄곧 화냈었다며? 혹시... 네가 다 표절한 거라고 여긴 걸까?” “안 되겠어.” 임서우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똑똑히 짚고 넘어가야 해.” 그녀는 이렇게 억울하게 직업을 잃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임서우는 이연아에게 카톡을 보냈다. [매니저님, 오늘 일은 반드시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저는 그 누구도 표절한 적 없어요.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는 더더욱 없었어요.] 다만 문자를 전송한 순간 이미 삭제당한 걸 알아챘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에 차단당한 것 같았다. “서우야.” 김은아가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물었다. “내 전화로 해볼래?” 임서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연아는 지금 한창 화내고 있을 테니 그녀가 다른 번호로 전화한 걸 알면 변명할 기회도 없이 바로 끊어버릴 것이다. “내일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릴래.” “그래, 그럼!” 다음 날 아침 임서우는 일찌감치 출발하여 회사 입구에서 이연아를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서 낯익은 사람이 택시를 잡는 걸 발견했다. “기사님, 잠깐 세워주세요.” 상대는 바로 어제 그 고객 장하영이었다. 다만 어제처럼 온몸에 명품으로 치장한 것과 달리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임서우가 알기로 브레인의 오더는 4천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 지금 눈앞의 장하영 따위가 감당할 금액이 절대 아니었다. 장하영이 택시를 타고 떠나자 임서우는 이를 악물고 기사에게 따라가라고 부탁했다. 표절 따위 존재하지 않으니 분명 장하영이 그녀를 모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서로 모르잖아.’ 대략 한 시간 후 차가 드디어 멈춰 섰다. 임서우가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펼쳐진 건 낡고 초라한 아파트 단지였다. ‘장하영이 여기 사는 걸까?’ 그녀는 순간 장하영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는 추측에 더 확신이 갔다. “장하영 씨!” 임서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장하영은 고개를 돌리고 임서우를 본 순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는 그쪽 몰라요.” 그녀는 돌아서서 도망치려 했다. “거기 서요 장하영 씨!” 임서우가 쫓아오며 그녀를 붙잡았다. “왜 날 모함했어요?”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장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우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모른다고요?” 임서우는 그녀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경찰서 가면 알게 될 겁니다.” “놔요. 이거 놓으라고요!” 장하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어떤 여자가 저한테 2천만 원을 줬어요.” 임서우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뭐라고요?” “어떤 여자가 저를 찾아와서 2천만 원도 주고 명품 옷도 두 세트 사주면서 한 번 연기하라고 했어요.” “그 여자가 저더러 어제 그 회사에 가서... 견본 원고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하라고 했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임서우는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 “이거 놔요. 경찰서 안 가요.” “안 가도 돼요. 그럼 나랑 브레인에 가서 우리 매니저님께 똑바로 얘기해요.” “싫어요. 안 가요.” 장하영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 끌고 가도 소용없어요. 절대 당신을 위해서 증언하지 않을 테니까.” 임서우는 치가 떨려 이를 악물었다. “그래요, 그럼. 대신 하영 씨에게 그런 일을 시킨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만 말해줘요.” “아주 예뻤어요.” 임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서 그녀에게 보여줬다. “자세히 봐봐요. 혹시 이 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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