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저 절로 사인할게요

배지훈은 저녁에 돌아오지 않았고 여진아랑 같이 있었다. 회사의 가십 단톡방에서 두 사람의 일로 떠들썩했다. [대표님 너무 조심스러운 거 아니에요? 그깟 상처에 굳이 병원까지 데려가고.] [사랑하는 거잖아요, 대표님이 너무 걱정하던데요.] [하연 언니가 오늘 회사에 내연녀 잡으러 왔어요?] [대표 사모님이 돈 요구하러 왔대요, 겨우 2천만 원이요, 너무 불쌍해요. 제가 여진아 그 목걸이 알아봤는데 1800만 이더라고요.] 나는 묵묵히 카톡을 꺼버렸고 비웃었다. '사람들이 대표 사모님을 불쌍하게 여기다니, 정말 웃기네.' 시끄러워서 깨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처음 입원해서 수술받는 게 아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내 물건을 정리했다. 집에서는 모두 최고를 썼다. 배지훈이 생활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침대 시트, 심지어는 티슈도 모두 제일 비싼 걸로 썼다. 병원의 물건이 아주 비쌌고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었기에 나는 모두 캐리어에 담았다. 지금 나한테 2천만 원이 생겼지만 수술 중에 다른 사고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필요하기에 나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려 했다. 내가 마음대로 착용할 수 있는 보석은 거의 없었다. 나는 보석 장롱 앞에 서서, 전자 잠금장치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지금 장롱을 깨면 아마 수술할 기회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 작은 상자에서 겨우 작은 금귀걸이 한 쌍과 초라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아냈다. 배지훈이 이건 그때 자기가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라고 했었다. 그때의 배지훈은 돈이 없어서 이런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얼마나 오래 모았는지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는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다이아몬드는 손에 들어오면 값어치가 떨어졌고, 팔아도 얼마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디자인이 이렇게 거친 건 더 말할 나위 없었다. 그대로 없는 것보단 나으니 혹시 모를 위급한 순간에 이 반지가 날 구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 어디서 저렴하면서도 성실한 간병인을 구할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의사 선생님이 흥분에 차서 나한테 전화했다. "제가 이미 입원부랑 얘기 끝냈어요, 바로 오셔서 절차만 밟으면 돼요." "먼저 600만 원 입금하시면 2인실 배정해 드릴게요. 옆 환자분이랑 간병인도 같이 고용하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은 내 상황을 잘 알기에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거의 모두 생각해 주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며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고 했는데 내가 떠나는 걸 느꼈는지, 옆집에서 몽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문을 열자 몽이가 나한테 달려와 날 둘러싸고 응얼거렸다. 나는 몸을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참으며 몽이의 큰 머리를 끌어안았다. "말 잘 듣고 있어, 엄마가 빨리 돌아올게, 잘 있어야 해." '내가 안 돌아오더라도, 잘 있어야 해." 아주머니는 머뭇거리면서 날 바라보았다. "잠깐만 기다려." 아주머니는 뒤돌아 집에 들어갔고 손에 빨간색 복주머니를 들고나왔다. "며칠 전에 산에 가서 널 위해 빌어온 거야, 꼭 무사해야 해, 알겠지?" 불량한 복주머니에, "福" 자가 한 획이 부족한 걸 보며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가 착한 사람이니 몽이가 아주머니랑 같이 있는 게 아주 좋을 거야.' 나는 뒤돌아 엘리베이터를 탔고 복주머니를 손에 꽉 쥐었다. '복이 한 획이 적다는 건, 내 목숨이 더 길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의사 선생님이 미리 당부해주셔서 난 아주 빨리 입원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나는 내일 수술을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있었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또 꿈을 꾼 것 같았고, 꿈에서 내가 매일 학교 어구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는 배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그타르트를 사다 주었다. 사실 그 집 에그타르트는 아주 맛없었고 모두 향로로 만든 거였지만 하나에 2백 원이라 정말 눅었다. 매번 내가 만족해하며 에그타르트를 먹으면 배지훈은 유난히 기뻐하며 웃었는데 정말 멋있었다. 익숙한 벨 소리가 들렸고 난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훈아, 나 오늘도 블루베리 맛 에그타르트 먹을 거야, 너 일찍 가서 줄 서야 해." 수화기 너머에 있던 사람은 멈칫하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알겠어, 나 기다려." 나는 몸을 뒤척였고 다시 잠들었다. '오늘은 행복한 꿈이네.' 다음 날 일어났을 때, 나는 정신이 아주 맑았고 간호사도 내가 정신이 맑은 게 수술이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날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평소는 그렇다고 쳐도, 오늘 수술하는데도, 가족들이 안 와요? 사인할 사람이 있어야죠." 나는 고개를 떨구었고 마음이 복잡해 났다. 나한테 이미 가족은 없었고 배지훈밖에 없었다. 내 꼴을 보더니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고 조금 이따 수술하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해서 휴대폰을 쳐다보았고 왜인지 불안해 났다. '설마 이번에 무슨 일 생기는 거야?' 휴대폰이 다시 울렸고 배지훈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받았고 기뻐하는 말투로 말했다. "지훈아!" "강하연, 너 나 놀리는 거야? 에그타르트 먹겠다더니, 어디 갔어? 죽었어?"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고 난 말문이 막혔다. '어제 꿈이 아니라 지훈이가 정말 나한테 전화했고 에그타르트도 사 왔어.'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고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지훈아, 나 지금..." "지훈 씨, 에그타르트 너무 맛있어요, 그래서 같이 줄 서자고 했군요!" 여진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가 결국 그녀를 데리고 집에 간 것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의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 저 절로 사인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