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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부소경도 경악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신세희의 몸에는 아무것도 걸쳐있지 않았다. 방금 목욕을 끝내서인지 그녀의 피부에서 핑크빛이 돌고 있었다. 촉촉이 젖은 단발머리는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고 손바닥만 한 얼굴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체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황급히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나약해 보였다. 부소경도 많은 옷을 걸치고 있지는 않았다. 힘차고 곧은 근육에 구릿빛 피부, 넓은 어깨와 얇은 허리, 강철처럼 팽팽한 오른팔에는 눈을 사로잡는 흉터가 나 있었다. 그의 몸은 부소경의 남성적인 패기와 압박감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었다. 부소경의 흉터를 본 신세희는 깜짝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의 심장이 복잡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낱낱이 드러난 자신의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자신의 몸을 가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려도 다 가려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전전긍긍해 하며 가운을 가지려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당신… 당신 안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요? 당신이… 어떻게 왔어요?” 그녀의 입술은 덜덜 떨렸고 얼굴은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드디어 가운을 손에 잡아 겨우 몸에 걸쳤다. 하지만 가운은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었다. 신세희는 그제야 자신이 입은 가운이 남자용 가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척이나 크고 길었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가운을 몸에 감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긴장하면 일이 더 꼬인다는 말이 있던가? 바닥에 끌리는 가운을 밟아버린 그녀는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아…” 신세희는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부소경은 팔을 들어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덕분에 그녀는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남자는 가볍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놀란 신세희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놓아줘요… 흑흑.” 그 소리에 부소경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 “젠장!” 그는 작게 욕을 하더니 수건을 들어 신세희를 칭칭 감았다. 그는 그녀를 들춰 안더니 방문을 열어 그녀를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부소경은 그대로 욕실로 걸어가더니 자신의 몸에 미친 듯이 찬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방안, 신세희는 침대에 움츠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왜 그의 손길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지? 신세희, 너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 너 진짜 뻔뻔하다! 부소경이 널 얼마나 싫어하는데, 너처럼 임신까지 한 전과자가 눈에 차기나 하겠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히지 않게 조심해! 그녀는 흐릿한 정신상태로 방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그녀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메모를 하나 남겼다. 그녀의 필체는 저번처럼 날카롭고 단정했다. ‘부소경씨, 미안해요. 나는 당신이 여기 안 올 줄 알았거든요. 미안해요, 어제 욕실에서 당신 불편하게 해서. 이미 지난 일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할 테니까 당신도 아무 일 없었던 걸로 해줘요.” 메모를 다 남긴 후, 신세희는 하숙민을 보러 병원으로 출발했다. 오늘 아침 그녀는 진씨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신세희는 이 모든 게 하숙민이 벌인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숙민은 둘 사이의 감정이 빠르게 무르익어가길 바랬다. 그녀는 병실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하숙민의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세희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오늘은 침대에서 푹 쉬어야지.” 신세희는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머님… 그만 하세요.” “나한테만 말해봐. 어젯밤 행복했어?” 하숙민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숙민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하숙민은 그녀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네가 소경이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아? 엄마는 꼭 너희한테 화려한 결혼식을 만들어줄 거야…” “감사해요, 어머님.” 비록 연기이긴 했지만 신세희는 여전히 하숙민의 마음이 고마웠다. 하숙민은 진심으로 신세희에게 럭셔리한 삶을 주고 싶어 했다. 오전 내내, 신세희는 하숙민의 병실에서 하숙민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하숙민과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다. 몸이 불편했던 하숙민은 그녀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다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하숙민이 잠에 든 걸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을 떠났다.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길거리를 거닐던 그녀는 버스정류장에 광고판 사이에 끼워져 있던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건축 디자이너 구합니다.’ 신세희는 건축학과를 전공했다. 대학교 2학년때 교도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학업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숙민도 수준 높은 건축 디자이너였다. 그녀가 감옥에서 하숙민과 사이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감옥에서 심심할 때마다 두 사람은 건축에 대해서 연구했다.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학력이 없었다. 출소한 지 얼마 안 된데다 임신까지 했는데… 뽑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신세희는 종이에 설계도 몇 개를 그린 후, 인쇄소에 찾아가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이메일로 이력서를 넣었다. 일을 다 끝내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신세희.” 의기양양한 임서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신세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 임서아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사는 데도 알아내는데, 네 전화번호 하나 모르겠어?” “무슨 일인데!” 신세희가 물었다. “어제는 내가 미안했어.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어. 오후 네, 다섯 시쯤에 너네 엄마 사진 가지러 와!” 어쩌다 임서아가 우호적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 그녀는 갑작스레 변한 임서아의 태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빨리 엄마의 사진을 가져오고 싶었다. 오후 네, 다섯 시쯤 신세희는 임씨 저택으로 출발했다. 집안에 들어선 그녀는 무표정으로 이 집의 안주인인 허영을 쳐다보았다. “우리 엄마 사진은요? 빨리 주세요. 받으면 바로 갈게요.” “세희야, 뭐가 그렇게 급해?” 허영의 태도는 무척이나 친절했다. “어쩌다 왔는데 좀 앉아.” “죄송한데, 그건 됐어요.” 신세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머!” 허영은 괴상한 말투로 말했다. “이제 다 컸다 그거야? 8년이나 거둬준 집에서 잠깐 앉았다 가는 것도 싫어? 이제 우리 집 도움이 필요 없나 보지? 비빌 언덕이라도 생긴 거야?” “맞아요! 당신네 집보다 백배 더 잘나가는 남자 하나 찾았거든요. 나중에 제가 이 집에 도움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신세희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허영을 쳐다보았다. “…” 허영은 이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세희 언니 기세가 엄청나네? 그 부자 남편 우리한테도 좀 소개해주는 거 어때?” 문 앞에서 임서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세희는 고개를 돌렸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임서아였고, 남자는… 부소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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