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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임서우가 떠난 후 강하성은 점점 더 짜증 났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마음속 깊이 원인 모를 울화가 치밀었다. 임예지는 자리에 앉더니 강하성에게 바짝 기댄 채 거침없이 몸을 비벼댔다. “하성아, 이혼 수속 얼른 해야지.” “이모가 그러는데 벌써 서우 선 자리 알아보고 계신대. 서우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그녀는 말하면서 강하성의 반응을 살폈다. 강하성은 업무가 바빠서 이혼이 시급하진 않겠지만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오늘 밤 그와 관계를 맺어야 당당하게 강하성에게 이혼을 다그칠 수 있다. 강하성은 머리가 너무 아프고 가슴의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흘러 당장이라도 불타오를 것 같았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1년 전 그 광경이 스쳤다. 강하성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또 당했어!’ 그는 탁자 위의 음료를 바라보며 임서우를 천한 년이라고 욕했다. ‘이번엔 무슨 수작인데?’ ‘외도를 빌미로 우리 집안에서 큰돈을 뜯어내려고?’ 강하성은 울화가 치밀어 옆에 찰싹 들러붙은 임예지를 뿌리치고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임예지는 화들짝 놀라더니 체면을 무릅쓰고 앞으로 달려가 그를 덥석 안았다. “하성아 가지 마.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 강하성은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의 끈을 잡고 애써 자제하며 임예지의 손을 뿌리쳤다. “나 지금 제정신 아니야. 이건 너한테 불공평해.” 말을 마친 강하성은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연회장을 나서자마자 그는 육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서우 맨 위층으로 불러와.” 육 비서가 미처 질문하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꺼버렸다. ‘무슨 상황이지?’ ‘대표님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한데?’ ‘임서우라면 사모님? 지금 어디 계실 줄 알고?!’ 육정인이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임서우가 마침 PJ 호텔 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얼른 차에서 내려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저더러 맨 위층에요?” 임서우도 의아할 따름이었다. “네. 엄청 급한 일인 것 같아요.” 육정인도 덩달아 조급해졌다. “얼른 가보세요 사모님.” “...” 임서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하성 씨가 서류에 사인하고 이혼 수속하는 일로 부른 거야?’ 그녀는 의문만 한가득 품은 채 육정인에게 떠밀려 맨 위층으로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다. PJ 호텔 맨 위층은 초호화 로얄 스위트룸으로 되어 있다. 임서우가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슬쩍 밀어보았는데 뜻밖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하성 씨? 나 들어가요?” 그녀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문에 짓눌리고 말았다. 강하성은 탄탄하면서도 뜨거운 몸으로 그녀를 철통같이 가두었다. 깜짝 놀란 임서우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순간 그의 입술에 뒤덮였다. “읍!” 그녀는 초조하고 두려운지라 눈물을 찔끔 흘리더니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서 그를 꼭 깨물었다. 강하성은 밀려오는 고통에 잠시 말랑말랑한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눈앞에 나타난 강하성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자 더 괴로워하며 울먹거렸다. “하성 씨 미쳤어요? 내가 누군지는 알아요?” 강하성은 두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힘껏 들어 올렸다. 임서우는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밀쳤다. “이거 놔요.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너 이러려고 내 음료수에 약 탔잖아?” 강하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또 한 번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아니... 아니에요. 나 아니라고요...” 임서우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녀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 범할 리가 없다. 강하성은 다시 그녀를 놓아주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아니더라도 지금 나더러 이 상태로 누굴 찾아가라는 건데?” “우린 아직 이혼 안 했고 넌 여전히 내 아내야. 그러니까 아내의 의무를 지켜.” “착하지. 금방이면 돼.” 그는 임서우의 말을 아예 안 믿지만 현재로서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녀가 얌전히 맞춰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 다 끝난 후 임서우는 어느덧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깨어나 보니 온몸이 차에 짓눌린 것처럼 아팠다. 몸 곳곳에 남긴 검붉은 자국은 어젯밤 이 남자가 얼마나 미쳐 발광했는지 증명해주고 있었다. 전에 있은 그 두 번보다 더 거셌다. ‘어제 약이 그토록 효과가 컸다고?’ 임서우는 겨우 자리에 앉아 침대 머리맡에 놓인 서류 한 부를 발견했다. [이혼합의서]라는 다섯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 순간 자신이 마치 쓰다 버린 걸레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서류를 가져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인을 마쳤고 그녀에게 차려진 재산은 일 전 한 푼도 없었다. 서서히 번져가는 서러움에 그녀는 어쩔 바를 몰랐다. 설마 마음속 깊이 여전히 이 결혼에 대해 기대를 품었었을까? 임서우는 저 자신이 점점 가여울 따름이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자 이연아에게 견본 원고를 드리는 날이다. 임서우는 간단히 정리를 마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1층 로비에서 임예지를 마주쳤다. 어젯밤에 뜨겁게 침대를 뒹굴었던 장면이 또다시 뇌리를 스치자 임서우는 순간 너무 창피해서 임예지를 마주할 면목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른 사라지고 싶었다. “서우야!” 임예지는 당연히 일찌감치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임예지는 질투심이 폭발할 것 같았다. 임서우는 옷깃을 여미며 목에 찍힌 키스 마크를 최대한 감추려 했다. 이때 임예지가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기더니 갑자기 품에 끌어안았다. “서우야, 많이 서운했지?” 임서우는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 걔네들이 하성의 음료수에 약을 탔나 봐.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 너희 방에 찾아간 것도 하성이가 약물 효과로 널 해칠까 봐서...” 임서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진짜 미안해. 하성이를 원래 내 옆에 남겨두려 했어. 우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이딴 거 신경 안 쓰거든. 근데 하성이가 기어코 안 된다면서 우리 첫날밤은 무조건 신혼 첫날로 남겨둬야 한다는 거야.” 임서우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녀는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강하성에게 본인은 단지 약물을 해독하는 도구일 뿐, 임예지야말로 소중히 다루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임예지는 임서우를 풀어주며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정말 미안해, 서우야. 우리가 나중에 꼭 제대로 보상해줄게.” 임서우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이에 임예지가 또다시 쫓아왔다. “회사 가게? 같이 가.” 임서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집에 가서 물건 좀 챙겨야 해. 며칠 전에 매니저님이 오더를 내려주셨는데 오늘이 마감이거든.” “그래.” 임예지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택시 타고 가려면 지각하겠는데?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그리고 같이 회사로 가.” 임서우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임예지가 거절할 틈을 안 줬다. “이렇게나마 보상해주고 싶어서 그래.” 임서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서 임예지는 재차 오더에 관해 여쭸다. 임서우가 디자인 원고를 챙기고 차에 돌아오자 그녀가 또다시 궁금한 듯 물었다. “서우야, 설계도 봐도 돼?” “지난번에 고객님이 네 설계도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하던데, 한 번 봐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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