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부소경씨, 얼마 전에 나한테 예쁜 옷 많이 사줬잖아요. 나 그렇게 예쁜 옷, 살면서 처음 입어봤어요. 그리고 또 비싼 컴퓨터도 사주고… 어떻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돈이 없어요. 빈털터리거든요. 돈이 엄청 많다고 해도 당신의 취향에 맞는 선물 고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평소에 입는 정장들 아마 천만 원도 넘는 옷들이겠죠? 천만 원이면 내 1년 치 월급인 거 알아요? 그래서 작고 볼품없는 물건들로 당신의 환심을 좀 사려고요. 이 담배 필터, 색상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당신처럼 성숙하고 권위 있는 남자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네요. 마음에 안 들면 꼭 나한테 알려줘요. 다른 걸로 바꿔 줄게요.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당신 담배 피는 거 엄청 좋아하잖아요. 담배 연기 맡으면서 담배 피는 걸 또 유독 좋아하죠. 그거 폐에 엄청 안 좋은 거 알아요? 그러면 니코틴이 폐에 더 많이 흡수되거든요. 그래서 샀어요. 이 담배 필터가 당신의 몸을 보호해줄 거예요. 당신 엄청 건강하고 강한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몸 잘 챙겨요. -신세희’
마지막 줄에는 웃는 얼굴의 태양 이모티콘도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신세희가 직접 그린 것 같았다. 그녀는 웃는 표정을 일부러 더 과장되게 그렸다. 조금은 당돌하고 또 조금은 귀여웠다.
부소경은 그만 웃어 버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지만 이내 부소경은 다시 차갑고 진중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담배 필터와 카드가 들려져 있었다. 그는 의식적으로 신세희가 살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무척이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열려있는 옷장에는 며칠 전에 그가 선물한 예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벌도 챙겨가지 않았다.
그리고 핑크색의 노트북도.
노트북은 침대맡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
부소경은 노트북을 열어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그녀가 직접 그린 설계도 하나와 직접 그린 듯한 태양 그림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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