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소문
이서아는 월세방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서아 왔어? 너 오늘도 안 들어오면 내일 병원 다 뒤져서라도 널 찾으려 했어.”
“이젠 괜찮아.”
이서아의 룸메이트인 김하나는 그녀의 대학 동기이자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둘은 함께 6, 7년을 지내며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입원한 며칠 동안 이서아를 진심으로 신경 써준 사람은 김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서아는 그녀에게 아프다고만 했지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또 병문안도 못 오게 했다.
김하나는 실내화를 갈아신고 이서아의 방 앞에 오자마자 이서아가 바닥에 앉아 옷을 개는 것을 발견했다.
“또 출장 가?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출장 가면 몸이 버틸 수 있겠어? 한수호 그 X자식은 너만 부려먹는다니까!”
이서아와 한수호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김하나는 줄곧 한수호를 싫어했다.
이서아는 이번에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라 솔직하게 말했다.
“나 진성 지사로 발령받았어. 월세는 3개월 치만 더 줄게. 3개월 후에도 내가 돌아오지 못해서 다른 룸메이트 찾는다면 나한테 말해. 와서 나머지 짐들도 다 챙겨갈게.”
김하나는 순간 멍해졌다.
“아니, 이렇게나 갑자기?”
그러자 이서아가 대답했다.
“직책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흔한 일이었지만 이서아와 한수호의 관계가 있는데 다른 데로 발령 났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김하나가 바보도 아니고 문제가 생긴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한수호랑 싸웠어?”
이서아는 딱히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건을 가지러 일어나다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뚝 떨어졌다. 그녀가 주우려는데 김하나가 먼저 주워서 열어보았다.
그렇다. 그건 자궁 소파술 검사 보고서였다.
김하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서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날짜를 확인했는데 바로 그녀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그 며칠이었다.
김하나는 빠르게 상상을 이어갔다.
“너 유산해서 입원한 거였어? 아이 한수호 거지? 한수호가 아이를 지우라고 한 것도 모자라 널 쫓아내기까지 했어? X발, 걔가 뭔데 너한테 이런 짓을 해? 정말 나쁜 X끼야! 지금 당장 찾아가야겠어!”
김하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해 보여도 사실은 성격이 매우 거칠었다. 진짜로 한수호를 찾아가 따질 사람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이서아가 급히 말렸다.
“하나야, 대표님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유산한 거야.”
김하나가 얼굴을 찌푸렸다.
“한수호한테 얘기 안 했어?”
이서아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얘기할 필요도 없어.”
“너... 대체 어쩌려고 이래?”
이서아는 검사 보고서를 가져와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뭐 어쩌려는 게 아니야. 그냥 그 사람이 알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김하나는 이서아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고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서아가 물건을 챙기러 화장실에 간 사이 김하나는 이를 깨물고 쓰레기통에서 종잇조각을 다시 주웠다. 앞으로 혹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날 밤 이서아는 곧바로 진성으로 날아갔다.
그 후 한 달 동안 본사에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것 외에는 한수호와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서아와 사이가 좋았던 비서실의 다른 두 비서는 가끔 쉬는 시간에 그녀에게 본부의 상황을 알려주곤 했다.
예를 들어 한수호가 백인하를 어떻게 챙겨주는지 말이다. 직접 일을 가르쳐주는 건 물론이고 생활 면에서도 꽤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백인하는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는데 한수호는 퇴근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백인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그 일로 회사 안에서는 백인하가 한수호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이 소문은 한수호의 귀에까지 들어가 소문을 먼저 퍼뜨린 그 사람은 해고당하고 말았다. 하여 본부에 또 다른 소문이 돌았는데 바로 한수호가 백인하를 편애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서아는 문득 뭔가 떠올랐다. 그녀가 예전에 한수호의 밑으로 금방 들어왔을 때도 한수호는 직접 일을 가르쳐줬었다. 그때도 회사에 비슷한 소문이 돌았는데 한수호의 태도는 어땠는가?
그는 개의치 않아 하며 이렇게 되물었었다.
“넌 아니야?”
몇 년 동안 이서아는 자신의 능력으로 스타 그룹에서 자리를 잡은 덕에 그런 소문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한수호가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도 지켜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그녀가 아닐 뿐.
이서아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그녀 말고는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두 달 후, 진성 지사 프로젝트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서아의 동료 두 명이 한수호가 지나가는 길에 진성 지사에 들러 상황을 볼 거라고 몰래 알려주면서 이번 기회를 잡아 본사로 돌아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