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따귀
간호사는 알코올로 백인하의 상처를 닦아주었다.
“으악.”
약물의 자극으로 백인하가 소리를 지르자 한수호가 바로 다가갔다.
“괜찮아?”
“괜찮아요. 크게 다치지도 않았어요.”
백인하는 한수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대표님 어깨는 어떠세요? 아파요? 얼른 의사 선생님께 검사받아요.”
한수호는 백인하를 지켜주려다가 드래곤보트의 모서리에 어깨를 부딪쳤다. 하지만 한수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
하지만 백인하의 손바닥을 볼 때는 아주 자상하게 당부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물이 닿게 하지 마. 감염되면 잘 낫지 않거든. 이따가 도우미 한 명 붙여줄게.”
“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대표님. 절 자꾸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취급 하지 말아요.”
이서아는 알콩달콩한 두 사람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그동안의 피곤과 실망이 겹겹이 쌓여 드디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재미없어, 정말.’
이서아는 다친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서려 했다. 엄청난 고통이 다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전해졌다.
하마터면 몸에 평생 장애가 남을 뻔했지만 한수호는 이서아를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찰과상만 입은 백인하를 끔찍이도 아끼면서 도우미까지 붙여주겠다고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이서아는 그냥 등을 돌리려 했다. 그녀가 물었다.
“인하 씨, 계속 내가 한 거라고 우길 작정이에요?”
“서아 언니, 난 언니를 좋아했고 지금도 무척이나 도와주고 싶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심각한 일이 터져서... 난 거짓말 같은 거 못해요.”
그러니까 조금 전 백인하가 한 말은 다 진실이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서아를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
정확한 답을 원했던 이서아가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내가 줄을 건드리는 걸 봤어요?”
그러자 한수호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을 드러냈다.
“같은 질문을 대체 몇 번 하는 거야?”
백인하가 되레 한수호를 위로했다.
“대표님, 화내지 말아요. 서아 언니는 그냥 확인하는 거니까 괜찮아요. 언니, 이 일 언니랑 나랑 다 책임 있어요. 언니는 줄을 건드렸고 난 말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잖아요. 이따가 고객님이 깨어나면 같이 사과드리러 가요.”
한수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하 넌 잘못한 거 없어.”
한수호가 무슨 말을 하든 이서아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백인하의 대답이었으니까.
“만약 인하 씨가 거짓말했다는 증거를 찾으면 나한테 어떻게 사과할 건가요?”
백인하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이서아가 말을 이었다.
“따귀 때리기 어때요?”
‘말을 함부로 했으니 맞아야지.’
한수호가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만해! 아직도 일 더 크게 만들고 싶어?”
이서아는 백인하만 쳐다보았다.
“못하겠어요? 분명히 봤다면서요? 아니면 거짓말한 거 인정하는 건가요?”
백인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병실 안에 있는 김정욱과 회사 동료,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들 전부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서아는 단 몇 마디 말로 백인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만약 여기서 싫다고 한다면 방금 했던 말들의 신빙성이 확 떨어질 것이다.
백인하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안 그러면 한수호도 의심할 테니까.
‘증거? 증거는 무슨. 공장장님도 말했어. 공장에 CCTV가 없다고... 겁주려고 이러는 거 분명해.’
백인하는 이서아의 꿍꿍이라고 생각했다. 증거도 없이 단지 겁주려고.
줄을 건드렸는지 안 건드렸는지 두 사람이 가장 잘 알았다. 하여 계속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이서아는 백인하가 켕기는 게 있어서 내기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겨우 이서아를 내쫓을 기회가 생겼는데 이대로 포기할 백인하가 아니었다. 백인하는 이서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난 내가 한 말에 책임져요. 그러니 당연히 내기도 할 거고요. 그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얼마 동안 조사할 거예요? 선생님, 실려 온 저희 고객님은 혹시 깨어나셨나요?”
의사는 이 재미난 구경을 놓칠 수가 없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깨어나셨어요.”
백인하는 곤란한 척했다.
“대표님께서 고객님께 사고 원인을 설명해 드려야 하는데 서아 언니가 천천히 조사할 시간이나 있겠어요?”
그녀는 이서아가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다. 한수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시간을 끈다면 벌을 받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백인하는 절대 이서아의 뜻대로 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