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장

송유진은 고개를 떨군 채 잠시 망설이다가 서둘러 부정했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착각한 거예요.” 한재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내가 뭘 했길래 그렇게 오해한 거야?” 송유진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 지난번에 배도현 씨 집에서 성윤 씨가 했던 말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없어?” “그리고... 외할머니댁에서 재혁 씨가 저한테 밴드 붙여줬을 때...” 말이 이어질수록 송유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거의 안 들릴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한재혁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송유진은 얼굴이 화끈거리며 민망한 마음에 핸드폰을 꼭 쥐었다. ‘분명히 지금 나를 비웃고 있는 거야. 얼마나 유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송유진, 넌 정말...”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송유진은 급히 말을 끊었다. “뭐라고 하려는지 알아요. 그만하세요.” “알긴 뭘 알아.” “...”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한 번도 나한테 직접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네가 혼자 착각하고 거리 뒀던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알겠어?” 그 말에 송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작게 반박했다. “멍청한 짓 안 했거든요.” 하지만 자신감 없는 목소리는 설득력을 잃었다. 한재혁은 깊은숨을 내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송유진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성윤 씨가 그러던데, 재혁 씨의 급발진 버튼이 여자인 것 같다고...” 그 말에 한재혁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에 관해 그렇게 열심히 물어봤나 봐?” 송유진은 얼굴이 빨개지며 서둘러 부정했다. “아니에요!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냥... 어쩌다 보니 얘기가 나왔을 뿐이에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말했다. “알았어. 그렇게 궁금하면 알려줄게.” “네?” 송유진은 순간 얼어붙었다. 사실 그녀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