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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장 내 인생은 항상 수동적이었더라고요

“그럼 예정대로 진행해요.” 이서아는 지금 아무래도 좋았다. 임정우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용해진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아는 커피 머신 앞으로 가더니 휴대폰을 스피커 통화로 켜놓고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커피 내리는 실력은 바리스타 못지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서 일을 하면서 항상 클라이언트와 대표에게 커피를 내려줘야 했으니까. 이서아는 한번 하면 뭐든 대충하는 법 없이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했다. 그녀는 익숙하게 커피 머신을 다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해봤는데 내 인생은 항상 수동적이었더라고요. 어릴 때는 엄마가 오빠만 데리고 가서 의도치 않게 버림을 받았고 당신과 연애할 때는 일방적으로 헤어지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그러다 이씨 가문이 빚 갚는 데 사용될 뻔한 걸 비 오는 날 밤 한수호 덕에 구제됐다가 그 사람이 안배해준 대로 비서가 됐고 그 사람한테 모진 말을 듣고 그 사람의 계략에 걸려들고 그렇게 나중에는 버림받았죠. 그 뒤로 당신의 손에 이끌려 하론으로 가게 됐고 당신 때문에 살게 됐고 프러포즈도 받게 됐어요. 그런데 또 당신이랑 정소라 여사님한테 단단히 속아버렸고요...” 커피 머신이 작동을 멈추자 이서아는 찬장에 있는 예쁜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어차피 내 인생은 항상 남의 의지로 움직이고 또 움직였으니까 거기에 이번 일이 추가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결혼식은 임정우 씨 마음대로 진행해요. 당신이 원하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당신의 신부가 되어 당신 손을 잡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릴게요.” 이서아는 고소한 냄새가 감도는 커피를 예쁜 커피잔에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러고는 향기를 한번 맡은 다음 천천히 음미했다. 시럽도 우유도 그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커피 본연의 고소함과 씁쓸한 맛만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임정우의 책상 앞에도 커피잔이 놓여 있었지만 그의 커피는 이미 다 식어버렸다. 그녀를 따라 한입 머금어보니 역시 무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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