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2장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눈앞에는 연한 하늘색의 천장이 나타났고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명 병원이었다. 날 데려온 사람은 유강우였다. 임세린은 내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건 유강우도 마찬가지였다. 유강우는 병실 하나만 마련해주고 바로 떠났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찰, 간호 등 하나도 없었다. 난 마치 유기견처럼 병원에 버려졌고, 아무도 날 걱정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희망을 품지 않았기에 실망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병원에서 도망쳐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난 돈이 없었고 따로 집을 맡고 살려고 해도 갈 데가 없었다. 날 불쌍하게 여겨 거두어줄 사람은 더 없었다. 내 아내는 업계의 샛별, 임세린이기 때문이다. 말해도 어차피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임세린의 법률상 남편인 나는 매달 직접 그린 설계도로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 도착하니 이미 오전 10시였다. 난 벌써 20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유일하게 보충한 수분도 어제 마신 와인이 전부였다. 사실 난 술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술은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켜 후회할 짓을 하게 만든다. 어제 정신을 잃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아니면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방으로 들어가 어제 요리하다 남은 식재료들이 조금 있었다. 하여 라면을 끓이고 남은 식재료들로 토핑했다. 하지만 먹으려 하는 순간, 휴대폰이 울려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이 가득한 임세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11시에 미팅 있으니까, 내 외투 좀 갖다줘. 아, 맞다, 강우 외투도 가져와. 그 핑크색 외투 말이야.” “알았어.”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 난 임세린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랐다. 비록 지금은 그 여자의 곁을 떠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시키는 대로 했다. 시간이 많이 급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 왔을때가 10시였고, 또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을 썼으니, 11시까지 겨우 30분 정도 남았다. 난 밥도 먹지 못한 채 급히 임세린의 방에서 외투를 꺼내어 들고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2만 원으로 택시를 탔다. 최선을 다해서 빨리 왔지만, 여전히 늦었다. 11시까지 1분 정도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난 임세린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역시 이번에도 유강우가 문을 열었다. 유강우는 임세린이 선물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살짝 실룩거렸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형, 죄송하지만 조금 늦었어요. 누나는 미팅을 취소하셨어요. 형도 알다시피 누나는 회장님이시니까 이미지에 많이 신경 쓰셔야 해요. 그리고 절대 지각하면 안 돼요.” “들어오라고 해.” 이때, 사무실 안에서 임세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내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유강우가 내준 작은 틈새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임세린은 의자에 기대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다. “날 망신 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야?” “아니야...” 난 해명하려 했지만, 임세린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일부러 아픈 척하며 쓰러진 이유도 내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잖아. 넌 네 모습이 우습지도 않아? 강주환,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런 유치한 짓을 해? 너 때문에 미팅도 취소했잖아! 왜? 이제 이혼하려고 압박까지 하게? 넌 생각 자체가 정말 너무 역겨워.” 임세린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내 심장은 진작에 상처로 가득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전히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임세린이 대체 왜 날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8년이란 시간을 함께했는데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단 말인가? 난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 같았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뇌암을 포함한 모든 일을 알려주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면 임세린은 분명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충동을 억눌렀다. 임세린은 믿을 리가 없었고 또 내가 수작 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난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임세린의 온갖 추측을 맞이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강우는 우리와 5m도 되지 않은 곳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동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그 눈빛은 무시였다. 유강우가 보기에는 난 관심을 끌려고 이러는 것 같았고, 내 방법은 너무 단순했다. 그 후, 난 어떻게 사무실에서 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남은 건, 임세린이 아주 오랫동안 불만은 토했고, 난 벽을 짚고 가까스로 걸어 나왔다. 난 뇌암에 걸렸지만, 밥도 먹지 못한 채 외투를 갖다주려고 택시를 탔다. 심지어 늦지 않으려고 기사 아저씨한테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라고 했다. 여러 원인이 얽힌 상황 속에서, 그 당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정신력으로 버티며 벽을 짚고 기어이 떠났다. 임세린이 내가 불쌍한 척한다고 생각하며 아주 작은 관심을 던져 주는 게 싫었다. 하지만 유강우의 옆을 지나갈 때, 그 자식은 분명 낮은 소리로 나한테 말했다. “연기 잘하네요.” 연기? 참 우스운 단어였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저 세상이 빙빙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음 순간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난 마지막 힘을 짜내서 겨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인사불성이 되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 아니라 내 친구 박겸의 집에 누워 있었다. 박겸은 내 소꿉친구였고 유학파였다. 기초적인 도면을 그릴 줄 밖에 모르는 나와는 달리 디자인에 타고난 놈이었다. 박겸은 국내로 돌아온 후, 임세린의 회사로 취직했고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절대적인 디자인 능력으로 디자인 부서의 부장이 되었다. 이것은 어느 날 임세린에게 도시락을 갖다주면서 들은 소식이었다. 박겸은 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대학 시절 나와 임세린의 사이를 아주 부러워했었다. 비록 우리는 나중에 헤어졌지만, 박겸은 나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들어?” 박겸은 내 앞에 앉아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다. “응.” 난 컵을 받으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박겸은 키가 컸고 늘 가장 심플한 검은색과 하얀색 옷에 베이지색이나 다른 색상의 양말과 넥타이를 맸다. 그 자식의 말로는 캐주얼룩이니 뭐니 했지만, 난 패션에 대해 잘 몰랐다. “왜 갑자기 쓰러진 거야? 혹시 어디 아파? 병원 갈래?” 박겸은 머리를 숙이고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걱정에 난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상황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말해 봐야 박겸의 걱정만 더 늘 뿐이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너 한가해? 그렇게 할 일 없어?” 난 조금 서투른 방법으로 화제를 돌렸다. “네가 엘리베이터 안에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연차 썼어. 난 부장이니까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어. 나중에 상사한테 얘기하면 돼.”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