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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두 손을 만져보니 조금 따갑다.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직접 끓인 물을 가져온 박민혁은 수건을 물에 집어넣었다. 물이 너무 뜨거워서 손을 아래로 뻗을 때마다 몇 번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는 하나씩 던져졌던 수건들을 다시 건져 물기를 짜냈다. 그의 손이 금세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거듭하여 그녀를 닦아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왜 으스대지 않아? 진영이네한테 죽 안 끓여줘?" “응? 앞으로 나한테 보양죽도 안 해 줄 거지? 어제 내 돈 엄청 퍼주고 매장을 사들였더구먼, 내가 모를 줄 알아?” "양심도 없는 놈!" 너무 시끄러워...... 귓가에 파리 한 마리가 계속 윙윙거리는 것 같았고, 김수지는 손을 뻗어 쳐내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계속 침대에서 몸을 비틀며 이로써 자신의 불만을 나타내야만 했다. “말 안 듣네!”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녀의 움직임에 놀란 박민혁은 그녀가 이불을 들썩이는 와중에 찬 기운 때문에 감기가 더 심해질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김수지는 여전히 몸을 아무렇게나 비틀며 입으로 뭔가를 흥흥거렸다. 보랏빛 침대 시트에 깔려있는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눈보다 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특히 지금 이 순간에도 약간 불그스름한 작은 얼굴은 마치 통통한 하트처럼 보였다. 아픈 그녀를 보는 와중에 박민혁은 생리적인 반응이 생겼다, 그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면. 박민혁은 뜨거워서 빨개진 자신의 손을 힐끗 보더니 아예 수건을 집어던지고는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엉덩이를 찾아 호되게 한 번 두드렸다. “왜 말 안 들어!” 이 수가 과연 먹혀들었다. 김수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입으로도 끙끙거리지 않았으며, 꾸지람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녀가 조용해진 것을 보고 박민혁은 이에 만족하며 그녀를 몇 번 더 천천히 닦아주는데 김수지의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는 더 이상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으며 침대 옆에 앉아 변우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젯밤에 안소희랑 병원에 가느라고 들볶더니 살짝 감기 걸렸나 봐." 변우빈이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박민혁에게 말했다. "하지만 간호는 잘 하셨네. 지금 서서히 열이 내리고 있으니 당분간 약 먹지 않아도 되겠어."그러면서 변우빈은 면봉 한 통을 박민혁에게 던졌다."이것으로 입술 많이 적셔줘. 갈라 터지지 않게." "혈액검사는 따로 필요하지 않아?" "필요 없어." 지금 이 시각 변우빈은 거울이라도 가져다가 박민혁 본인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박력 있고 결단력 있던 세한그룹 회장 모습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 지금의 그의 모습을. 그 표정과 자태, 그 또한 애인을 걱정하는 평범한 남자임이 분명했다. "믿지 못하면서, 왜 굳이 홈닥터 놔두고 나를 부른 거야?" "의술이 더 뛰어나니까." 속마음이 찔린 박민혁이 대충 대답했다. 변우빈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냥 감기야. 이 사람아." "이게 다 안소희 탓이야." 그 순간 변우빈이 침묵했다. 끝내 한 판을 뒤집은 박민혁, 면봉을 받은 후 지난 일을 들추어냈다. "어젯밤엔 왜 나를 속인 거야?" 변우빈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가져온 의료용 키트를 메더니 박민혁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어젯밤에 내 전화를 받았을 때, 긴장했어?" 긴장...... 당연히 긴장했지. "필경 한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데." 변우빈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노답이네.” "무슨 뜻이야?" 박민혁이 변우빈을 막아 나섰다. "내 말 틀렸어? 복통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고, 열이 나도 사람이 죽을 수 있어. 많은 심각한 질병들 또한 작은 증상에서 시작되잖아, 안 그래?" "계속 스스로를 속일 거라면, 내가 말하지 않은 걸로 해." 변우빈은 두 손 들어 항복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이혼하면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는 자신의 절친이 슬픔에 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김수연......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변우빈!" 박민혁은 안색이 일그러지더니 살벌하고 서릿발이 선 표정으로 바뀌었다. 농담은 허락하지만 변우빈의 막말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니까. "수연이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 걸 분명히 알고 있잖아. 수연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거란 말이야." 그의 턱은 마치도 칼로 깎인 듯 날카로움을 드러냈다. "수연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찜한 사람이야. 너한테서 다시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그래." 변우빈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수연인 제쳐놓고, 수지는? 생각해 본 적 있어? 만약 언젠가 수지가 자신의 결혼 생활이 수연에 대한 너의 분노에서 시작되어, 수연에 대한 너의 사랑으로 끝났고, 자신은 고작 총알받이 대역이었던 걸 알게 된다면, 수지가 느끼게 될 감정 따윈 생각해 봤냐고. 게다가 수지와 수연이, 복잡한 집안이잖아......" "너 왜 갑자기 수지한테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야?" 짙은 먹물처럼 까만 박민혁의 눈동자로부터 강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변우빈: "......" 변우빈은 더 이상 박민혁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후회하지 않으면 돼."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의료용 키트를 메고 박민혁의 집을 떠났다. "밑도 끝도 없이."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박민혁이 다시 손을 뻗어 김수지의 엉덩이를 한 번 툭 쳤다. "여기저기 시시덕거리며 다니더니, 이젠 변우빈까지 너한테 신경 쓰게 만들었구나." 비몽사몽 잠든 김수지는 마치도 채찍이 계속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가 난 그녀가 이를 악물고 꽉 잡아보려고 하지만 손을 좀처럼 들 수가 없었다. 너무 무거워...... 마치 물에 젖은 것처럼 온몸이 무거워서 숨이 거의 막힐 지경이다. 그녀는 억지로 눈을 크게 뜨느라 노력했고 눈 틈새로 침대 옆에 앉아있는 박민혁이 보였다. "힘...... 힘......" 힘들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민혁의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요란하게 울렸다. 박민혁의 세컨드폰이었고 예전에는 김수지만이 그에게 연락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한 사람이 더 있는 것 같았다. 김수지는 신경 쓰지 않고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까지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김수지는 보고 있는 몇 초 만으로도 굉장히 힘들었고, 코는 마치 숯불을 피운 것처럼 숨을 쉬는 게 고문과도 같았다. 그리고 엉덩이도...... 왠지 모르게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쨌든 온몸에 편한 곳 하나 없었으며 그녀 또한 자신이 아프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금 임신 중이니 방심할 수가 없었기에 애를 써가며 다시 눈을 떠서 박민혁을 부르려고 했다. 의사를 불러달라고. "이제 막 몸이 회복되었는데, 찬 걸 그렇게 많이 먹으면 어떡해!" 박민혁은 전화에 대고 화를 내는 한편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조금만 참아, 금방 갈 테니." 아마도 그 여자도 아프나 보네...... 하지만 지금 김수지한테도 특히나 박민혁이 필요했다. 그녀는 납덩이같은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민혁 씨......"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애걸의 신호를 보냈다. "가지...... 가지 말아요...... 제발요......" 그들의 아기한테 정말로 박민혁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박민혁은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단호하게 걸어나가버렸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김수지는 조금씩 사라지는 박민혁의 모습을 눈을 뻔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공포와 분노가 그녀를 엄습해왔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어렴풋이 그녀는 딸깍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가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는 그제야 안심하고 잠들었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병원이었다. 그리고 박민혁의 손이 그녀의 아랫배 위에 떨어져 있었다, 바로 아기를 잉태한 그곳에! 남자의 손끝 힘을 느낀 김수지가 살짝 놀라더니 갑자기 온몸의 신경이 긴장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임신한 배를 숨기려고 몸을 움츠렸지만, 박민혁의 손이 그녀를 덥석 잡아버렸다! 박민혁이 그녀를 내려다보는데, 음흉하고 차갑게 그녀를 쳐다보는 그 눈빛은 마치도 벌써 오랫동안 지켜본 느낌이며 억지로 그녀의 몸에 구멍이라도 뚫을 기세다. 차츰 그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아랫배에 정확히 닿았고, 그러고 나서 계속 힘을 주더니, 아래로 힘차게 눌렀다! 임신한 배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순식간에 천지가 뒤바뀌었다! 김수지는 겁에 질려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미처 말도 꺼내기 전에 박민혁이 말을 잘라버렸다. 그녀를 침착하게 쳐다보는 그의 눈은 매서움으로 가득했다. "수지야, 너 임신했어." 다음 순간 모든 것이 다 짜인 것처럼 그가 손을 휘두르자 수많은 의사들이 들어와 그녀를 둘러쌌다. 위험한 기운이 내리 드리워졌고 공포가 조수처럼 밀려왔다. 반박조차 잊은 채 생존 본능만 남은 김수지는 겁에 질려 박민혁에게 소리 지르며 다급하게 설명했다. "박민혁, 민...... 민혁 씨! 우리 아이라고요! 우리의 보......" "닥쳐!" 혐오감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며 잘생긴 남자의 이목구비를 일그러뜨렸다. 그는 마치 삶과 죽음의 고삐를 쥐고 있는 염라대왕처럼 세상에서 가장 극한의 냉랭함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의사와 김수지를 향해 최후의 통첩을 내렸으며 다시 손가락을 그녀의 아랫배에 대고 더 세게 누르면서 말했다. "이 아이, 반드시 죽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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